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작가와 고딩 화가들이 함께 만든 그림책
할매 작가와 고딩 화가들이 함께 만든 그림책
  • 박희영 기자
  • 승인 2019.12.19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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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내 인생의 봄날입니다”
12월 12일(목) 충남교육청평생교육원은 ‘오늘이 내 인생의 봄날입니다’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이번 기념회는 지난 3월부터 진행한 세대공감 인생이야기 사업의 하나로 환갑이 넘은 나이에 배움에 뛰어든 어르신 16명이 직접 글을 쓰고 충남예술고등학교 미술과 한국화 전공 학생 17명이 일러스트 작업에 참여했다.
 
출판기념회에서는 축하공연, 출간도서 책 낭독, ‘오늘이 내 인생의 봄날입니다’ 단막극, 원화전시 행사가 진행됐다.
 
최다빈양의 그림을 보고 환하게 웃는 어르신들

 

“내 얘기가 책으로 나왔다니 감동이야” 
 
중학학력인정과정 어르신들과 학생들이 함께 낸 그림책은 ‘어느새 먼 옛날이야기’ ‘사랑하는 가족 이야기’ ‘공부하면서 달라진 인생’ 총 3부로 구성, 남편과 자식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등 할머니들의 담담하고 굴곡진 삶과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려진 그림이 담겨있다.

출판기념회 현장에 모인 할머니 작가들은 자서전 출간을 기뻐하며, 지난 세월이 생각나는지 눈시울이 붉다.

백발이 성성한 문정인(85세) 어르신은 “초등학교도 못 다녔다. 사회생활에 불편함은 없었는데, 막상 배움의 터전에서 공부를 해보니 공부가 어렵다(웃음). 같은 반 친구들과 같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책이 돼서 나온 것이 놀랍고 반갑다”라며 “우리 친구들이 죄다 문학가들이지”라는 축하 인사를 전했다.

이어 문원희(73세) 어르신은 “내가 쓴 책을 받아보니 감동이다. 학생들이 그림을 잘 그려줬다. 정말 고맙다”라며 “평생교육원의 노고에 감사한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준 선생님들한테도 같은 마음이다. 여러분들 덕분에 당당하고 굳센 학생이 될 수 있었다”라고 말하며 울컥했다.
 
출판기념회에서 소감을 이야기하는 문정원 어르신

 

#낯섦 #공감 #할머니들의 삶 
 
21세기에 태어난 10대 청소년들에게 집안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에 다니지 못했다든지, 양잿물을 숭늉으로 착각해 마신 탓에 돼지 구정물로 속을 비워내야 했던 어르신들의 사연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혹시 그저 그런 고리타분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옛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사실 일러스트 작업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할머니들의 사연이 낯설긴 했더란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내 해결방법을 찾아냈다. 다름 아닌 인터넷 검색과 할머니 찬스.

돼지구정물(글 어해숙) 삽화를 그린 김시운(2학년)양은 “돼지는 알았어도 돼지구정물이란 말은 처음 들어본 말이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시절의 일이라 이해하기 어려워 외할머니와 이야기 나누면서 글의 내용과 정서를 파악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보릿고개(글 문원희) 일러스트를 담당한 최다빈(2학년)양 역시 “보릿고개라는 말 자체가 생소했다. 어떤 건지 몰라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담임선생님께 여쭤보기도 했다”라고 했고, 맞선 보는 날과 나는 달라졌습니다(글 송천숙) 그림을 그린 강민구(2학년)군은 “처음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봤다. 부담스러웠지만 설렘도 가득했다”라며 “할머니의 젊은 시절 옷차림새와 집 안팎 모습이나 음식 자료를 더 찾아보고 그릴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라고 이야기했다.
 
보릿고개 <글 문원희, 그림 최다빈>

 

돼지구정물 <글 어해숙, 그림 김시운>

 

맞선 보던 날 <글 송천숙, 그림 강민구>

 

잊을 수 없는 친구 영자 <글 박귀남, 그림 한채연>

 

할머니와 아이들 모두 뜻깊은 시간 
 
‘오늘이 내 인생의 봄날입니다’ 그림책 출간은 구구절절한 사연을 글로 풀어내며 작가로 활약했던 할머니들, 세대를 뛰어넘어 과거의 어느 한순간을 그림으로 표현한 학생들 모두에게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그림책을 받아 본 어르신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예쁘게 잘 그렸다”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학생들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할머니들 덕분에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최다빈양과 김시운양은 “할머니들이 늦게 시작한 공부로 인해 행복해하시는 걸 보고 지금 우리가 학교에서 누리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 “어르신들이 하고 싶었던 공부를 마음껏 하면서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라는 감사와 응원의 말을 남겼다.

이런 손주들의 마음을 아는지 어르신들은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할 것”이라며 “멈추지 않고 배움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리고는 시집이나 자서전을 출판하고 세계 여행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이야기한다.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꿈을 꾸는 할매들 앞날에 꽃길만 가득하길. 또, 매일매일이 인생의 봄날이길.
 
문의 : 충남교육청평생교육원 041-629-2043
박희영 기자 park5008@canews.kr
 
작업 중인 김시운양의 그림을 보는 어르신과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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