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력이 떨어지면 기억력도 떨어진다
청력이 떨어지면 기억력도 떨어진다
  • 권준우
  • 승인 2020.05.2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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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우 천안 두신경과의원 원장 & 네이버 지식iN 건강·의학 위촉상담의

노인병원에 근무할 때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청력이 떨어진 환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해 목소리를 높여야 했고, 때로는 거의 고함을 지르듯이 귀에 대고 소리를 질러야 했다. 거의 모든 환자가 청력 저하가 있다 보니, 귀에 얼굴을 갖다 대고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게 버릇이 됐다. 한번은 청력 저하가 없는 환자인데 버릇처럼 옆에서 소리를 질렀다가 환자가 깜짝 놀라며 화를 낸 적도 있다.

노인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대부분 70대 이상이었고, 100살을 넘기신 분도 간혹 있었으니 청력이 떨어지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렇게 대부분 환자에게 청력 저하가 있을 수 있나?’ 싶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처럼 청력 저하 때문에 치매가 악화한 환자였을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청력이 떨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청력 저하가 여러 가지 다른 문제들을 일으키곤 한다. 우울감이 생기거나 사회활동에 제약이 생기거나 하는 것들이다. 그것 외에도 요즘 연구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인지장애와의 연관성이다. 청력이 떨어진 사람은 인지 저하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에 대한 가설은 여러 가지가 제시되고 있는데, 청력 저하 자체가 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청력 저하가 있는 사람들의 뇌 MRI를 정상 청력인 사람과 비교했더니 전체 뇌의 크기가 작았으며 뇌 위축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청력 저하로 발생한 우울감과 사회활동의 제약이 치매를 일으킨다는 이론도 제시되었다. 우리의 뇌는 주변의 새로운 자극과 상호 작용하면서 인지를 유지해야 하는데 청력이 떨어지게 되면 주변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감각적 자극이 부족하게 된다. 이는 ‘인지예비능(cognitive reserve)’이 축적되는 것을 방해한다.

인지예비능은 인지 보유고, 인지적 비축분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많은 경험을 통해 인지능력을 미리미리 비축해두어야 한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쉽다. 무언가를 경험해 기억할 때, 우리의 뇌에서는 시냅스의 변화가 일어난다. 그 기억에 대한 시냅스가 꼭 하나일 필요는 없다. 경험이 많을수록, 자주 본 사람일수록, 그 분야에 많은 정보를 얻을수록 시냅스의 양은 증가한다. 이러한 것을 인지예비능이라 한다. 새로운 기억의 시냅스를 풍부하게 보유하여, 나중에 인지저하가 생기더라도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단서들을 비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시냅스의 기능이 저하되어 기억이 하나하나 사라진다. 약한 시냅스가 형성되어 있던 기억은 쉽게 소멸할 것이다. 만약 시냅스가 수백 개 형성된 기억이라면 어떨까? 모든 시냅스가 기능을 잃어 그 기억을 잊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인지예비능이 풍부한 사람은 알츠하이머 치매가 오더라도 일상생활이나 인간관계에 있어 장애를 덜 받을 수 있다. 기억의 시냅스가 1000개인 사람과 100개인 사람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신경세포의 기능이 떨어지거나 파괴되었을 때 남아있는 인지능력의 차이는 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두뇌 부자가 되어야 한다. 되도록 많은 시냅스를 형성해서 인지예비능을 늘려야 한다. 그래야만 나중에 잃더라도 남는 것이 많게 된다.

그런데 난청으로 인해 사회활동에 제약이 생기면 외부로부터 받아들여 축적할 수 있는 인지예비능이 점점 줄어든다. 인지장애가 생겼을 때 악화 속도가 빨라질 수 있는 것이다.

노인성 난청은 매우 흔해서 딱히 병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치료를 받지 않거나 보조기를 사용하지 않는 분들이 많다. 노인성 난청은 보청기를 사용함으로써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는데, 보청기를 사용한 그룹은 사용하지 않은 그룹에 비해 인지 저하가 심하지 않았으며, 난청이 있는 노인에게 3개월간 보청기를 사용한 후 검사를 했더니 우울감과 인지능력이 모두 개선되었다는 연구도 있다. 청력이 떨어진다면 미리미리 원인을 파악하고 보청기 등을 사용해 증상을 호전시켜야 한다. 그래야 인지 저하를 막을 수 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청력이 떨어지면 인지 상태를 검사할 때에도 제약이 생긴다는 것이다. 잘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검사를 시행하게 되면 검사의 규칙이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인지점수가 낮게 나올 수 있고, 현재의 상태보다 치매가 더 심한 것처럼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자칫하면 인지 저하가 없는 사람이 경도인지장애나 치매로 진단될 수 있으니, 이를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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