우리 다시 “말하기, 듣기”
우리 다시 “말하기, 듣기”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1.09.13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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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프로그램 중에 “생활 사투리”라는 코너가 있었지요. 오래전에 경상도와 전라도의 차이를 표현해 인기를 얻었고, 몇 년 전 부활한 코너에서는 충청도 사투리가 인기를 얻었습니다. 물론 코미디언들이 과장에 과장을 더해 재밌게 각색했겠지만, 각 지역의 서로 다른 특징들이 드러났었지요. 이처럼 우리나라만 해도 지역마다 소통방식의 차이가 있듯이, 문화마다 소통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나라나 민족, 지역 등으로부터 과거보다 훨씬 자유롭고 다채로워진 삶을 사는 오늘날 우리는 그야말로 사람마다 소통하는 방식이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크게 두가지 특징으로 나눠서 살펴보면, 의사소통 방식은 ‘고맥락 문화(high context culture)’와 ‘저맥락 문화(low context culture)’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고맥락 문화에서는 그야말로 맥락을 읽어내는 것이 아주 중요하고요, 저맥락 문화에서는 언어를 통한 명확한 의사 전달이 중요합니다. 고맥락 문화에서는 원활한 소통을 위해 배경지식이 필요합니다. 반면 저맥락 문화는 말 그대로 이해하면 되지요. 혹시 주변에 감성적이고 섬세한 표현을 하지만 정확히 무슨 말인지 헤아리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고맥락적인 사람, 반면에 조금 투박할지는 몰라도 말의 뜻이 명확한 사람은 저맥락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유학을 떠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네덜란드 사람인 지도교수가 사과를 하나 권하며 “먹을래?” 하더라고요. 토종 한국인인 제가 어찌 경망스레 덥석 달라고 합니까. 괜찮다고 했더니 그대로 서랍에 집어넣더라고요. 아 치사해. 아직도 그 사과 맛이 궁금합니다. 최소한 두 번 권하는 건 기본 예의 아니었나요! 그런데 이런 의사소통 방식이 시간이 지나면서 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분위기 파악을 하거나 말의 참뜻을 알아내려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편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큰 깨달음을 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학과에서 단체로 소풍을 가서, 동료 연구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였습니다. 제 지도교수의 이름은 피어 스메스였습니다. 저는 몇 달째 지도교수님의 성을 따서 “스메스 교수님”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몇 번이나 그의 이름인 “피어”라고 부르라고 했지요. 제가 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수님 이름 못 부르겠다고 했더니, 한 친구가 저더러 무례하다지 뭡니까. 자기가 불리고 싶은 이름이 있는데 왜 다른 방식으로 부르냐고요. 그 후로 저는 모든 선생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찾아 연구실에 들어오셔도 더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지요.

꼭 옳고 그름으로 볼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만, 포용성의 관점에서 볼 때는 저맥락 문화가 유리하긴 합니다. 곧이곧대로 듣고 말하고 받아들이면 되니까요. 괜찮다면 괜찮은 거로, 밥 먹자면 밥 먹는 거로, 기분 안 나쁘다면 기분 안 나쁜 거로. 그 문화에 흠뻑 젖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으니까요. 나아가, 나는 우리에 묻혀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던 세상에서 점차 내가 드러나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사회로 변하고 있는 지금, 꼭 이주자들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 변화는 거스를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수업 시간에 질문을 하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알아서 헤아려 이해해야 하고, 과목에 상관없이 잘 이해하지 못했다면 듣는 사람의 이해력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어떨 때는 ‘그것도 모르냐’는 핀잔을 들어야 하기도 했지요. 심지어 못 알아들었다고 맞기까지 했으니 생각할수록 억울합니다. 모르니까 배우려 학교에 간 건데 모른다고 혼내는 게 어딨어요. 그 문화에서 자라다 보니 다들 커서도 묻지 못하고, 되묻지 못하고, 얼추 이해되는 것 같으면 어물쩍 넘어가는 문화가 자리 잡은 것 아닐까요.

포용적 의사소통 문화를 구축하는 과정에는 수평적인 의사소통이 필수적입니다. 명확하게 말해야 하고, 못 알아들었으면 물어야 합니다. 물어본다고 핀잔주지 말아야 하고, 듣는 사람의 오해에는 말 한 사람의 책임도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모두 함께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말하는 걸 무서워하지 않는 사회, 정확히 말하고 그대로 듣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도 대화가 깊어질수록 묻어날 “맥락”은 우리의 소통을 풍성하게 할 뿐 소통의 토대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김규희 충남사회혁신센터 기획운영본부장
김규희 충남사회혁신센터 기획운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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