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잎 부적
콩잎 부적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5.3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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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중턱 외갓집 마당에 저녁 빛이 들기 전에 둥근 밥상이 차려졌다. 밥상 머리맡에 바람 한 점 없다. 제발 오늘까지 삼촌들이 싸우거나 사고 치지 않기를 얼마나 바라며 마음 졸였던가. 그렇지 않으면 아랫마을로 가는 밤마실은 할아버지의 불호령과 함께 물거품이 된다. 다행히 이번엔 무사히 며칠간 잘 버텨냈다. 나는 조바심에 마당 가장자리에 길게 누워있는 대나무를 흘깃거렸다. 대나무에 발이라도 생겨 사라지면 마실에 차질이 생긴다.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연신 대나무를 살폈다. 이젠, 어두운 까만 자락이 우리를 덮치기 전에 아랫마을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꼬맹이 조카와 세 명의 삼촌이 밤길을 나선다. 첫째와 둘째 삼촌은 타지에 나가 있어 어쩌다 낯선 손님처럼 찾아왔었다. 외갓집에는 나보다 네 살 많은 다섯째 막내 삼촌과 그 위로 넷째와 셋째 삼촌이 남아 함께 살고 있었다. 막내 삼촌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으니 고만고만한 세 명의 삼촌들과 밤마실은 흥미로운 모험이었다. 밥 먹을 때부터 눈으로 단단히 잡아둔 대나무를 기차놀이하듯 일렬로 서서 손에 쥔다. 대나무의 맨 앞은 셋째 삼촌이 잡고 길잡이 노릇을 한다. 어린 나는 삼촌들을 사이에 끼워주었고 마지막 뒷자리를 놓고 넷째 삼촌과 막내 삼촌이 때마다 다투었다. 늘 그랬듯이 약은 막내 삼촌은 순둥이 넷째 삼촌을 또 이겨 먹었고 고스란히 등을 보여야 하는 끝자리는 그날도 넷째 삼촌 자리였다.

할머니의 조심하란 당부를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우리가 등지고 내려오는 산길 따라 잿빛은 성큼성큼 번져나갔다. 풀도 나무도 땅도 우리의 모습도 서서히 지워졌다. 어느새 어둠의 아가리에 들어선 것이다. 사방은 짙은 먹빛으로 물들었다. 서로 발소리 숨소리만을 의지하며 비탈진 산길을 내려가야 한다. 어둠에 눈을 빼앗기자 땅이 불뚝불뚝 불거져 발을 걸어온다. 한 사람이 넘어지면 셋이 골탕을 먹는 꼴이 재미나는지 여기저기서 돌부리들이 솟아났다. 대나무를 쥔 손에 땀이 난다. 기괴한 울음소리, 수런거리는 밤 소리를 들으며 어둠 속 동태를 잘 살핀다. 무언가 반짝 스치며 풀숲으로 사라졌다. 바람은 내 목덜미를 만지고 얼굴을 쓰다듬고 머리카락을 흩트려 트렷다. 풀잎은 손을 내밀어 종아리를 만지고 간질이기까지 했다. 온몸의 솜털이 더듬이가 되는 순간이다. 그래도 절대 놀라거나 소리 지르면 안 된다. 숨을 죽어야 한다. 밤은 거대한 괴물이 되어 우리를 삼키려 하기 때문이다. 발각되는 동시에 어둠의 배 속 긴 창자 끝에 떨어지게 된다. 요동치는 심장 소리를 들키면 끝이다. 다행히 심장이 쪼그라들어 없어지기 전에 아랫마을에 닿았다.

