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더 깊어지는 시집 한 권 '빗소리 따라 그곳에 다녀오다'
가을이 더 깊어지는 시집 한 권 '빗소리 따라 그곳에 다녀오다'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18.09.2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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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할 것 덜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그리고 읊조림

여름을 지내고야 알았다. 그저 순리대로 돌아가는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것이었는지. 때가 되어야 불어올 잔바람을 그토록 기다렸던 적이 또 있던가. 냉방기에 의존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뎌내지 못하는 불기운 앞에 모든 불평이 쑥 들어가 버렸다. 여름아 어서 가라, 가을아 얼른 와라. 하루하루 주문 외우듯 되뇌며 지낸 시간. 절대 순리를 거스르는 법 없는 시간은 어느새 그저 계절을 바꾼 것만으로 행복을 선사했다.
고비를 벗어나고 여유가 생기니 이제야 주변을 둘러본다. 나설 수 없어 쳐다만 보던 한낮의 거리는 조금씩 색과 빛을 달리하고, 감히 올려다 볼 엄두조차 낼 수 없던 하늘은 끝없이 높다. 항상 보아오던 풍경이건만 그저 새롭다. 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익숙함. 항상 곁에 있어 지루한 줄로만 알았던 평범한 일상은 그렇게 소중해졌다. 시집 ‘빗소리 따라 그곳에 다녀오다’가 건넨 읊조림처럼.

“모두에게 귀함을 일깨워주는 것이 문학의 역할”  

“많은 의미를 함축하는 시의 문학적 행위를 좋아한다. 호흡을 가다듬어 시집 한 권을 내는 것이 문학적 바람이다. 존재의 의미를 찾고 모두에게 귀함을 일깨워주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다. 시를 통해 세상과 공감하고 싶다.”        - 2016년 11월. 수필집 「그리움, 그 마른 상상력」 출간 당시 인터뷰 기사 중

‘빗소리 따라 그곳에 다녀오다’는 시인이자 문화예술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정우 미래교육연구소장이 펴낸 시집이다. 2016년 수필집 ‘그리움, 그 마른 상상력’을 출간하고 2년 만에 바람을 이루었다.

이정우 시인
천안 출생. 1994년 ‘시와시론’을 통해 문단 데뷔.
천안문인협회 회장과 충남문인협회 이사 역임.
천안수필문학회와 백매문학회 동인으로 활동 중.
현재 천안예총 부회장과 충남예총 감사를 맡아
지역문화예술 활동에 열정을 쏟고 있고,
인문학 강의와 문화예술 컨설팅 활동에 매진.

윤성희 문학평론가는 작품해설에 “이정우는 연전에 몽글몽글한 순두부를 닮은 수필집을 내고 ‘그리움, 그 마른 상상력’이란 제목을 달았다.(중략) 이번에는 두부다. 순두부의 물기를 잡아내서 유연하고 탄력 있게 재탄생시킨 두부다.(중략) 모래바람처럼 건조하지도 않고 격정의 소용돌이에도 매몰되지 않는 감수성, 연륜이 아니면 얻기 어려운 그 감수성 안에 그는 수많은 융털을 갖춰 놓고 있었다”고 적고 있다.
시집은 제목만으로도 한동안 먼 곳을 쳐다보게 한다. ‘빗소리’ 그리고 ‘그곳’. 누구의 가슴에라도 반드시 담겼을 그리움을 단 두 단어로 짚어낸 제목의 시집은 일상을 시어에 담아 그저 덤덤히 건넨다. 뜨거운 계절과 맞서느라 부쩍 흥분했던 심신은 한 편 한 편 시를 넘겨가며 덕분에 차분해진다.  
동시에 시 곳곳에서 발견되는 정겨운 내 고장이란…. 시구에 자리한 ‘흑성산’ ‘율금리’ ‘봉서산’ ‘성정동’을 발견하니 마음이 활짝 열린다. 섬진강이 아니라, 백두산 한라산처럼 탄성이 와락 쏟아지는 절경이 아니라 내 일상이 모두 시의 한 구절. 어쩌면 더 바싹 다가와 앉는 정겨운 시구다. “백석의 시를 읽으면 촌에서 나고 자란 촌놈이라는 점이 자부심으로 변하는 것을 느낀다”던 지인의 이야기가 비로소 완벽히 이해된다. 
이정우 시인은 시집을 내며 “우리 삶에 녹아든 경험과 추억이 가지는 가치를 일상에서 건져 올려 그리움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했다”고 털어 놓고 있다. 그리움의 본질을 좇는 시인의 발걸음은 수필집 ‘그리움, 그 마른 상상력’에서 이미 발견된 바 있다. 시인으로 등단한 작가가 펴낸 수필집은 시인 듯 산문인 듯 물기 촉촉하게 다가와 시인의 기억 속에 자리한 그리움을 알렸고, 이번엔 시집을 통해 마음을 울린다.
그래서일까. 손에 받아든 8월 뜨겁던 여름부터 시집은 내내 손을 떠나지 않는다. 시 한 편 읽고, 그보다 더 오래 먼 곳을 그저 바라보게 되는 시간. 시와 함께, 그렇게 가을이 더 깊어진다.

빗소리 따라 그곳에 다녀오다(2018. 이정우. 동학사, 한국현대시인선 30)
빗소리 따라 그곳에 다녀오다
(이정우. 동학사, 한국현대시인선 30. 2018)

김나영 기자 namoon@ca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