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흥에는 관서별곡 있다
전남 장흥에는 관서별곡 있다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5.0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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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의 대가이며 우리나라 최초 기행가사를 쓴 백광홍, 그는 조선 중기 호남 시단을 이끌었다

강원도를 그린 옛 시가로 〈관동별곡〉이 있듯, 평안도를 노래한 옛 시가로는 〈관서별곡〉이 있다.

<관서별곡> 저자 백광홍은 전남 장흥이 고향이다. 어느 날 수원 백씨 문중의 자손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지인에게서 책 한 권을 받았다.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는 봄이면 연례행사처럼 회의가 열린다. 약 50명 정도의 백씨 문중 사람들이 모이는데, 회의가 있던 날 그는 《기봉 백광홍의 문학세계》라는 제목의 책을 가져왔다. 기봉백광홍선생기념사업회가 주축이 되어 수원 백씨 후손들이 뜻을 모아 펴냈다.

〈관동별곡〉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작품이겠으나 〈관서별곡〉은 생소하다. 〈관서별곡〉은 한동안 그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으며 지은이가 누구인지도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관서별곡
관서별곡

그러던 중 국민대학교 이상보 교수가 장흥의 기산 마을 수원 백씨 기봉공파 종가에서 기봉 백광홍의 시문집 《기봉집》을 찾았다. 그가 학계에 발표한 논문, ‘관서별곡 연구’(〈국어국문학〉 26호, 국어국문학회, 1963)을 통해 작자가 기봉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가사 내용도 알려지게 되었다.

무심코 오래된 국어국문학 사전을 들추다가 기봉 백광홍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명종에 대한 충심이 뛰어났음은 물론이고 시문의 대가라 불린 시인이었다. 문중에서 칭송할 만하다. 조선 중기 호남 시단을 이끈, 우리나라 최초의 기행가사를 쓴 장본인이 아닌가. 이제라도 선생의 업적이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흥 기양사 백광홍
장흥 기양사 백광홍

《조선왕조실록》 선조 22년 12월 1일의 기사에서는 백광홍을 이이, 송익필, 최립, 최경창, 이달, 하응림, 이산해 등과 함께 당대를 대표하는 ‘8문장’ 중 한 사람으로 꼽았다. 백광홍이 어렸을 때 공부한 서당인 봉명재는 ‘기산 8문장’이라 불리운 문장가들을 연이어 배출했다. 또한 위세직, 노명선, 이상계, 이중권, 문계태, 위백규 등의 장흥 가단은 즉 조선 문단의 중심이었다. 이러한 맥은 작가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이승우 등의 현대문학으로 이어졌다. 이렇듯 장흥은 이름난 문학인을 많이 배출했다.

백광홍의 스승인 이항은 백광홍의 재주를 무척 아꼈다. 그가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자 너무나 해석해 대성통곡을 하였다고 한다. 명이 짧아 크게 날개를 펴지 못한 제자에 대한 애통함이 전해진다. 백광홍은 순조 8년인 1808년에 장흥의 기양사에 배향된다.

백광홍 선생의 사당
백광홍 선생의 사당

조선 시대의 학술 언론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홍문관을 거쳐 독서당인 호당에서 학문 연구에 정진하고 있던 백광홍은 1555년 봄에 명종으로부터 평안도 평사직을 제수받아 관서 변방의 방위와 정사를 보살피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 무렵 그곳의 아름다운 승경을 보고 수많은 한시 작품을 쓰고 읊었다.

이때 백광홍이 지은 시문 중에서 유일하게 국문으로 쓴 작품이 바로 가사 〈관서별곡〉이다. 〈관서별곡〉은 총 8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1단락: 관서평사직을 맡으라는 왕명을 받음

2단락: 평사 부임의 노정

3단락: 평양의 여러 가지 문물과 풍경

4단락: 백상루와 주변의 승경

5단락: 약산 동대에서의 흥취

6단락: 변경 순시와 군사의 기백

7단락: 압록강에서 본 경치

8단락: 임금과 어버이에 대한 생각

이 작품은 백광홍의 후배인 송강 정철에게 영향을 주었고, 정철은 이 작품이 나온 지 25년 만에 〈관동별곡〉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한마디로 백광홍, ‘관서별곡’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모태가 된 것이다.

사자가 엎드린 모양의 사자산 아래 백광홍이 나고 자란 기산 마을이 있다. 차를 세우고 선생의 발자취를 밟아보았다. 유난히 눈에 띈 그리 높지 않은 돌담이 아늑하고 따뜻했다. 어린 시절 서당을 오가며 자랐을 기봉의 문학 세계가 잔잔하게 가슴으로 전해오는 듯했다.

평안도에 있던 백광홍에게는 까마득히 멀게 느껴졌을 고향. 그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얼마나 애절했을지, 장흥 전통 시장 가까이에서 흐르는 탐진강 물이 말해주는 듯했다. 선생의 깊고 넓은 시풍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마는 그 강물에 사자산 그림자가 훤히 비추어온다. 그림자를 병풍 삼아 인증 사진을 찍었다. 이제는 장흥을 예전과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 보게 된 장흥은 수많은 문장가를 낳고 기른, 문학이 숨 쉬는 땅이다.

글 김지현 

* 《기봉 백광홍의 문학 세계》와 〈장흥신문〉에 게재된 글을 참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