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의 그림책 이야기 - 그림책 읽어주기 3 방식
전진영의 그림책 이야기 - 그림책 읽어주기 3 방식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4.03.04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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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렸을 때 일입니다. 친구들이 집으로 놀려왔습니다. 아이는 부엌에 있는 저에게 오더니 투덜거립니다. 좋아하는 장난감을 친구들이 갖고 노는 게 싫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아이가 좋아한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 그림책 한 구절을 말했습니다. “구리와 구라는 욕심쟁이 아니라고 했는데 사이좋게 기다린다고 했는데.” 다그치거나 훈계하는 말보다 효과가 좋았습니다. 그림책 읽어주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 나카가와 리에코 (지은이), 야마와키 유리코 (그림) / 한림출판사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 나카가와 리에코 (지은이), 야마와키 유리코 (그림) / 한림출판사

엄마가 못마땅하거나 엄마 말을 듣지 않던 아이들이 그림책을 읽어줄 때면 몰입하는 모습이 대견했습니다. 도서관을 찾아가 책 읽어주기 자원봉사를 시작했고, 독서 수업을 오래 했습니다. 저의 독서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그림책을 감상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의 듣는 시간이 소중할수록 읽어주는 이로써 고민이 생겼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을 읽어보겠습니다. 성인과 초등학생에게는 글자 그대로 읽어주어도 무리가 없으나 여섯 살 정도의 아이들에게는 글자 그대로 읽어주기가 곤란했습니다. 아이들은 지루해했고 싫증을 느꼈습니다. 듣는 아이에 맞춰 개작해서 읽었는데 이래도 되나 싶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문장뿐 아니라 단어 하나, 마침표 하나까지 신중히 선택하셨음이 분명한데 내가 감히 바꿔도 될까?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문학 작품이어도 듣는 이의 연령에 따라 읽어주는 방법이 달라져야 하는 게 아닐까? 저는 글자 그대로 읽어주는 것보다 듣는 이에 맞춰 바꿔 읽어주는 것이 나은 그림책을 자주 만났습니다. 대화체 문장이 아님에도 대화하듯이 읽어주는 것이 효과적일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원전에 충실하지 않아도 될까? 또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책을 읽다가 멈추고 설명해도 될까? 읽고 있던 부분에서 다시 앞부분으로 돌아가 내용을 확인해도 될까?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쌓여 있었습니다.

저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책을 만납니다.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만든 <스토리텔링 운영 매뉴얼>과 이송은이 쓴 <스토리텔링과 책놀이 2>에서 읽기 유형을 5가지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숨이 트였습니다. 읽기 유형은 듣는 이에 따라, 작품에 따라, 활동목적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께 죄송했던 마음이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할아버지와 천혜준(모산초 3)
할아버지와 천혜준(모산초 3)

하루는 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왜 책 읽어주기를 고민해?’ 저는 책 내용을 잘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스토리가 잘 이해되도록 읽어주고 싶었습니다. 더 욕심을 내면 제가 읽어주는 시간 동안 듣는 아이가 한순간이라도 몰입하기를 바랐습니다. 이야기에 몰입한 경험을 다른 일에서도 경험하기를 바랐습니다. 또 듣는 이가 가만히 있기보다는 읽는 과정에 참여하기를 바랐습니다. 제가 읽어준 그림책을 낯선 장소에서 만났을 때, 책으로 그 공간이 친숙해지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36개월 미만 아이들의 북스타트 수업을 만 10년 했습니다. 한 어머니가 “선생님 덕분에 우리 애가 어린이집을 잘 다녀요.” 하는 겁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제가 수업한 <달님 안녕> 그림책이 어린이집에 있다는 겁니다. <달님 안녕> 그림책으로 처음 간 어린이집에 잘 적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책은 낯선 공간을 친숙하게 만드는 힘도 있습니다.

제가 활용하고 있는 읽어주기 방법들을 모두 적어봤습니다. ‘그림이나 글자 가리고 읽어주기, 등장인물의 대사 만들며 읽어주기, 의성어와 의태어 동작으로 표현하며 읽어주기, 주인공 이름 대신 듣는 아이 이름으로 읽어주기…….’ 적어 내려가니 한 페이지 가득했습니다. 이 방법들을 모아 보니 비슷한 방법들이 보였습니다. 서로 묶어 봤습니다. 크게 3가지로 모였습니다. 표지 읽어주기 방식, 책 중심 읽어주기 방식, 관계 중심 읽어주기 방식입니다. 표지 읽어주기 방식은 읽게 될 그림책에 흥미를 갖게 하는 10개 방법이 있습니다. 책 중심 읽어주기 방식은 그림책의 내용을 잘 전달하고자 하는 12개 방법이 있습니다. 관계 중심 읽어주기 방식은 읽어주는 이와 듣는 이의 관계가 좋아지기를 바라는 4개 방법이 있습니다. 26가지나 되는 방법들을 다 알아야 한다면 그림책을 읽어주기도 전부터 집어 던지고 싶어집니다. 일단 읽어주기부터 시작하십시오. 읽어주고 듣는 시간 동안 그 어떤 강요도 교육도 하지 마십시오. 읽어주는 이도 부담이 없어야 하고, 듣는 이에게는 오로지 즐거움만 있어야 합니다. ‘그림책 읽어주기 3 방식’은 그림책에 따라 읽어주기 방법을 취사선택하면 됩니다. 본인에게 맞는 그림책 읽어주기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그림책 읽어주기 방법이 어디 이뿐이겠습니다. 열심히 읽어주다 보면 더 나은 방법을 찾게도 될 것입니다.

저는 그림책 읽어주기를 통해서 양육자의 육아가 편하길 바랍니다. 서로가 스트레스를 덜 받았으면 합니다. 듣는 이에게 그림책은 즐거움 자체이길 바랍니다. 제가 그림책 읽어주기를 중요하게 여긴 건 엄마와 아이가 같이 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책보다 사람이었습니다. 전자기기와 인터넷이 얼마나 발전했는데 고리타분하게 읽어주라고 하나요? 라고 물으신다면 최근에 아이에게 오롯이 집중한 시간이 언제였나요? 라고 되묻고 싶습니다. 우린 뭐가 바쁜지 쫓기듯 살고 있습니다. 그림책을 함께 보세요. 짧은 시간에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입니다.

글 전진영 달님그림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