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는 몇 가지 비닐이 나올까요?
농촌에서는 몇 가지 비닐이 나올까요?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2.12.19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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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22 충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 18개 실행 의제 소개

혁신형 농업폐비닐 수거장 구축 실험

이 기사는 충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과 천안아산신문의 협업으로 작성된 기사이며, 주민주도 지역문제해결 프로세스인 2022 충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 실행의제를 소개하고 성과를 확산시키기 위해 기획되었다.

연간 30만 톤이 넘는 영농폐비닐이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이 중 19%에 달하는 6만 톤의 폐비닐은 땅에 묻히거나 소각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회입법조사처, 2020). 민간과 정부에서 수거와 재활용을 위해 노력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역부족인 모양이다. 조사에 의하면 78.6%에 이르는 농가가 영농폐기물을 소각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김규호&김경민, 영농폐비닐 배출 현황과 시사점, 국회입법조사처, 2020년 10월 26일)
(출처: 김규호&김경민, 영농폐비닐 배출 현황과 시사점, 국회입법조사처, 2020년 10월 26일)

개인적인 경험을 돌아보니 이해가 간다. 고구마 수확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해충과 잡초를 억제하기 위해 덮어둔 검은 비닐을 걷어내는 일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비닐을 살살 들어내면 걷어질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비닐을 덮어둔 흙이 두터웠고, 비닐의 양 끝은 쉽게 찢어졌다. 농사가 서투른 탓도 있었겠지만 깨끗하게 걷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걷어낸 비닐도 흙으로 오염돼 있어 재활용이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으로는 걷어낸 비닐을 어디에 치워야 할지도 몰랐다. 최종적으로 어떻게 처리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일단 밭 한켠에 쌓아뒀다.

보령시 성주면 개화 1리에서는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진행한 조남현 이장은 근래 농촌 마을마다 폐비닐 수거장이 설치되고 있지만, 주민들이 보기에 적절하게 설치되거나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 발굴 단계에서 조남현 이장은 일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주 쉽게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농촌에서는 크게 3가지의 비닐이 발생한다고 했다. 검은비닐, 하얀비닐, 그리고 비료포대. 그런데 기존에 설치된 영농폐비닐 수거장은 세 비닐을 분리배출 할 수가 없어 배출과 수거에 효율적이지 않다고 했다. 영농폐비닐 관련 자료들을 읽으면서 잘 와닿지 않던 하우스용LDPE, 멀칭용LDPE, HDPE 등 어려운 말들이 선명해졌다. 검은비닐, 하얀비닐, 비료포대. 이렇게 세 칸으로 구분된 폐비닐 수거장이 필요했다.

프로젝트를 제안한 조남현 이장과 충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 모두 폐비닐 수거장을 짓는데 큰돈이 들지는 않기 때문에 실험 과정이 쉽게 흘러갈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폐비닐 수거장도 혐오시설이었다. 주민들은 내 집 앞에 수거장이 설치되길 원하지 않았고, 또 다른 마을의 쓰레기가 몰려들까 봐 우려되어 동네에 생기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시유지 사용 허가를 받아도 이웃 주민의 반대 등에 부딪혔고, 마을 잘 되자고 하는 일을 주민 동의 없이 밀어붙일 수도 없었다. 결국, 세 번이나 대상지를 옮겨서 겨우 땅을 찾아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현장 사진. 폐비닐 수거장을 설치할 땅을 찾는 것도 일이었다.
공사현장 사진. 폐비닐 수거장을 설치할 땅을 찾는 것도 일이었다.

보령시 성주면 개화 1리에 혁신형 농업폐비닐 수거장이 “드디어” 설치됐다. 무단투기를 막기 위해 잠금장치와 CCTV를 설치했고, 원격으로 소통하고 문을 열어주기 위해 온라인 소통 장치도 달았다. 이장 혼자 모든 일을 감당할 수는 없으니 관리자 10명이 여건 되는대로 관리할 수 있게 장치를 했다. IT 기술을 활용하는 게 어색하긴 했지만 배워나가기로 했다.

지난 12월 9일, 마을 주민들과 함께 ‘혁신형 농업 폐비닐 수거장’ 개소!
지난 12월 9일, 마을 주민들과 함께 ‘혁신형 농업 폐비닐 수거장’ 개소!

개화 1리에 설치된 이 혁신형 농업 폐비닐 수거장은 경험에 바탕을 둔 문제 발견과 해결 아이디어 도출, 프로젝트 구현을 위한 주민 협의, 운영을 위한 교육, 그리고 프로젝트의 개시까지 이어지는 탄탄한 과정을 밟았다. 그럼 이제 짠! 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됐을까? 그럴 리 없다. 개화1리 주민들은 계속 문제를 발견하고 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작은 비닐이 날리는 문제를 발견해 그물로 덮었더니 CCTV를 가려서 올이 큰 망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고, 나중에 비닐이 많이 생기면 집게차로 비닐을 수거해 가야 하니 탈착이 쉬운 구조로 그물을 덮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개화 1리의 실험은 진행 중이다. 관심과 참여를 바탕으로 일상에 필요한 실천적 지식을 창출해 내며 주민 참여형 농업 폐비닐 수거장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렇게 몇 달 진행하다 보면, 전국에 알리고 확산할 그야말로 혁신적인 모델이 완성될 것으로 기대하는 마음으로.

개화 1리에서 진행되고 있는 실험은 그야말로 과정형 사회혁신모델을 그대로 담고 있다. 영웅적 시민이 나타나 휘리릭 문제를 정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주민들이 경험과 아이디어를 더해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마을의 폐비닐 수거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개화 1리 주민들
마을의 폐비닐 수거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개화 1리 주민들

이 프로젝트는 지난 12월 15일 개최된 2022 충남지역문제해결프랫폼 성과공유회에서 참가자들의 투표로 우수사례로 선정됐다. 개화 1리에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프로젝트를 계속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조남현 이장은 내년 이맘때 전국에서 몰려들 우수사례 탐방객을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다. 모두의 마음을 모아서 개화 1리 주민들의 창조적 문제해결의 여정에 응원을 보낸다!

문의: 041-574-9897 (충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

글: 충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 김규희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