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의 그림책이야기, 책 읽어주는 엄마의 효과
전진영의 그림책이야기, 책 읽어주는 엄마의 효과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6.01 10:51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 읽어주기 효과를 말하는 책들이 많습니다. 상상력이 증진된다, 정서가 풍부해진다, 사고력이 발달한다, 어휘력이 풍부해진다, 듣기 능력이 향상된다, 다양한 경험이 가능하다. 하나같이 듣는 이의 효과를 말합니다. 읽어준 이에게는 효과가 없을까요? 읽어준 사람한테도 좋은 효과를 말했더라면 읽어주기 문화가 활발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읽어준 사람한테 좋은 점을 말해 보겠습니다. 제가 처음 그림책을 읽어준 것은 제 아이들입니다. 책 읽어주기의 효과가 우리 아이들에게 긍정적으로 미칠 것이라고 당연히 기대했습니다. 하루, 이틀, 몇 달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면서 책 읽어준 시간은 엄마에게 면죄부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엄마로서 효능감을 심어준 시간이었습니다.

박소윤(아산용연초1)과 엄마
박소윤(아산용연초1)과 엄마

자장가를 부릅니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여기까지 부르고 나니 가사를 모릅니다. 부를 때마다 멜로디도 가사도 달라집니다. 아는 자장가가 이리도 없나 싶어 외국 자장가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서툰 엄마입니다.

하루 종일, 1년 365일, 몇 년째 계속 아이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냅니다. 양육자가 좋은 모습만 보일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엄마도 사람입니다. 화내고 씩씩대고 소리 지르는 마녀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심지어 아이 때문에 화난 일이 아님에도 아이에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런 자신을 발견하면 너무 속상합니다. TV나 주변 엄마들은 아이에게 참 잘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미안하니 장난감이나 물질로 보상하려고 합니다.

가족은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이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가족이나 친인척, 직장에서의 여러 인간관계로 스트레스가 치솟습니다. 아무 관련 없는 아이한테는 이성적으로 대하고 싶으나 간식을 건네는 손이 까칠합니다. 이런 분위기를 아이가 느끼지 못할까요? 집안 분위기가 살얼음판입니다. 아이도 지치고 엄마도 지친 하루를 마감하는 이부자리에 누워 그림책을 읽어줍니다. 책 읽어줄 때만큼은 마녀 엄마가 사라집니다. 그림책 속 마녀를 실감 나게 읽을수록 아이는 더 좋아합니다. 날카로웠던 목소리도 누그러듭니다. 책 읽어주는 목소리는 편안합니다. 아이는 엄마의 편안한 목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도 편안합니다. 소리 지르고 화낸 엄마가 자애로운 엄마로 변하는 시간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 모리스 샌닥(글·그림), 시공주니어
『괴물들이 사는 나라』 모리스 샌닥(글·그림), 시공주니어

『괴물들이 사는 나라』 마지막 장면은 “저녁밥은 아직도 따뜻했어.”입니다. 어릴 적 엄마에게 혼나고 눈치만 보고 있을 때 ‘밥 먹어라.’라는 말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아이에게 안도하는 시간을 하나 더 만들어 주면 어떨까요? 몸에는 밥으로 마음에는 책으로, 엄마가 읽어주는 책으로 말입니다.

둘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책을 읽어달라고 합니다. 엄마는 하는 일이 바쁩니다. 혼자 좀 읽었으면 쉽지만 마음을 다잡습니다. 길어봐야 15분입니다. 하루 24시간 중 15분을 자식에게 내어주지 못하다니요. 화내고 씩씩댄 시간에 비하면 짧은 시간입니다. “엄마가 읽어주면 좋니?” “응!” 바로 대답합니다. “뭐가 좋아?” “편안해.” 잊을 수 없는 대답입니다.

글 전진영 달님그림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