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기와 눈물에 대한 단상
현악기와 눈물에 대한 단상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3.25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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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고비 사막을 여행하며 취재한 다큐를 보았다. 유목민들과 사막의 쌍봉낙타들이 등장한다. 끝도 보이지 않는 초원위에서 대자연과 직면하며 생활하는 유목생활이 자유해 보인다. 자유로움 속에서도 자기들만의 무언의 질서가 존재하고 있다.

낙타는 자기가 낳은 새끼가 아니면 절대 젖을 물리지 않는다고 한다. 밤새 진통을 하던 낙타가 새끼를 낳았다. 다리가 먼저 나오는 바람에 진통시간도 어미의 고통도 두 배 이상이었다.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어미는 냉정하고도 매몰차게 돌아서 아기낙타에게 젖을 물리지 않는 상황이 왔다. 아기 낙타가 궁지에 몰렸다. 유목민들이 안절부절못하며 어미 낙타에게 어르고 달래며 통사정을 해 본다. 영문도 모르는 새끼는 배고파 처절한 울음을 운다. 극심한 산통 후유증으로 모정조차도 잊고 싶어진 것일까. 어미는 점점 더 완강히 거부하며 사납게 군다. 주인은 최후의 보루로 유목민 고유의 비책을 찾기로 한다. 전례에 따라 전통악기를 다루는 마두금 악사를 불러 음악 연주를 주문한다. 어미낙타의 고삐를 묶어 악사 근처에 데려와 연주를 듣게 하자 조금은 순해진다. 주인이 낙타를 쓰다듬으며 나지막하고 구슬픈 음성으로 애원하듯 노래한다. 낙타는 긴 속눈썹을 껌뻑이며 차분히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듯 했다. 악사는 점점 더 슬픈 곡조로 낙타의 감정 곡선을 건드린다. 두 개의 현을 통해 단순하면서 울림이 있는 곡조가 흘러나온다. 그러자 낙타의 긴 속눈썹이 꿈틀 거린다. 큰 눈이 조금씩 움직이며 투명한 물방울이 툭 툭 떨어진다. 이때를 놓칠세라 주인은 어미낙타의 털을 쓰다듬으며 새끼에게 얼른 젖을 물린다. 그 뒤부터는 자연스럽게 아기 낙타를 잘 돌본다고 한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감정의 지체임은 어쩔 수 없음이다. 누군가 어떠한 경로로든 타자의 감정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심오한 신비이다. 알고 보면 세상사 돌아가는 모든 이치가 자기감정을 상대에게 이입하여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고자 함이 아닐까. 그러다 합일에 이르면 결혼하고 동맹 맺고, 아니다 싶으면 이별하고 싸우고 전쟁까지 불사한다. 이를 통해 세상은 새로운 가치를 캐내는 작업을 도모하고 상업화하고 때로는 새로운 문화와 역사가 되기도 한다.

인간의 음색에 가장 가깝다는 악기, 첼로 연주를 듣는다. 오펜바흐의 <Jacqueline’s Tears>이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애끓는 듯 애절하고 슬픈 곡조다. 눈을 감고 조용히 감상에 젖노라면 저절로 눈가가 촉촉해진다. 쟈클린, 그녀의 기구한 운명을 알기에 더욱 그랬다. 1967년 영국 음악계에 주목을 끄는 세기의 결혼식이 있었다. 천재 첼리스트 쟈클린 뒤프레 와 촉망받는 젊은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다. 두 사람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많은 이들이 염원했다. 그러나 결혼 약 5년 후 ‘다발성 뇌척수 경화증’ 발병으로 2년 후(28세) 더 이상 연주활동을 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남편 다니엘은 연주활동 중 만난 피아니스트와 사랑에 빠져 그녀와 결별을 선언한다. 그 후 14년 동안 병마와 싸우며 42세의 나이에 요절한다. 척추손상으로 인한 안면마비로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던 그녀는 젊은 날 사랑하는 남편과 녹음했던 음반들을 듣는 것이 죽을 때까지 유일한 낙이었다.

젊은 천재 첼리스트 쟈클린의 가련한 운명을 기리기 위해 프랑스 작곡가 쟈크 오펜바흐가 작곡한 곡이다. 숨겨져 있던 이 곡이 100여년 뒤에야 독일인 첼리스트 베르너 토마스에 의해 발견되어 <쟈클린의 눈물>로 이름 지어졌다. 제목처럼 잔잔하며 고요한 슬픈 곡조가 가슴을 적신다.

Niles Borop의 <Via Dolorosa> 첼로 연주 또한 깊고 묵직하다. 가슴 가장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절규 같은 리듬을 듣노라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애잔함에 젖는다. 영화(The Passion of The Christ)의 삽입곡으로 더 유명해졌다. 사순기간 부활절이 가까워 오면 자주 들려온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장면(고난의 길)을 그린 것이다. 가시에 찔리고 엎어진 상처에서 흘린 피로 범벅이 된 전신을 이끌고 거친 언덕길을 오른다. 이쯤 되면 첼로 소리는 절정을 이루며 끊어질 듯 가파르다가 다시 묵직하게 이어간다. 음률에 섞인 뭔지 모를 나른하고 아련한 감성에 휘말려 감정호르몬이 주책없이 나댄다. 북받쳐 오르는 무언가가 목구멍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르며 눈시울이 저절로 뜨거워진다.

눈물을 흘리고 나면 속이 뻥 뚫린 듯 시원해진다. 크게 소리 내어 울수록 효과는 더 좋다. 실제로 눈물은 긍정의 효과가 크다. 이물질 청소역할을 수행하고 타자와 유대감 강화의 효과도 있다. 눈물을 흘리고 나면 몸의 독소를 배출하고 면역력을 증가 시킨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카테콜아민(catecholamine)이 눈물과 함께 배출된다. 알츠하이머를 연구하던 미국의 월리엄 프레이(William H. Frey) 박사는 자극을 받아 흐르는 눈물과 감정으로 인해 흘리는 정서적 눈물의 성분이 다른데, 정서적 눈물에는 카테콜아민의 농도가 3배 이상 높다고 한다.

음악, 그것도 현악기 연주는 뭔가 특별히 심금을 울리는 신묘함이 있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첼로의 음색은 언제 들어도 깊고 아련하다. 줄을 켜고 튕기고 다스려서 감정을 건드리는 묘한 울림, 그 신비함에 젖어 바라보는 밤하늘 별빛이 그 어느 때보다 고혹적이다.

사는 일이 퍽퍽하다고 느껴진다면 한 번쯤 이런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핑계 삼아 실컷 울어 볼 일이다.

글 김순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