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장애물’로 전락하고 있는 교통 안전시설물
‘교통장애물’로 전락하고 있는 교통 안전시설물
  • 박희영 기자
  • 승인 2020.02.2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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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길주차 허용구역에 설치된 중앙분리대
 
어느 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전화기 넘어 제보자는 천안 동남구 신방동 어느 골목엔 중앙분리대가 설치되어 있음에도 갓길에 주차된 차량이 많아 운전자는 물론이고, 보행자들도 통행이 불편하다고 울컥했다.

어떤 상황인지 직접 현장에 가 보았다. 어느 동네를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왕복 2차, 편도 1차선 넓지 않은 도로다. 중앙분리대가 설치된 길이는 대략 50m, 이중 주차 차량이 있는 구간은 10~15m 정도.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차된 차들이 있는 쪽으로 진입해야 하는 차량은 반대편 차선을 이용하는 ‘역주행’까지 감수해야 한다.
 
신방동, 반대편 차선으로 진입하는 차량
신방동, 반대편 차선으로 진입하는 차량

보행자 운전자 주차 차량 차주 모두 불편! 불안! 불만! 

진·출입 차량이 합류하며 혼선을 빚는 모습이다. 때마침 길을 지나가려던 아이는 두 차 사이에서 머뭇거리다 건너가라는 운전자의 손짓에 길을 건넌다. 중앙분리대나 갓길주차 차량이 없다면 그다지 혼잡하지 않았을 텐데,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다 차 한 대가 빠져나가고 그제야 진입 차량도 갈 길을 간다.

인근 아파트에 사는 양 씨는 “이 근처 건물에 학원이 많아서 아이들이 많이 오가는데, 거리가 짧다고는 해도 역주행하는 게 안전하다고 볼 순 없다”라는 불만을 토로했다.

주민 임 씨 역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인도가 없는 곳이라 차가 오면 사람이 피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다가도 반대편 차선으로 오는 차를 확인 못 했을 땐 아찔하다. 여기가 일방 통행로도 아니고 엄연히 2차선인데 왜 중앙분리대와 갓길 주차된 차 때문에 보행자들이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강력히 성토했다.

주차한 차 중 한 차주에게 전화해 이동 주차를 부탁했다. 중앙분리대가 있는 곳에 주차한 이유를 물으니 “당연히 주차할 곳이 없으니 여기에 주차하지 않았겠냐?”라고 반문하며, “건물 주차장에 주차하려고 해도 자리가 없다. 이 지역 주차 공간이 너무 열악하다”라고 지적했다.

어쩔 수 없이 반대편 차선으로 운행해야 하는 운전자는 “여기 지나갈 때마다 불편하다. 짧은 구간이지만, 혹시 사고라도 날까 걱정”이라고 이야기한다.
 
신방동, 갓길주차를 막기 위해 설치된 규제봉과 주차금지 푯말

갓길 주정차 가능 구역에 중앙분리대 설치가 된다니… 

중앙분리대가 설치된 구역에 주정차가 가능한 지 17일(월) 동남구청 건설교통과 교통지도팀으로 확인해보았다. 교통지도팀 담당자는 “그 지역은 갓길 주차선이 흰색 선으로 주정차단속이 불가능한 지역”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갓길주차가 가능한 지역에 중앙분리대는 왜 설치된 것일까?

설치 이유는 다름 아닌 ‘민원’이었다. 이 구역엔 중앙분리대 외에도 갓길 흰색 주차선 위쪽으로 규제봉이 8개 정도 박혀있고, 주차금지 푯말도 세워져 있다. 갓길주차 방지를 위해 설치한 중앙분리대와 규제봉 때문에 보행자와 운전자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차량흐름을 방해하는 중앙분리대는 비단 이곳에만 있는 게 아니다. 쌍용동 이마트 근처 통행로에도 중앙분리대가 있어 차량 통행이 원활하지 못하다. 이곳 역시 중앙분리대 근처에 주차한 차량이 있을 땐 반대편 차선으로 진입해야 한다.

요즘 들어 민원으로 설치되는 ‘교통장애물’이 늘고 있다는 것이 동남구청 교통지도팀 담당 공무원의 설명이다. 또, “주정차단속이 안 이루어지는 지역이다 보니, 불편을 감수하는 건 불특정 다수인 시민들이 될 수밖에 없다”라는 안타까움을 덧붙였다.
 
 
쌍용동, 갓길주차 된 차와 규제봉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는 차량

중앙분리대 vs 갓길 주정차, 뭐가 문제일까? 

중앙분리대와 갓길 주정차 차량으로 인해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 불편을 호소한다. 주정차단속 구역이 아니다 보니 갓길주차 차량 운전자들 역시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도로 교통안전 역할을 해야 할 중앙분리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차량 흐름을 방해하는 ‘교통장애물’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왕복 2차선, 거기다 인도조차 없는, 넓지도 않은 통행로에 중앙분리대 설치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또, 흰색 실선 갓길주차가 아무리 단속 대상이 아니라 해도 통행에 지장을 준다면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 아닐까?

서북구 교통지도팀 담당자는 “도로교통법 제35조 제1항에 의하면 다른 교통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차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방해 여부는 경찰에서 판단한다”라며 “갓길주차 허용구역이라도 교통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면 범칙금을 부과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주정차금지구역은 관할구역 경찰청에서 지정하고, 민원이 제기된 시설물은 시청에서 설치한다. 시설물 유지보수와 주정차단속 과태료 부과는 구청에서 주관하고, 주정차단속 범칙금 부과는 경찰서 소관이다.
 
박희영 기자 park5008@ca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