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성산 능선 따라 동학혁명과 독립만세운동의 숨은 역사를 만나다
세성산 능선 따라 동학혁명과 독립만세운동의 숨은 역사를 만나다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9.03.1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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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특집 2부
 
천안아산신문은 지난 64호와 65호에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특집 기획 1부를 진행했다.
이번 67호부터 69호까지는 기획 2부를 진행하며 그동안 우리가 놓쳐왔던 새로운 관점의 기록을 함께한다. 어느 한 사람의 성과만으로 독립을 이룬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나라 위해 이름 없이 싸우다 죽어간 수많은 순국선열의 소중함과 독립운동의 뿌리를 떠올릴 기록이다.
<편집자 주>
 
- 2부 글 싣는 순서 -
 
67호 동학농민혁명의 길
68호 대 이은 독립운동의 후예
69호 진정한 민중 독립운동의 날, 4.1문화제
 

‘동학3.1’혁명‘의 길’을 걷다
 
따사로운 봄이 온다. 춥고 어두운 밤 길었던 겨울 속에서 얼마나 기다렸던 봄인가.

100년 전 대한민국 국민은 스스로 나라의 봄을 되찾았다. 그리고 지금, 수많은 희생의 역사를 딛고 바로잡은 새로운 봄을 맞이하려 한다.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취지의 연구모임인 천안역사문화연구회는 역사적인 길을 발굴해 올해부터 매월 걷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동학3.1’혁명‘의 길(이하 동학혁명길)’과 ‘민촌 고향길’이다. 특히 동학혁명길은 천안이 독립운동의 발상지 역할을 했던 것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의 잠재적 근간이었던 동학농민운동에서 천안이 주요격전지임을 알려주는 역사적인 길이다.
 
 
매월 한 번씩 역사의 현장과 만나 
 
동학혁명길은 매월 첫째 토요일에 걷는다. 지난달 2일 오전 9시. 약 30여 명이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선진정공 앞 여우고개에 모였다.
 

송길룡 천안역사문화연구회 실장은 “당시 세성산엔 1500~3000명으로 추산하는 동학혁명군이 주둔해 군사훈련을 했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세성산 능선 안쪽은 분지였고 능선 너머는 급격한 절벽을 이루고 있어 천연의 요새 같은 지형이었다.

이용길 천안역사문화연구회장은 “신동엽 시인의 ‘금강’이라는 대서사시에 이곳 전투를 그린 대목이 있다. 얼마나 감동적으로 묘사했는지 마치 혁명군의 함성이 들리는 듯한 시”라며 벅찬 감정을 전달했다. 참가자들은 모두 함께 느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바꿀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항쟁이 선연히 떠올랐다.
 

아우내를 한눈에 바라보는 세성산 
 
세성산 능선을 따라 걸으니 금세 정상의 장군바위다. 산 아래에 신방천을 아우른 병천천이 보인다. 이곳의 지명이 아우내인 이유다. 이 병천천이 미우천과 만나면 금강을 따라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장군바위 앞 ‘천안 세성산성’이라는 표지석엔 천안 최대 동학 격전지인 세성산이 얼마나 역사적인 곳인지 제대로 된 설명은 찾을 수 없었다.

이용길 회장은 “예전에는 천안시가 ‘일본군의 협조를 받아 동학군을 몰살한 장소’라고 써놨었다. 분노한 시민들 200여 명이 제사 지내러 와서는 부숴버린 후 다시 세운 이 표지석도 설명이 충분치 않다. 어마어마한 사건이 일어난 곳을 천안시와 충남이 은폐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갑오농민전쟁 세성산 전투 희생자 위령비

능선을 내려와 ‘갑오농민전쟁 세성산 전투 희생자 위령비’에 들러 묵념했다. 이어 진곡사를 지나 세성교를 건너 병천천을 따라 걷는 길은 평화로웠다. 송영배 천안역사문화연구회 국장은 ‘천안의 섬진강’이라며 병천천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김구응과 최정철 열사 이야기, 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중요 
 
김구응 열사와 최정철 열사의 묘에 도착했다. 송길룡 실장에 따르면 아우내장터에서 4월 1일 가장 앞자리에서 만세 시위를 했던 김구응은 두개골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어머니 최정철 여사는 “정당한 일을 하는데 왜 총까지 쏘냐”고 항의하다 총검에 찔려 죽었다. 어머니와 아들이 일제에 항거하다 한꺼번에 죽임을 당했다.
 
김구응과 최정철 열사의 묘

 

이 회장은 “얼마나 처절한 이야기인가. 김구응 열사와 최정철 열사는 ‘한국의 피에타’라 불릴 만하다”고 우러렀다.

송 실장은 “미국에서 발행한 신한민보에도 당시 김구응 열사 이야기 중심으로 아우내 만세운동을 소개한 기사가 나왔다”며 “해방 후 유관순이 전면 등장하며 완전히 아우내 이야기가 옮겨졌다”고 설명했다.

김구응 열사 이야기는 많이 가려져 있었다. 사람들은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와의 조우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끝까지 일제에 항거한 유관순 
 
일행은 유관순 열사 사당에 들러 참배했다. 송길룡 실장은 “유관순 열사가 훌륭한 건 감옥에서 참혹한 인권유린과 모진 고문을 견뎌낸, 10대 소녀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저항정신”이라고 찬사했다.
 

매봉산에서 송 실장은 “매봉산에 중요한 유적은 만세운동에 사용한 봉화대 흔적”이라고 말했다.

유관순열사 봉화탑

지난 3월 2일 혁명길 탐방에 참여한 김경숙씨는 3.1만세공원에서 “세성산이 동학혁명격전지였음에도 제대로 된 표지판이 없고 관광 안내 수준이어서 아쉬웠다. 만세공원 동상들이 친일 작가 작품이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천안역사문화연구회가 준비한 두 가지 길을 다 걸어보고 싶다”며 “산악회 갈 생각이 있다면 이왕 걷는 거 뜻깊은 역사길을 걸어보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오른쪽에 모자상이 김구응과 최정철 열사

이용길 회장은 “앞으로도 지속해서 혁명길을 걸을 것이다. 천안지역 동학운동 세성산 전투를 역사적으로 복원하고 재평가해야 하며 동학과 3.1혁명의 역학 관계를 규명해야 한다. 아우내 4.1혁명의 역사적 배경, 인물, 조직, 사건 전개 등을 입체적으로 규명하고 균형 있게 평가하는 작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노준희 기자 dooaium@hanmail.net
 

<동학3.1‘혁명’길 코스>
‘동학3.1‘혁명’길은’ 세성산 동학농민혁명 격전지에서 아우내 3.1운동 발상지까지 약 10Km를 걷는 길이다. 1894년 동학혁명부터 1919년 3.1운동까지 큰 역사의 물줄기를 잇는 역사탐방코스다.

전문가의 해박한 역사 지식과 설명은 가려진 우리 역사를 인식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우리 민족 항거의 사적지를 실제로 돌아보며 느끼는 감흥은 역사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문의 : 041-570-0034 / 1522-3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