駑馬萬里(노마만리):둔한 말이 만리를 간다. 천천히 묵묵하게, 그리고 꾸준함을 나타내는 말이 아닐까한다. 무엇이든지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시대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용어인 듯하다. 노마만리는 일본군의 보도반으로 북부 중국에 파견되었다가 연안으로 탈출한 작가 김사량이 평양을 떠나 항일 근거지 태항선 남장촌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탈출기이다. 시절이 그러하니 온 국민이 노마만리의 심정으로 묵묵히 독립운동을 했을터이다.

그런 노마만리가 책이 아닌 북카페로 번듯하게 자리잡았다하여 찾아가 보았다. 직산에서도 꼬불꼬불 시골길을 한참 달리고달려 듬성듬성 보이는 공장들과 너른 과수원길을 헤치고 반짝거리는 마정저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벽돌이 촘촘이 메워진 벽면, 3층짜리 건물의 입구 양쪽엔 기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붉은 건물을 호위하듯 장승처럼 서있다. 어쩐지 붉은 건물은 소나무들과 함께 사시사철 푸르르며 독야청청 할 듯한 위엄으로 날 내려다보는 듯 했다. 입구엔 ‘김종원 영화도서관’이란 간판도 볼 수 있다. 내부로 들어오니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는 훨씬 더 고풍스럽고 정갈했다. 카페 1층 중앙엔 중정이 있어 흔히 말하는 SNS감성 포토스팟이 된다.

노마만리는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일반회원권을 구매하면 모든 음료를 무료로 주문 할 수 있고 무제한 리필도 해준다. 그치만 푸근한 인상의 사장님께선 처음부터 커피 양을 다른 카페의 2배 이상으로 주신다. 커피를 가져다 주시며 조용하게 책 읽기 좋으니 맘껏 읽으면서 음료두 더 드시라고 하시지만 한잔으로도 충분한 듯 하다.
빼곡하게 꽂혀있는 책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다보니 정말 다양한 도서들이 많았다. 한상언사장님께선 영화를 연구하는 연구자이자 영화사를 가르치던 교수님이셨단다. 40대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막연하게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좋은 기회가 찾아와 카페를 오픈하게 되었다고 한다. 경기도가 고향이신 사장님이 처음엔 전주 쪽을 알아보다가 너무 멀다 생각하며 기차를 타고 올라오는데 부동산유튜브에 지금의 건물이 매물로 나와서 ‘천안까지는 전철이 다니지...’ 라는 생각을 하며 보러오셨단다. 한참 공사중인 건물의 내부에 들어와서 바라보니 통창의 뷰가 그림처럼 펼쳐졌고 그 풍경을 보고 한눈에 반해 바로 계약을 하셨다.
“근데 이곳은 천안에서도 좀 많이 외진 곳 아닌가여?” 이런 질문에 사장님은 허허 웃으시며 “그니까 제가 천안지리를 잘 몰랐던거져~”라고 말씀하셨다. 2022년 5월 28일 처음 오픈하고서는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았다고 한다. 그치만 함께 영화를 연구하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외롭지않게 잘견딜수 있었고 더욱더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말한다.

얼핏 둘러봐두 희귀한 북한 잡지도서들이나 영화관련 서적들이 많이 보였다. 사장님은 영화를 연구하는데 한국전쟁 전과 후의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굉장히 많은 변화를 했다고 말한다. “왜요?”라고 질문하자 “저도 그 질문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온거에여~”
일제시대 우리나라 영화산업은 굉장히 활발했었는데 한국전쟁 후에 많은 변화를 했다. 물론 전쟁 후 먹고살기도 힘들어 나라를 복원하는 것도 힘겨웠을 시기인데 문화산업까지 신경쓸 겨를이 있었을까? 하는 1차원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그 시대 활동하던 많은 감독과 배우들이 전쟁으로 인해 사망하고 또 대다수의 사람들마저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그들은 왜 북한으로 갔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래서 또 자료를 찾아 수집하고 오랫동안 연구하며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동안 모은 방대한 자료들은 너무나 소중하고 귀중하지만 혼자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들이 많아 알고자하는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며 소통하고 함께 연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북카페를 오픈하고 올해 초엔 작은도서관으로 인증을 받아 ‘김종원 영화 도서관’으로 희귀 고서들도 가득한 영화 전문 도서관이 되었다.

1948년 평양의 양서각에서 처음 출간된 노마만리의 초판을 중국 중고 책 거래 사이트에서 찾아냈을 때의 설레임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귀중한 책을 내가 갖고 있다고 자랑하고픈 맘에 카페이름도 노마만리라고 지었을지 모른다. 최근 천안에 새로 오픈한 많은 카페를 다녀봤지만 이렇듯 뜻이 심오한 카페는 처음이다.
2층 한쪽면은 전시관으로 사용되며 지금은 역사학자 박환선생님의 퇴임기념 전시가 한창이다. 3층은 작년 천안 문화도시 공간 스위치 사업으로 꾸미게 되었는데 이때 영화강좌와 미술강좌를 했다. 지금은 영화상영관 겸 영화관련 도서관이며 독서모임을 하고 매주 금요일은 영화감상과 후토크를 한다. 우리동네에 이런 곳이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니...

사장님의 바램은 노마만리가 번듯한 도서관이 되는 것이다. 무지한 나로서는 지금도 충분히 번듯해 보이는데 영화연구자의 욕심은 레벨이 다른가 보다. 그치만 사장님이 지금 화안시로 베풀고 있는 문화의 공유는 분명 눈덩이처럼 불어나 부메랑이 되어서 반드시 사장님께 되돌아와 바램대로 이루어 질 것이다.
노마도 혼자였다면 외롭고 쓸쓸해서 만리까지 가긴 힘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함께하는 우리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말처럼 나 혼자가 아닌 ‘같이’의 가치를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세상이길 바래본다.
글 문화도시 스토리발굴단 김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