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적 직감이요? 누구라도 똑같이 반응했을 것입니다”
“직업적 직감이요? 누구라도 똑같이 반응했을 것입니다”
  • 지유석 기자
  • 승인 2021.01.21 1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국인 노동자에 따지지 않고 코로나19검사 받도록 한 이재성 조사관


지난해 연말 천안시 코로나19 확진자는 갑자기 치솟았다. 특히 성탄절을 전후해 코로나19 집단확진 사례가 나왔다.진원지는 동남구 병천면에 있는 주상복합 건물이었다.

이 건물 2층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주 회합을 갖는 휴게공간으로,이곳에서 확진자가 속출했다.

천안시는 발 빠르게 대응했다. 집단감염 발생 즉시 긴급 대책회의를 개최하고 12월 24일 병천면 행정복지센터에 선별진료소를 설치하는 한편, 외국인 노동자가 신분 노출을 꺼린다는 점을 고려해 비자확인 없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병천면 일대에 5개 국어로 적힌 현수막을 내걸어 검사를 독려하기도 했다.

이렇게 신속하게 대응에 나설 수 있었던 데엔 이재성 역학조사관의 공이 컸다.이재성 조사관은 세명대 한의학과를 졸업한 뒤 4년간 전공의로 있다가2020년 4월부터 천안시 서북구 보건소에서 공중 보건의로 재직 중이다.

천안시 서북구 공중보건의로 근무 중인 이재성 역학조사관
천안시 서북구 공중보건의로 근무 중인 이재성 역학조사관

이 조사관은 처음 확진신고를 받은 뒤(집단확진)규모가 생각보다 클 수 있다고 보았다. 동시에 외국인 노동자의 처지를 고려할 필요도 있었다. 그래서 일단 신분은 묻지 않고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다.

지난 18일 오전 서북구 보건소에서 이 조사관을 만나 병천면 외국인 노동자 집단확진 사태 뒷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병천면 현장을 찾아보니 비자확인 없이 코로나19 검사를 받도록 한 조치에 대해 칭찬하는 분위기였다. 의료인으로서 남다른 '직감'이 발동했다고 보는가?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당시 상황을 접했다면, 누구라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병천면 외국인 노동자 집단감염 사례가 처음 나온 시점은 지난해 12월 23일 오전이었다. 첫 확진자에게 전화로 확진신고를 받고, 사전 역학조사를 했다. 그런데 무언가 석연찮은 것 같아 현장으로 나갔다.

현장에 가보니 피해 규모가 클 것이란 예측 가능한 요소가 많았다. 무엇보다 첫 확진자가 2층 휴게공간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었고, 모이는 사람도 많았다. 게다가 그곳에 모인 노동자 중 상당수가 불법 체류자였기 때문에 신속하게 검사를 받을 수 없는 위험이 컸다.

실제로 첫 확진자는 합법 체류자였으나 주변 지인들은 불법 체류자 신분이어서 당장 검사를 받을 처지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선별진료소에서 신분확인 없이 검사를 받도록 한 것이다.

이재성 조사관은 확진자가 많은 점이 가장 어렵다고 털어 놓았다. 사진은 코로나19 검사가 실시 중인 천안시 임시선별진료소.
이재성 조사관은 확진자가 많은 점이 가장 어렵다고 털어 놓았다. 사진은 코로나19 검사가 실시 중인 천안시 임시선별진료소.

-.병천 말고도 천안엔 외국인 노동자가 다수 취업해 일하고 있다.

위험요소는 아직도 많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추석연휴 직후 보건소에선 선제적 예방검사에 대해 내부논의가 있었다. 이때 처음 외국인 노동자가 방역 사각지대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래서 11월엔 백석공단에 취업한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했다. 이때에도 방역 사각지대에 처한 이들이 모였다.

- 이번 외국인 노동자 코로나19 집단확진을 계기로 외국인 노동자 정책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책적인 분야는 문외한이라 무어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감염병 예방이란 관점에서 볼 때 외국인 노동자 정책을 더 유연하게 운용할 필요는 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불법 체류자 신분인 노동자가 코로나19 검사를 받기는 쉽지 않다. 정책 변화가 없다면 이 같은 문제는 또 불거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사실 병천면에 이렇게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지 처음 알았다. 다행히 이분들이 코로나19 검사에 잘 협조해줬다. 그런데 시선을 달리하면, 집단확진 규모가 커서 협조를 잘해준 것일 수도 있다. 이보다 작은 규모에도 적절한 관리가 이뤄지려면 외국인 노동자 관련 정책 재검토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역학조사관으로서 역학조사란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 그리고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 말해달라.

코로나19 역학조사는 크게 두 줄기다. 먼저 확진자의 감염경로를 파악해서 선행 확진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확진자에게 노출된 또 다른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다. 또 접촉자 사례분류를 통해 확진자를 통해 한 번 더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격리해 추가 피해를 막는 일이기도 하다.

가장 힘든 건 확진자가 많다는 점이다. 현재 천안시만 담당하고 있지만, 전국적인 확산세 상황에서 천안시만 따로 떼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게다가 천안은 이동인구도 많다. 확진자 분포를 살펴보면 수도권에서 감염되어 지역사회에 전파한 경우가 꽤 많았다.무엇보다 수도권 확산세가 꺾이지 않으면 위험은 계속될 것이다. 이런 부분이 참 어렵다.

지유석 기자
iron_heel@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