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지역 여성단체 좌담 - 지역에서 바라보는 ‘미투(Me Too) 운동’ 확산
천안 지역 여성단체 좌담 - 지역에서 바라보는 ‘미투(Me Too) 운동’ 확산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8.03.01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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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영역으로 끝낼 문제 아니라 사회가 함께 만드는 문화 정착 필요”

안태근 전 검사 성추행 사건으로 시작된 미투 운동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법조계를 시작으로 문화·예술계까지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을 아우르는 성폭력(기사에서는 성폭력으로 통일)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백이 이어지며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했던 강압적인 분위기가 드러나고 있다. 피해 사실을 숨기지 않고 당당히 드러내는 움직임(Me Too)과, 방관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함께하겠다는 연대(With You)도 확산되고 있다. 천안 지역에서도 천안시체육회 성폭력 사건에 대한 정확한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있다.

이를 계기로 사회 전반적으로 성폭력이 만연한 문화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천안아산신문은 여성단체 ‘천안여성의전화’ ‘천안여성회’와 함께 지역에서 바라보는 ‘미투(Me Too) 운동’ 확산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와 함께 천안아산신문도 잘못된 성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는 사회를 바라며 ’Me Too'와 ‘With You'에 함께한다. <편집자 주>

좌담 참석자들(왼쪽에서부터 김희겸 사무국장 김용자 사무국장 김혜영 대표)과 천안여성의전화 상담활동가들 함께

좌담 : 김용자 천안여성회 사무국장, 김혜영 천안여성의전화 대표, 김희겸 천안여성의전화 사무국장

진행 : 천안아산신문 김나영 기자

-. 어쩌다 이렇게까지 사회 곳곳에 성폭력이 만연하게 됐을까

김혜영 : 뿌리 깊은 남성 중심 문화와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관습처럼 이어져 온 것을 문제로 볼 수 있다. 성적인 이야기가 농담처럼 인식되고,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그에 대해 항의하거나 문제시 하면 까다롭다고 호도하거나 조직의 문화를 흐린 사람으로 낙인 찍혀 오히려 2차 3차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일들이 빈번했다.

김용자 : 또 하나 원인은 성폭력은 엄연한 폭력임에도 개인의 문제로 여긴다는 것이다. 개인과 개인 간 벌어진 사안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처리해야 할 범죄로 인식해야 한다. 데이트 폭력만 해도 무자비한 폭력행위로 인한 피해임에도 개인끼리 합의로 해결하라 한다. 이 부분도 바로잡아야 한다.

김희겸 : 미투운동을 바라볼 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성폭력의 피해자가 여성이라고 단정하는 부분이다. 그렇지 않다. 여성의 피해가 많이 드러나고 있을 뿐 남성이 폭력의 피해자인 사례도 있다. 여성을 향해 남성이 일방적으로 행하는 것이라는 시각으로 성폭력에 접근하면 본질을 흐릴 수 있다. 강자가 약자를 향해 자행하는 폭력이라는 것이 성폭력의 핵심이다. 지금 불거지는 미투 고백 사례들도 모두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약자에게 가한 폭력 아닌가.

-. 기관이나 회사 등에 성폭력 예방교육이 의무화 되었는데 왜 문제는 여전할까

김희겸 : 현재 1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성폭력 예방교육이 의무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하고 있을 뿐 제대로 교육되는지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다. 또한 성 인지가 불확실한 강사들이 성폭력 예방교육을 하며 오히려 성차별적 발언으로 논란이 되기도 한다. 더욱 문제는 1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다. 자체 교육이나 홍보물 대치 등으로 하고 있다. 내용과 시행을 위한 방법 등을 제대로 마련해 보다 적극적인 성폭력 예방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김혜영 : 미국의 경우 조직 내 성폭력이 발생하면 그에 대해 처리해야 하는 배상액이 엄청나다. 때문에 법적 제재가 없더라도 조직이나 기업 스스로 예방교육을 철저히 한다. 우리나라도 조직, 단체, 기관, 기업 등이 필요성을 인식하고 성폭력 예방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 이미 문제제기가 됐는데 미투 운동이 확산될 필요가 있냐는 시각도 있는데…

김용자 : 그런 시각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진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제대로 처리하고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라고 하거나 숨기고, 처리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파악을 하지 않았다. 천안시체육회가 대표적이다. 성폭력 문제가 드러났을 때 제대로 조사해 문제를 파악한 후 처리했어야 하는데 관련 당사자 사표처리로 끝맺었다. 이것은 제대로 된 처리가 아니다. 정확히 파악하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제대로 알려야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

김희겸 : 성폭력 피해자를 생존자라고도 한다. 재난을 당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난에 대한 피해는 공감하면서 성폭력에 대한 피해에는 공감이 낮다. 개인적인 부분으로 치부하거나 개인의 탓으로 여기고, 사안이 심각함에도 에피소드로 전락하니 결국 피해자가 숨어버린다. 2차 피해가 일어나는 것이다.

일본군 성노예 사건을 보자. 이는 국가가 개입한 성폭력이다.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고 하더라도 사과를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개인 성폭력도 같은 범주로 생각해야 한다.

-. 이번을 계기로 어떤 부분이 필요할까

김희겸 : 성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이중적 잣대가 적용된다. 성폭력은 분명 잘못된 일이라고 인식하면서도 그것이 나 또는 지인의 상황이 될 경우 시선이 흐트러진다. 하지만, 성폭력은 약자의 시선, 피해와 상처를 입은 시선에서 바라봐야 한다. 또한 성적인 농담에 관대하고 언어적 성희롱을 가볍게 생각한 그동안을 바로잡아야 하고, 방관하지 않는 자세도 중요하다.

김용자 : 숨기고 참아 잘 굴러가는 듯 보이면 아무 문제없는 사회일까. 피해자들을 억눌렀기에 그것이 가능했지만, 무수한 상처를 딛고 지탱한다면 문제없는 사회가 아니다. 이제라도 불편해야 하고, 불편함을 느껴야 발전한다. 미투 운동을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김혜영 : 미투 운동의 확산이 그저 폭로로 끝나서는 안 된다. 제대로 처리되고, 이를 계기로 성폭력은 개인의 영역이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 사회가 함께 만들어야 하는 문화이고, 사회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사안이라는 의식이 필요하다. 자극적이고 행위 중심으로 보도해 2차 피해를 야기하는 언론도 반성하고 변화해야 한다.

또한 지금은 유명인들을 대상으로 한 미투 운동이지만, 분명 드러내지 못하고 피해 사실을 움켜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피해를 입고 상처 받는 이들이 숨고 참아야 할 게 아니라 드러내고 바로잡아야 한다. 천안여성의전화와 천안여성회가 문을 열어놓고 언제든 함께할 것이다.

김나영 기자 namoon@ca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