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크스를 날려버리자
징크스를 날려버리자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6.0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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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마지막 날 저녁이었다. 네 명이 정원인 엘리베이터인데 밀고 들어오는 한국 아줌마들로 인해 엘리베이터 벽면에 얼굴을 부딪쳤다. 내 선글라스 다리 하나가 부러졌다. 여행 일정이 끝나갈 무렵이긴 했지만, 프랑스 하늘의 태양이 강렬해서 내일 일이 걱정됐다. 게다가 휴대전화기까지 먹통이었다. 다행히 숙소에서는 휴대전화가 터져 카카오톡으로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간단히 연락을 취했다.

모두가 잠이든 새벽, 까똑 까똑 사진과 함께 메시지가 떴다.

“엄마, 이~히히 띠,~리 리 리~.”프랑스 시각으로 새벽 3시 한국은 오후 8시경이었다. 딸아이는 부러진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사진 속 아이를 보자 잠이 번쩍 깼다. 먼 타국 땅에 비행기로 열 한 시간이나 날아왔기에 되돌아갈 수도 없고, 이가 부러지다니 기가 막혔다. 내가 속상해하자 딸아이는 “나 괜찮아. 병원 다녀왔어요.”라며, 웃는 사진을 또 보내왔다. “엄마 귀엽지” 애써 웃으며 위로해주는 아이의 노력에 조금은 맘이 편해진 듯했지만, 아이가 안쓰러워 룸메이트 몰래 이불 속에서 훌쩍거렸다. 이놈의 근심· 걱정은 이곳까지 따라다니는구나 싶었다. 꼬박 밤을 새운 아침, 부러진 선글라스가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궁금해지는 순간 뜬금없이 김영하 소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가 떠올라 ‘픽’ 하고 웃음이 나왔다. 소설 속 남자는 출근하기 위해 아침 일찍 부지런히 수염을 깎다가 면도기가 부러지는 일이 발생하자, 남자는 그냥 반쪽 수염을 달고 출근한다. 그 일로 인해 기분 나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데, 해결된 것은 없으면서 사건에 사건을 더하는 형식이다.

사람들은 징크스를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 민족은 예부터 민간신앙에 젖어 살아왔다. 가려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아침에 접시가 깨지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징조라 했으며,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에 안 좋은 감정은 징크스를 몰고 다닌다고 하여 꺼렸으니 제약을 받는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빨간색 옷을 입지 못했다. 왠지 기분 나쁜 일이 생길 것만 같았고, 실제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색에 대한 나의 내면적 거부 발달은 빨갱이란 단어에서 시작된 것 같다. 어린 기억 속에 나쁜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어른들의 이야기 속에는 빨갱이란 나쁜 사람들이 있었다. 어릴 때 들은 이야기는 성장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명절 때면 주로 빨간 양말이 내게 주어졌는데 그 양말이 싫어 입이 나오곤 했었다.

생각하면 이루어진다는 ‘비밀’이란 뜻을 가진 시크릿, 단어를 어느 순간부턴가 좋아했다. 저자 ‘로다 번’의 《시크릿》에서 말하는 “끌어당김의 법칙 (Law of Attraction),” 그대 마음속에 그린 생각이 우주로 전송되어 같은 주파수에 있는 비슷한 것들을 자석처럼 끌어들여 생각한 만큼 현실이 된다는 이야기다.

끌어당김의 법칙을 예로 들면, 동쪽 어디쯤 내 집이 지어지고 있다. 지금쯤 완성단계에 있으며, 머지않아 나는 그 집으로 이사하게 될 것이다. 텃밭에 상추와 고추를 심고, 살구나무를 정원수로, 꽃밭도 만들어 채송화 봉숭아도 심어야겠다. 끊임없이 이런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우주는 어느 순간 원하는 것을 가져다준다는 이것이 “시크릿, 곧 비밀이다.”

나의 모난 생각을 긍정으로 바꾸려 업그레이드하면서 인생을 양질로 만드는 작업에 힘쓴다. 그러나 이 또한 최면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 책은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데 일조를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각박한 세상에서 책을 읽는 동안 바라는 모든 게 이루어질 것만 같아서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다. 결론은 생각하기 나름이며 긍정적인 마인드라는 걸 알게 된다.

어느 화창한 날 드라이브를 하던 중이었다. 하늘과 바다를 보며 달리는 기분 좋은 날,

“애들아, 우린 부자야. 그것은 마음먹기 달린 거란다. 너희들 저 하늘을 봐 하늘은 주인이 없잖아. 저기 푸른 바다도 마찬가지야. 모두가 너희를 위해 준비된 것들이라고”.

물질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인드로 살아가느냐고, 너희 안의 심판관을 바로 세우고, 영혼을 부자로 만드는 데 노력하라고, 거창한 강의를 늘어놓았다. 그러자 아이들은 엄마 생각이 옳다며 기립박수를 쳐주었다.

프랑스 여행은 잘 마쳤고 나는 딸아이와 치과를 다녔다. 선글라스 부러진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으며 선글라스가 없어 조금 불편할 뿐이었다.

글 김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