커다란 나무와 넓은 마당에 있는 마을회관을 지나 대문이 제법 큰집에 들어섰다. 우리가 험난한 밤길을 마다치 않고 마실 나온 이유는 순전히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70년대 중반쯤에는 텔레비전이 흔한 가전이 아니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 마당에 멍석을 깔고 줄지어 앉아있었다. 우리는 고개를 빼야 볼 수 있는 뒤쪽에 자리를 잡았고 눈치 빠른 막내 삼촌만은 발 빠르게 앞자리에 끼어 들어앉았다. 그때는 주로 운동 경기를 보러 갔었다. 나는 방송 내용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것보다 텔레비전 자체가 신기하고 좋았다. 작은 사람들이 그 안에 사는 줄 알았다. 그들은 아무도 몰래 브라운관 밖으로 나왔다 들어간다고도 하는데, 밥은 어떻게 먹는지 옷은 어떻게 갈아입는지 잠은 자는지 그 좁은 상자 안에서 어떻게 사는지 그런 게 더 궁금했다. 신기한 상자까지 있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아랫마을은 적막한 산속에서 땅강아지처럼 지나는 내겐 별천지였으니 노심초사 오늘만을 기다리고 기다려 온 것이다. 잔치에 초대받은 주인공인 양 신이 나 둥둥 떠다녔다. 분위기에 들뜰수록 시간의 고삐는 빨리 풀어졌다.

다시 대나무를 잡고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 내려올 때 보다 올라갈 때가 더 무섭다. TV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밤의 공포에 맞서 내려왔던 길과 되짚어 오르는 길은 사정이 달랐다. 어둠은 발악하듯 거친 숨을 내쉬며 우리를 찾을 것만 같았다. 까맣고 까만 밤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누구라도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든지 무얼 보았다든지 하면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된다. 조심조심 아니, 살금살금 산길을 오른다.

그런데 이런 긴장과 공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어나는 생리현상을 막을 수는 없었다. 끝에 섰던 넷째 삼촌이 똥이 마렵다는 것이다. 똥이라니, 무슨 말인가. 안 그래도 무서운데 이 어둠에 머물러야 한다니, 우린 참아보라고 성화를 했지만 셋째 삼촌의 짜증과 막내 삼촌의 투덜거리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넷째 삼촌은 다랑논 논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는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멀리 가지 말아 달라는 애원은 듣고도 못 들은 척했다. 일을 이렇게 만들었으니 은근히 골려주고도 싶었다. 그래도 뒤처리를 위해 콩잎을 따주기로 했다. 논둑을 뒤져 손바닥만 한 넓고 큰 콩잎을 찾아야 한다. 숯덩이 같은 밤에 누런 똥을 싸고 앉아있는 삼촌과 초록 콩잎을 따고 있는 우리는 삐질삐질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원래 이러면 안 되는 건데, 꾹꾹 웃음을 누르다가 배꼽 빠지는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무서움은 오간데 없이 사라졌다. 콩잎은 어둠의 이마에 딱 붙은 부적이 되었다. 부적 몇 장을 손에 쥔 넷째 삼촌은 그 밤 이후로 똥싸개라는 별명이 생겼고 똥싸개는 개구쟁이 막내 삼촌 입에 한동안 착착 감겼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검은 휘장에 총총히 구멍을 내고 별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피어오르는 반딧불이를 따라 걸었다. 밤공기도 순해지고 길들도 더는 인상을 쓰지 않았다. 산속에 흐르는 물소리며 밤의 인기척도 무섭게 들리지 않았고 우리 걸음에 맞춰 ‘하나둘, 하나둘’ 구령을 함께 했다. 길 동무가 되어 함께 웃고 함께 걸었다. 우리를 업어주었던 굽은 산길과 눈을 마주한 별들과 장난치던 바람과 밤의 음성이 우리를 무사히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삶의 어두운 밤을 지날 때마다 나는 그 밤을 떠올렸다. 그러면 내 기억 속 동무들은 멀리서 달려와 작은 꼬맹이를 온몸이 환해지도록 비춰주었다. 외갓집에 남아있는 사람은 이제 없다. 그 길들은, 그 별들은, 그 산속의 밤은 안녕할까? 먼저 찾아가 잘 있었느냐! 안부를 묻고 싶은 밤이다.

글 김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