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년 아우내 장터길 터줏대감 대한성공회 병천교회를 만나다
117년 아우내 장터길 터줏대감 대한성공회 병천교회를 만나다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2.01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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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이 다가오고 있다. 이맘때가 되면 병천면에 있는 아우내 장터는 유관순 열사의 만세 정신을 기리는 분위기로 뜨겁게 달아오른다. 하지만 6천여 명이 참여했던 1919년 4.1 아우내 만세운동의 숨은 주역 김구응, 최정철 열사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 생생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117년 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지역주민들과 함께해온 대한성공회 병천 교회(이하 교회) 장동윤 미카엘 신부님을 만났다.

성공회 병천교회
성공회 병천교회

많고 많은 교회 중에 성공회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를 묻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성공회 교회는 가톨릭교회에서 개혁되어 16세기에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초대교회의 전통을 지키며 매 주일 감사성찬례를 드리고, 신자들이 집에서도 성무일과(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개혁의 주된 내용 중 또 하나는 토착화인데 그 지역 사람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조선 선교로 와서는 한국어 예배를 만들고 한국인이 예배를 집전할 수 있도록 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병천에서는 어떻게 교회가 토착화되었는가로 이어졌다.

지역에 학교를 세우며 성공회 병천교회 활동 시작

1906년 지역 유지들이 근대식 교육기관 설립을 희망하며 지원해 줄 단체를 찾다가 성공회 전도사들과 연결된 것이 성공회 병천교회 역사의 시작이었다. 1908년 흥호학교를 전신으로 1918년에는 진명학교가 세워졌다.

성공회 병천 교회의 예전 모습

병천면 가전리에서 태어난 김구응 열사는 청신의숙과 장명학교를 거쳐 진명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서 근대 학문을 가르치고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다. 1919년 김구응 열사는 서울 이화학당에 다니다 병천으로 내려온 유관순과 함께 치밀하게 만세운동을 준비했다. 김구응 열사는 아우내 만세운동 전체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리더 역할을 했다. 또한, 그의 어머니이자 병천교회 신자였던 최정철 열사는 장년층과 부녀자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1919년 4월 1일 최대 6천 명 이상이 결집한 아우내 만세운동의 현장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김구응 열사가 먼저 일제의 총에 맞아 쓰러졌다. 이를 알고 달려와 오열하던 최정철 열사도 아들과 함께 그 자리에서 일제의 칼날에 희생되었다. 이후 진명학교는 온갖 탄압을 받으면서도 1940년대까지 운영했으나 이후 일제가 목천공립학교로 강제 통폐합시키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

김구응 선생은 1919년 아우내 만세운동의 숨은 주역

이렇게 사진 한 장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만세운동의 숨은 주역들은 아우내 만세운동 100주년이 되어서야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9년 3월에 천안역사문화연구회와 유족들 그리고 성공회 병천교회와 지역에서 활동하는 김종수 목사 등이 주축이 되어 아우내 만세운동을 재조명하는 4.1 문화제를 열었다. 그 이후 매년 꾸준한 활동이 이어져 2022년에는 ‘김구응 열사 기념사업회’를 창립했고 올해는 김구응열사 평전 발간에 맞춰 출판기념회를 계획하고 있다. 교회에서는 2020년부터 유족들의 희망에 따라 두 열사의 기일인 4월 1일에 별세감사성찬례를 드리고 있다.

아우내독립만세운동기념공원 안에 있는 만세운동 동상 속의 최정철·김구응 모자(母子) 상
아우내독립만세운동기념공원 안에 있는 만세운동 동상 속의 최정철·김구응 모자(母子) 상

진명학교에서 병원과 어린이집 운영으로 사회공헌활동 이어져

일제 강점기에 학교를 지으며 시작한 교회의 사회공헌활동은 현대에 와서는 병원과 유아원을 짓는 것으로 이어졌다. 1970년대에 현재 어린이집 자리에 성모병원을 지었는데 당시 최고의 시설을 가진 병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교회에서 운영하는 병원이라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료진료를 많이 하다 보니 재정난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하지만 70년대에 그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가 자라 현재의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니 정말 병천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교회인 셈이다. 1981년에 개원한 새마을 유아원은 현재 국공립 병천 어린이집이 되었고 여전히 교회에서 위탁운영을 맡고 있다.

장동윤 미카엘 신부
장동윤 미카엘 신부

“이곳에서 활동의 장점은 시간 구애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역사회가 많이 노령화되고 신도들도 고령자가 많아 활동에 어려움이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미카엘 신부님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려움은 없습니다. 마을 분들도 활동에 대해 개방적이고 오랫동안 취약계층을 위해 함께 활동해 온 분들도 계셔서 많이 지지해 주는 편이지요. 도시와 다른 장점은 시간 구애가 없다는 겁니다. 아무 때든 제가 원하는 시간에 마을 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요. 지역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장점만 바라보면 되는 거고 단점은 굳이 찾을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1906년 학교가 필요했던 병천에 흥호학교를 지으며 시작했던 성공회 병천교회의 지역 활동은 이곳에 부임한 지 4년 된 미카엘 신부님을 통해 세대를 이어 2023년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 3.1절에 병천을 찾는 사람들이 아우내 장터길에 있는 교회를 둘러보며 한국 근현대사를 돌아보는 계기를 가져 보는 것도 좋겠다.

글 병천마을신문 최영미 마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