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철학사산책02] ‘왕정타도’라는 철학의 목표
[천안철학사산책02] ‘왕정타도’라는 철학의 목표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11.30 07: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번에 도올 김용옥 선생의 천안 방문 이야기로 글의 포문을 열었으니 도올 선생 이야기를 좀 더 해보기로 한다.

도올 선생은 2021년에 동경대전에 관한 두툼한 책을 간행했다. 이름하여 책제목도 『동경대전』(통나무 출판)이다. 각각 거의 600쪽에 달하는 데다 판형도 제법 큰 두 권의 분량으로 그의 연구내용과 해설과 동경대전 번역과 주석 등등이 빽빽하게 차곡차곡 들어있는 가히 역작이라고 할 만한 책이다. (그렇다고 꼭 사서 보시라고 노골적으로 홍보하자니 좀 거시기하긴 하다.)

도올 김용옥 선생의 『동경대전 1, 2』책표지

『동경대전』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동경대전은 쉽게 말하면 동학의 경전이다. 그 위상으로 치면 민족의 경전이라 평가하는 학자도 있다. 목천판 동경대전의 간행소터로 비정되는 천안시 동면 죽계리 구계마을을 직접 둘러본 도올 선생은 그곳을 아예 “민족혼의 성지”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내가 입술에 약간 침을 묻혀놓고 말하자면, 그런 대단한 동경대전을 샅샅이 구석구석 살펴보고 뜯어보고 동서고금의 온갖 철학적 성취들을 적절히 갈무리하여 주석으로 달아넣고 찬탄과 경외의 평가를 내리고 있는 도올 선생의『동경대전』은 첫장을 넘기면서부터 펼쳐지는 글의 내용이 결코 예사롭지가 않다.

우선 그 책의 책머리글이라 할 만한 ‘개경지축(開經之祝)’이라는 글의 한 대목을 살짝 끌어와서 읽어본다.

동학을 근대의 출발이니, 근대성의 구현이니 하는 모든 언설(디스꾸르)은 이제 불식되어야 한다. 우리 역사는 서구가 추구해온 근대라는 이념을 추종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서구의 근대가 낳은 것은 터무니없는 진보의 신념, 인간의 교만, 서양의 우월성, 환경의 파괴, 불평등의 구조적 확대, 자유의 방종, 과학의 자본주의에로의 예속, 체제(System)의 인간세 지배, 민주의 허상 …… 이런 것들의 안착일 뿐이다. 왕정의 타도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과제상황일 뿐이며 오직 이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일 뿐, 이에 대한 서구적 패턴을 우리가 반복해야 할 의무는 없다. 동학은 혁명인 동시에 개벽이며, 그것은 근대를 맞이하는 운동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다웁게 살아가는 대도大道를 제시한 것일 뿐이다.

지금 여기서 위 인용문에서 이야기하는 서구 근대의 문제점들을 일일이 해설할 수는 없다. 이건 뭐 장황히 두고두고 공부해가며 떠들 수밖에 없으니 앞으로 차차 풀어갈 과제로 남겨두기로 한다. 아무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것이다. 이 인용문에서 나는 “왕정의 타도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과제상황일 뿐이며 오직 이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일 뿐”이라는 구절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딱 벌리며 놀라고 말았다는 것이다. 우와~ ‘왕정타도’야말로 우리가 직면한 최대의 역사적 사명이구나 하는 깨달음!!

그렇지만 대번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지금은 왕정의 시대가 아니잖아. 저기 저~기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국가에서나 왕정이 온존하고 있을 뿐 지구상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공화정 아닌가? 최소한 공화정 비스무리한 민주주의 체제를 가지고 있는 게 보편적인 거 아니냐 이 말이야. 그런데 1945년 해방 이후 민주공화제가 채택되어 운영되는 대한민국이, 아니 글쎄, 도올 선생의 말씀으로 치자면 아직도 왕정이란 말인가? 이게 도대체 어찌된 말이란 말인가?’ 이렇게 궁시렁대면서 한참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러니까 옳거니! 비록 대통령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해도 대통령이 그 이름도 무색하게 왕처럼 군림하고 국민을 옛날 무지렁이 백성처럼 굴려먹고 그러면 그게 터무니없는 전제 왕정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오호라~ 왕정이란 표현은 비유일 수가 있겠구나. 민주주의 시대에 왕처럼 지배하는 국정운영자라면 한국에서는 독재자라고 아우성치며 몇 번씩 쫓아내고 그랬잖아. 그게 왕정타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 나름 똑똑해진 것을 기특하게 여기면서 이치를 맞추어가며 해석을 해보는 것이었다.(그런데 도올 선생님, 이렇게 해석하는 거 맞나요?)

그런 논리가 맞다면, ‘왕정타도’는 그 옛날 왕조시대의 억압받던 백성들의 과제였을 뿐 아니라, 정치체제가 민주공화제로 바뀐 지금에도 왕정으로 되돌아가려는 지배자가 등장한다면 언제든지 다시 민중의 저항적 사명으로 떠오르는 최대 과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걸 도올 선생은 서구 사례를 굳이 따라가지 않아도 동학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금새 알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 설파한 것이렷다!

그렇다면 지금 절박하게 공부해보고자 하는 철학의 목표는 다름 아니라 ‘왕정타도’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왕정타도’를 향한 철학. 오 그거 흥분되는 기묘한 목표로구나.

지난 11월18일 도올 김용옥 선생과 동행 시민들이 목천판 동경대전 간행소터인 천안시 동면 죽계리 구계마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지난 11월18일 도올 김용옥 선생과 동행 시민들이 목천판 동경대전 간행소터인 천안시 동면 죽계리 구계마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이 마당에 나는 『동경대전』의 ‘수덕문’ 부분에서 의미심장한 한 구절을 옮겨와 본다.

仁義禮智, 先聖之所敎; 修心正氣, 惟我之更定.

인의예지, 선성지소교; 수심정기, 유아지갱정.

[도올 번역] 인의예지는 앞선 성인(공자·맹자)의 가르침이지만 수심정기修心正氣는 오직 내가 새롭게 창안한 덕목이다.

큰글자로 큼직큼직 확대해 놓으니 왠지 멋있어 보이기는 한다. 위의 구절에 나오는 ‘수심정기修心正氣’가 특별히 중요한 실천덕목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도올 선생은 아래와 같이 해설하고 있다.

따라서 “수심정기修心正氣”라는 것은 기존의 어떠한 철학체계와도 다른 새로운 “하느님의 철학”이다. 그것은 유학의 세계관과 겉으로는 비슷하게 보이지만 근원적으로 다른 하느님의 실천철학이다.

자 이렇게 해서 여기서 공부하고자 하는 두 가지를 얻었다. 하나는 철학의 목표로서 ‘왕정타도’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천철학으로서 ‘수심정기修心正氣’라는 새로운 “하느님의 철학”이 그것이다.

목표와 실천방법을 설정해 놓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왕정타도!! 수심정기!! 이렇게 구호를 외치면서 오늘의 글을 마무리짓기로 한다. 자세한 풀이는 앞으로 차차 채워가기로 한다.

글 송길룡(천안역사문화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