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고기 사이에 한 번쯤 놓여야 할 이야기
당신과 고기 사이에 한 번쯤 놓여야 할 이야기
  • 박희영 기자
  • 승인 2020.11.12 1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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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태 작가가 전하는 고기로 태어난 동물들의 삶

11월 10일(화) 녹색소비자연대 1층 강당에서 ‘고기로 태어나서’ 저자 한승태 작가는 ‘당신과 고기 사이에 한 번쯤 놓여야 할 이야기’란 주제를 가지고 사육동물의 삶과 인간에 관해 이야기했다. 

책 ‘고기로 태어나서’는 작가가 양계장이나 양돈장과 같은 축산현장에서 일하며 직접 겪은 사실을 바탕으로 쓰인 ‘노동에세이’로 닭·돼지·개들의 사육 환경과 주변의 일상을 담고 있다. 

강연 시작에 앞서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집필한 ‘인간의 조건’과 ‘고기로 태어나서’ 두 권 모두 르포르타주라고 밝히며, 관심이 있거나 알아보고 싶은 영역이 있으면 현장에서 직접 체험·생활하면서 겪은 일들을 기록해 책으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르포르타주란 특별한 사건이나 인물, 현장 체험 등을 보고자의 주관을 섞지 않고 객관적으로 서술한 것을 말한다. 한승태 작가가 들려주는 고기로 태어난 동물들의-우리나라 축산업 사육 현장의 현실이라고 해도 좋을- 삶을 함께 들어보자.

한승태 작가가 양돈 농장에서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갓 태어난 돼지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한승태 작가가 양돈 농장에서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갓 태어난 돼지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비좁은 공간에 갇혀 있으면 돼지도 스트레스받아요! 

한 작가는 축산업 현장에서 일하기 전까지 동물을 사랑하거나 관심이 있진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고기로 태어난 동물의 삶에 관심이 생긴 건, 사육당하고 있는 동물들이 축산업계 시스템으로 인해 상상 이상으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출산을 위해 기르는 돼지들이 얼마나 비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는지 말하며 안타까워했다. “임신이 가능한 돼지(모돈)들만 모아 놓은 곳인 임신사를 보면 폭 70cm, 높이 120cm, 길이 190cm 정도로 딱 돼지 한 마리 들어갈 만한 크기밖에 안 돼요. 상당히 좁죠. 뒤도 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 안에선 앉았다 일어났다만 할 수 있어요. 새끼를 생산하는 돼지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일 년에 두 번 출산을 위해 분만사로 이동할 때 40분 정도가 전부예요. 이렇게 비좁은 데 가둬두니 신체와 정신이 고통받고 변형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는 동물들은 이상행동으로 정형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너무 지루해서 미치는 것과 같은 증세를 나타내는 것으로 작가가 양돈 농장에서 일하며 본 어떤 돼지는 철재로 만들어진 케이지를 물거나 씹는가 하면, 칸막이를 들이받아 사료통이 떨어지게 하기도 했다. 

고기로 기르는 돼지 역시 사육 공간이 그리 넉넉한 건 아니다. 그러나 사육장 안을 맴돌 수 있으니 임신사에 갇힌 모돈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것이라고. 

닭이 심장마비로 죽는다고? 

그리고 그는 육계 농장에서 일했던 경험을 기억하며, 동물들을 짧은 시간 동안 사육하는 것으로 인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육계 10만 마리 정도를 기르는 농장에서 작가가 한 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사를 지나다니며 죽은 닭은 꺼내는 일이었다. 

부화장에서 깨어난 병아리들은 32일 동안 사육장에 머문다. 본격적으로 품종 개량이 이뤄지기 전엔 병아리가 도축 가능한 무게가 되기까지 3개월가량 걸렸으나 품종 개량과 성장촉진제 덕분에 성장 속도가 1/3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사육 기간이 줄어드니 농장 주인장이야 당연히 환영할 일이지만, 성장촉진제를 먹은 병아리 중 일부는 ‘심장마비’로 죽기도 한다. 

“닭이 심장마비에 걸려 죽는다고?”라며 의아하겠지만, 한 작가 설명에 따르면 “모두 다 심장마비로 죽는 건 아니에요. 초기엔 문제(병) 있는 병아리들이 죽고, 장염으로 죽는 닭들도 있어요. 제가 농장 그만두고 자료 조사를 해보니 정상적인 속도보다 빨리 살을 찌우려고 성장촉진제를 먹이면 근육량이 급격히 증가해 그 속도를 심장이 따라오지 못해 심장마비에 걸려서 죽는다고 하더라고요.”

<고기로 태어나서> 한승태 지음「시대의 창」- 제59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 교양 부문 수상,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시사인> <환경책큰잔치> 2018 올해의 책 선정

동물복지에 대해 한 번쯤 깊이 고민해보길 

“돼지농장에서 음식쓰레기 처리할 때 보면 고기·소시지·돈가스 등 고기가 엄청 많더라고요. 한입 베어 물고 버린 피자 조각도 있고, 입에 대지 않은 음식들도 있었어요. 그걸 보면서 ‘먹지도 않을 걸 왜 이렇게 사서 다들 버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한 작가는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다만, 그는 이렇게 키우는 동물들의 복지에 대해서 우리가 한 번쯤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농장과 동물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음식을 위한 문화의 모든 부분이 변하지 않고선 쉽게 바뀌지 않을 거예요. 농장·소비자·식당·마트 모두 변해야 농장(사육장)의 한 부분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봐요. 동물복지 농장의 닭이나 돼지가 늘어나는 추세지만 소비자들이 구매하기엔 양이 너무 적어요. 우리나라 현재 인프라 레벨에선 단계적으로 고기 소비를 줄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각자 입장과 가치관이 다르겠지만, 지금보다 소비를 줄이는 것이 동물과 사람 나아가서는 환경과 건강을 위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아닐까요?” 

박희영 기자 park5008@canews.kr

사진 1 : 한승태 작가가 양돈 농장에서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갓 태어난 돼지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2 : <고기로 태어나서> 한승태 지음「시대의 창」- 제59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 교양 부문 수상,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시사인> <환경책큰잔치> 2018 올해의 책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