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처럼
담쟁이처럼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12.15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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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작은 밭을 일구며 알게 된 친구와 공부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발달장애인을 둔 엄마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발달장애는 신체 및 정신이 해당하는 나이에 맞게 발달하지 않은 상태로 지적장애, 자폐, 다운증후군이 발달장애에 속한다.

친구 아들은 스무 살이 훌쩍 넘었지만, 자폐를 가지고 있어 몸만 성인이지 정신은 유아기에 머물러 있다. 장애인을 둔 엄마들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 있었다. 딸 친구가 특수아동 보육교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엄마들을 상대하는 일이라고 했었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모임에 갔는데 엄마들은 예상과 다르게 전형적인 주부의 모습이었다. 웃고 떠들고 그렇게 공부 모임에 재미를 더 해 가면서 뜻하지 않게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됐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들이 사는 세상은 달랐다. 우리에게 당연한 일들이 그들에겐 힘겹게 올라야 할 험한 산이었고 용기를 내 건너야 할 큰 강이었다.

“치과 치료를 받는데 1년씩이나 기다려야 된다고?”

“그래”

얼마 전, 시민 참여 사회문제 해결 방안과 정책제안을 하는 토의 모임을 엄마들과 가졌었다. 성인기 발달장애인의 병원 진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의견을 모으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나는 말이 되냐고 되물었다.

그랬다. 말이 안 되는, 말이 되는 현실에 발달장애인들은 놓여있다. 성인기 발달장애인들이 치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은 극히 제한적이다. 치과 협회 등록된 치과병원 중, 자발적으로 장애인을 진료 해주는 병원들도 있지만, 아동일 경우나 협조가 잘되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과 중증 발달장애인은 진료가 어렵다.

전국적으로 등록된 장애인 수는 2022년 통계로 2,652,860명이다. 충청도에는 232,923명, 우리나라 전체 장애인의 9.59%가 살고 있다. 경기도는 22.05%로 등록 장애인 비율이 가장 높다. 장애인들을 위해 장애인 구강진료센터는 전국에 12개가 있고 충청도에는 단국대 치과병원이 유일하다. 경기도에도 마찬가지로 단국대 죽전 치과병원이 한 곳뿐이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거점 병원인 행동발달 증진센터도 전국에 11개소 밖에 되지 않는다. 행동발달 증진센터는 발달장애인의 행동문제를 치료하고 의료 서비스를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한 의료기관이다. 충청도에는 충북대병원, 경기도에는 성남시의료원 한 곳뿐이다.

전국에는 장애인들의 진료, 재활 의료 및 공공의료 활동을 위해 지역장애인 보건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260만 명이 넘는 장애인들을 위한 보건센터가 17개소밖에 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통계를 보더라도 치과 치료를 위해 대기 시간만 1년이 걸린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친구 아들은 어금니가 썩어가고 있다. 치과를 가라 했더니 어릴 때 치과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팔다리를 묶고 몸을 꽁꽁 싸매 치료를 받은 이후, 트라우마가 생겨 한동안 병원처럼 생긴 건물은 들어가지도 않았다고 한다. 발달장애인들은 새로운 환경이나 모든 사물에 대해 지나친 공포감을 가지고 있다.

대게, 발달장애인들에게 필요한 물리적 치료는 수면 상태에서 진행된다. 트라우마가 있는 친구 아들은 마취가 잘되지 않아 마취가 덜 된 상태에서 비뇨기과 수술을 한 적이 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울며 살려달라 애원하는 눈길을 부모가 외면한 날, 아이는 또 다른 아픈 기억을 가지게 됐다. 그러니 충치 하나 가지고도 더 큰 트라우마에 시달려 위급한 상황에 강한 거부감이 나올까 봐 친구는 고민하고 있다.

발달장애인들에게 물리적인 치료를 해주겠다는 일반 병원은 극히 드물다. 통제가 되지 않아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다반사이고 일반 환자들보다 진료 시간이 길다. 여러 이유로 수없이 진료 거부를 당해왔으며 돌발행동이라도 하면 곱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때문에 엄마들은 병원 출입이 쉽지 않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 진료가 편한 곳을 찾아 떠돌고 있는 실정이다. 엄마들에게는 발달장애인의 눈높이에서 진료를 해 줄 병원이 시급한 문제다.

생존이 달린 보건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진료 거부를 당할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음이 던져졌다. 그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죽고 싶다.”

상상치 못한 말이었다. 뭐라 표현해야 할지 언어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며 나는 끝내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픈 자식을 끌어 앉고 어깨가 내려앉고 허리가 접히고 무릎이 꺾이는 고통 속에 살았을 엄마들. 상처에 딱지가 생긴 자리에 또 다른 상처로 굳은살이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 차갑게 외면하는 세상에 무릎을 꿇었을까? 그녀들이 가볍게 던진 ‘죽고 싶다.’는 말에 나는 무겁게 추락하고 있었다.

남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함께 살아가는 이 땅에 함께 고민해야 할 우리 문제이다. 차별 없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장애인들에게도 동등하게 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따가운 눈총을 온몸으로 막아내는 그녀들, 아이들의 고통을 그냥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발달장애인의 눈높이에 맞춰진 진료환경을 지닌 거점 병원이 더 만들어져야 한다는 정책제안을 했다. ‘일반 병원에서도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기본적인 매뉴얼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진료 체험교육 시켜야 한다’. 등 여러 제안이 있었다.

문제의 심각성은 말할 것도 없고 더 많은 전담 거점 병원의 설립이라는 정책 제안도 훌륭하다. 하지만 엄마들은 안다. 세상이란 바위에 자신들의 외침은 계란 던지기라는 걸, 그래도 우리 함께 살아가자고 엄마들은 희망을 가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손에 손을 잡고 절벽을 넘는 담쟁이처럼.

글 김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