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열사의 숭고한 나라 정신 기리는 제103주기 추모제 열려
유관순 열사의 숭고한 나라 정신 기리는 제103주기 추모제 열려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9.30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월 21일 오전 11시, 유관순 열사 추모각에서는 순국 103주기 유관순 열사 추모제가 있었다.

이 추모제는 천안시와 (사)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가 주관하였다. 행사는 유족과 보훈단체, 유관기관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추념사, 추모사 낭독, 헌화·분향, 추모의 글, 유관순 노래 제창, 만세 삼창의 순으로 진행됐다. 원래 유관순 열사의 순국일은 9월 28일이나, 올해 추석 전일이어서 21일에 거행되었다.

추모제에 참석한 박상돈 천안시장은 “유관순 열사는 103년 전 온갖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대대적인 옥중 만세운동까지 전개하면서 자유, 민주, 문화의 힘을 가진 국가를 꿈꿨다"며, "열사가 꾼 꿈은 오늘날까지 귀중한 교훈을 남겨 우리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어 우리 역사의 꺼지지 않는 등불로 길이 빛나고 있다”고 했다.

올해 유관순 횃불상을 수상한 천안여고 송지혜 학생은 추모의 글에서 “열여덟살인 우리들은 유관순 열사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느끼며, 1919년 사람들의 마음에 붙인 불이 2023년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꺼지지 않도록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낭독했다.

유관순 열사는 병천면 용두리에서 태어났다. 1915년 이화학당 보통과 2학년에 편입해서 학교에 다녔다. 1919년 휴교령이 내리자 고향으로 돌아와 서울의 상황을 마을 어른들에게 전했다. 4월 1일, 거사일이 정해지자 유관순은 동지들과 함께 만든 태극기를 각 고을에 나누어 주며 동참할 것을 독려했다.

아우내 만세운동은 비폭력 평화 시위였으나, 무자비한 일본의 헌병들은 유관순의 부모를 비롯해 19명을 그 자리에서 사살했다. 유관순은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유관순은 옥중에서도 일제에 항거하다 1920년 9월 28일 고문의 후유증으로 순국했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이길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이 말은 극심한 고문과 구타를 겪은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말이다. 유관순열사의 나라정신은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다. 18살의 어린 나이었지만 조국을 외면하지 않고, 맞섰던 애국정신은 오늘날까지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우리 가슴 속에 남아 있다. 기억하고, 계승하는 일, 현재 우리 세대의 몫일 것이다.

글 김경숙 마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