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호박이 좋다
늙은 호박이 좋다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9.3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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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도 처진 눈꺼풀도 지난날 삶의 흔적인 것을.

칠십 중반인 엄마는 허리도 곧고 몸이 반듯한 데 비해 주름살이 많다. 깊은 주름 골 때문에 화장하기도 곤란하다. 눈꺼풀은 점점 늘어져 내려앉았다. 졸지 않는데 졸고 있다고 하니 난처한 경우가 많았단다. 이번엔 같이 올 목적으로 엄마 집으로 김장하러 갔다. 김장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성형외과에 문의해 처진 눈 수술하기로 했다.

며칠 후, 엄마는 수술받지 않겠다고 한다. 갑작스러웠다. 메주가 잘 마르고 있는지. 곶감이 바람에 떨어졌다는데 못 쓰게 됐는지. 빨리 내려가 봐야 한다며, 수술은 무슨 수술이냔다. 인터넷 들어가 가수 오승근 노래 <내 나이가 어때서>와 나훈아의 <고장이 난 벽시계> 두 곡을 글자 크게 뽑아 달란다. 엄마의 확고한 말에 성형외과 예약을 취소했다.

달라진 엄마 얼굴을 상상하며 기대에 찼었다. 뱃속 아기가 태어나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기쁨이랄까.

그런데 엄마는 가방에 옷가지를 넣고 시골 내려갈 채비를 한다. 오늘 밤만 지나면 갈 요량이다. “호박에 줄을 긋는다고 수박 되냐? 생긴 대로 살아야지. 돈을 들여 왜 얼굴에 왜 칼을 대느냐.”라고 하니 기대가 무너졌다. 연세가 있어서 기회는 이번뿐이라 생각했는데

이튿날이 되었다. 다시 생각하는 게 어떻겠냐고, 올라온 김에 눈이 시원하게 하고 가면 좋겠다고 하자, “그래볼거나.” 엄마가 넌지시 허락했다.

어느 순간 내 말에 세뇌된 것일까? 다음 달 오빠의 둘째 딸인 손녀 결혼식에 예쁘게 화장하고 싶은 까닭일지도 몰랐다. 나이가 들어도 여자의 마음은 변치 않는다는 걸 은연중에 보여주는 것 같았다. 어릴 적을 뒤 돌아보니 엄마의 젊은 날은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얼굴을 씻고 또 씻었었다. 머리카락 한 올 내려오지 않게 참빗으로 빗어 반듯하게 앞가르마를 타 비녀를 꽂았다. 그 옛날 동그랗고 예뻤던 엄마 얼굴은 간곳없고 주름만 가득하다.

수술은 생각지 못할 큰 파문을 불러왔다. ‘상안검과 하안검’ 눈 위아래를 잘라내는 수술이다. 엄마는 수술한 날 밤부터 토하며 힘들어했다. 우리 모녀는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눈두덩은 멍이 들고 부어올랐다. 나중엔 머리까지 아프다니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나 나는 고민에 빠졌다.

고지식한 오빠와 동생들 올케들 얼굴이 한꺼번에 스쳐 갔다. 내가 어떤 지청구를 들을지 이런저런 생각에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날이 밝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병원 문 여는 시간을 또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때 삼십 분은 너무나 길었다. 나의 급한 목소리에도 간호사는 느긋하게 오후에 오라고만 했다.

나이, 체질에 따라 그럴 수 있단다. 특히 성형외과 약은 다른 약에 비해 독하지만 삼일 정도 지나면 괜찮아질 거란다.

의사 선생님은 링거를 한 대 맞으면 한결 좋아질 거라 했다. 주사를 맞아서인지 조금은 나아진 듯했는데 다시 토하기 시작했다.

“나이 먹어서는 절대 수술할 것이 못 된다.”

“너희 오 남매 낳았을 때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평생 수술 한번 안 한 몸에 칼을 댔다며 자신의 큰 불상사를 고취하고 있었다. 전에 모습과 너무 달라서 시골도 못 갈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불안해할 때마다 병원에 전화해서 엄마를 안심시켰다. 시일이가면 자연스러워진다는 병원 측 답변을 엄마께 전달하기에 바빴다.

처진 눈을 개선하고 젊어진 모습을 기대했던 나는 심각한 결과에 망연자실했다. 아래위를 잘라낸 눈은 찢어져 올라갔으며 미간 주름도 어쩐지 도드라져 보였다. 내가 봐도 예전의 순한 이미지는 간곳없고 사나워만 보였다. 엄마는 아무리 봐도 고양이상, 호랑이상이라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나는 부엉이 눈을 닮아 동글동글 귀엽다고 살짝 거짓말을 했다.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을 것 같다고 했지만 나 역시 자신이 없었다. 아무래도 잘못된 일인 것만 같았다.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힘든 2주가 지나갔다. 통증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수시로 엄마 눈 사진을 찍어 수술 전과 비교했다. 누워서 찍고 앉아서 찍고 곁눈도 찍고 웃을 때와 웃지 않을 때 밑으로 뜰 때와 위로 뜰 때 여러 각도로 살폈으나 여전히 눈은 나아진 게 없었다. 그나마 누워있을 때는 조금 괜찮아 보였다. 잠잘 때마다 관찰하고 조심스럽게 테이프를 붙이고 낮엔 연고를 발랐다. 그 정성에도 엄마의 불편한 심기는 여전했다. 내 마음도 언짢아졌다. 이렇게까지 될 줄 누가 알았겠냐고 좀 기다려 보자고 나도 힘주어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딸의 마음을 알겠다는 듯,

“엄마 생각해서 돈 써가며 신경 쓰고 애썼다.”

“너는 너의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말리지 못했던 내 잘못이 크다.”라고 했다.

그 기회를 틈타 나는 슬쩍 농담했다. “다음에 엄마 저승 가면 너무 예뻐서 아버지가 못 알아보겠다.”

내 말에 엄마는 하하하 웃었다. 엄마가 웃어야 나도 웃을 수 있는 요즘이다. 이번 수술을 통해 오랜 세월 몸이 약해져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수술은 신중해야 한다는 걸 실감한다. 얼굴이 젊다고 몸이 젊은 것도 아닌데 괜히 고생시키고 얼굴에 흠집만 낸 것 같아서 엄마께 죄스럽다. 모처럼 한의원으로 치과로 점검을 받으러 다녔다. 오는 길에 건강원 앞 평상에 누렇게 잘 익은 호박들이 놓여있었다.

“호박 좀 봐라. 골이 깊은 것이 내 얼굴하고 똑같다?”

“우리 엄마 닮았네.” 나도 맞장구를 쳤다.

엄마와 나는 모처럼 크게 웃었다. 한 달 동안 함께 지내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주름도 처진 눈꺼풀도 지난날 삶의 흔적인 것을. 내 맘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당신이 겉모습보다는 건강한 몸이어야 한다는 걸 알기에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어 준 엄마께 감사하는 마음이다.

“엄마, 하고 부를 수 있어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글 김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