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한국이 무서워
아빠! 한국이 무서워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5.2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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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사는 딸에게 전화를 받았다. 딸이 있는 곳이 낮이면 이곳은 밤이다. 서로 시간을 잘 맞춰야 통화가 가능하다. 부녀지간이지만 얼굴을 보지 못하고 전화로만 안부를 묻는 것이 2018년 이후 벌써 5년째다. 아이가 고1 때 이억만 리 유럽으로 유학을 간 이후, 이번처럼 오랜 시간 만나지 못한 적은 없었다. 생태계 파괴로 인해 발병한 코로나19란 역병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이전까지 매년 방학을 하면 귀국을 했다. 학업을 마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최소 일 년에 한 번은 한국을 다녀갔다. 멀리 있어도 옆에 있는 것 같던 딸과 나는 코로나19로 인해 전화기로 안부 정도를 묻는 이산가족이 되었다.

우리는 손전화기 작은 화면을 통해 두 돌이 안 된 손자 재롱을 보며 웃고 떠들었다. 언제 걸음마를 시작할까 싶던 아이가 이제 껑충껑충 뛰어다닌다. 화면 속 내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부정확한 발음으로 “하라부지!”를 부른다. 디지털 문명의 혜택으로 이렇게나마 아이의 성장을 멀리서라도 볼 수 있어 좋았다.

통화하던 중 손자를 무등을 태워 할아버지 나라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고 싶었다. 아이가 까르르 웃는 천진한 소리를 듣고 싶었다. 딸에게 한국에 언제쯤 올 것이냐고 물었다. 가을쯤 한국을 다녀올까 했는데 두 돌도 안 된 아기를 데리고 오기가 무섭다고 했다. 나는 서운한 마음을 한편에 감추고 아기가 20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는 것이 무리라며 적당한 시간에 다녀가라고 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아빠는, 항공 탑승시간이 문제가 아니야. 일본에서 원전 핵 오염수를 팔월에 바다에 방류한다고 하던데, 그럼 우리나라 바다는 어떻게 돼? 아기에게 핵에 오염된 바닷물에서 생산한 소금과 김을 먹일 수는 없잖아. 생각만 해도 정말 아찔하다. 우리 아빠도 많이 늙으셨어. 젊어서 아빠가 아니야,”

딸애가 전화를 끊더니 할 말을 놓쳤다는 듯, 오 분도 안 돼 다시 벨이 울렸다.

“아빠! 아빠가 다녀가시면 안 돼? 사실 고등학교 방학 때면 아빠표 김치찌개를 먹는 욕심으로 한국에 갔거든. 이젠 그것도 안 되잖아. 김치는 배추, 소금, 젓갈이 원료잖아? 근데 일본이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면 소금하고 젓갈이 핵 덩어리가 될 텐데, 그걸 먹을 수 있어? 무섭다. 아빠가 다녀가셔.”

이렇게 통화를 끝낸 후 딸애는 카톡으로 짧은 산문시와 메시지를 보내왔다.

퀴리 부인의 연구 노트

100년 전 노벨과학상을 두 차례 수상한 과학자 퀴리 부인은 방사능에 오염되어 죽었다. 유품과 함께 보존된 연구 노트엔 핵 쓰레기가 덕지덕지 묻어 있고 하루도 멈추지 않고 자가발전한다. 퀴리 부인의 연구 노트는 1세기가 지난 오늘까지 누구도 만질 수 없는 재앙 덩어리다.

‘아빠! 한국 사람들, 멍청한 것 아니면 바보 맞지?

과학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퀴리 부인의 노트에 묻은 핵이 100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대로야.

아무도 못 만지고 있어. 그냥 박물관에 비닐로 포장된 채 있을 뿐이야.

한국 정치하는 사람들은 이상해. 원전(핵) 오염 정도를 확인하지도 않은 상태에 미리 처리수(處理水)라고 하자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되징. 정치하는 사람들은 소금 안 먹고 해산물 안 먹고 살아?

나 한국 싫어. 아빠가 오셔용. 빠이!’

나는 틀에 박힌 일상에서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는 아비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카톡 메시지가 얄미워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잠시 후 그런 감정은 나의 이기(利己)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딸애는 나와 함께 산 시간보다 외국에서 생활한 시간이 더 길다. 서양 요리와 문화를 더 좋아하고 남을 시간이다. 그런데 아직 우리 김치를 즐겨 먹는다. 오래전 어느 날. 사위가 될 프랑스 젊은이와 함께 왔다. 인사를 마치고 한국 곳곳을 여행하고 돌아가기 전이었다. 딸애는 평생 한 번도 김치를 먹어본 경험이 없는 유럽인(사위)에게 김치찌개 끓이는 법을 배우게 했다.

결혼 후 아기가 태어나자 딸애는 육아 교육에 대해 말했다. 아기가 세 돌이 지나면 한국으로 데려와 이곳에서 어린이집을 보내겠다고 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익히게 한 후 영어와 불어를 가르치겠다고 했다. 아기가 성장해서 어디서 어떻게 살지도 모르는데 굳이 한국어를 모국어로 가르치겠다는 녀석이 대견하고 기특했다. 불과 몇 달 전,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쏟아 버리겠다고 발표하기 이전, 한국 정부가 그것을 용인할 수 있다는 발표가 있기 전 이야기들이다. 내 딸뿐 아니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의 애국심은 대단히 뜨겁다. 우리는 그들의 고국 사랑을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손으로 하늘을 가린 채 청정바다를 더럽히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 각료와 여당 국회의원들은 일본 정부의 허튼짓에 박자를 맞추겠다는 듯이 핵 오염수를 처리수(處理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틀렸다. 오염수를 정화한 과학적 근거도 없이 어떻게 처리수라 할 수 있는가? 오염수가 사람 몸에 흡수되어 세포와 결합할 경우 몸에 응고된 채 배출되지 않는다. 더욱이 우리 몸에 들어온 핵 방사능은 DNA를 파괴함과 동시에 암을 유발한다.

오염된 바다에서 생산되는 소금, 김, 해물, 각종 생선이 핵 방호복이라도 입고 있다는 말인가? 그것들 자체가 암 덩어리다. 우리가 핵 방사능에 오염된 바닷물을 가두어 생산한 소금, 한 스푼 먹을 때마다 암 덩어리를 먹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딸애는 아직 두 돌도 안 된 아기에게 암 덩어리를 행여 먹일까 봐 5년 만에 찾게 되는 고국 방문을 거부했다. 대신 나에게 다녀가라고 한 것인데 어떻게 서운하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 부녀는 얼마나 걸릴지도 모를 시간을 이산가족으로 지내야 할 것 같다.

글 최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