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의 그림책 이야기, "최소한의 사고하는 힘"
전진영의 그림책 이야기, "최소한의 사고하는 힘"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5.0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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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세상에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을까요? 세상은 바쁜 만큼 복잡합니다. 세상은 더 세분되고 각자가 처한 상황은 다 다릅니다. 내가 해결해야 하고 헤쳐 나가야 할 문제들은 끊임없이 생겨납니다. 누군가의 조언도 조언일 뿐 내 상황과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결정은 내가 하고 내가 책임져야 합니다. 실패는 피하고 싶고 책임도 가벼웠으면 좋겠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삶은 실패의 연속입니다. 실패하면서 많은 걸 배운다지만 일부러 실패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처한 문제는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해결하고 싶습니다. 이럴 때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습니다.

간접경험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영화나 드라마로도 가능하고 독서로도 가능합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종이책보다 경험하기 편합니다. 책 읽기는 영상매체보다 어렵습니다. 우리는 편한 매체에 갈수록 익숙해집니다.

영상과 종이책의 간접경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영화나 드라마는 주어지는 영상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일시 정지를 할 수 있는 상황이어도 정지하면서 보는 경우는 드뭅니다. 궁금한 점이 생겨도 앞으로 찾아가 확인하기 쉽지 않습니다.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전개됩니다. 느낀 점을 적을 시간도 없고, 말하기도 여의찮습니다.

책은 다릅니다. 내가 보고 싶은 부분에 머물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부분만 찾아서 볼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넘겨 원하는 내용을 찾기도 수월합니다. 연필을 들고 책 귀퉁이에 몇 글자 적을 수도 있습니다. 저자가 쓴 글에 무언가 적는다는 것은 나만의 느낌이나 의견이 있다는 뜻입니다. 저자의 지식이나 지혜를 넘어 내 것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그 내용을 적는 행위는 능동적인 사고를 하는 모습입니다. 상상력, 사고력 증진뿐 아니라 통찰의 경험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책은 읽으면서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적을 수도 있는 매체입니다.

영상매체를 통해서도 충분히 간접경험이 가능하지만, 경험의 깊이가 다릅니다. 현대 사회는 점점 복잡하고 개인이 처한 상황은 모두 다릅니다. 같을 수 없습니다. 내가 맞닥뜨린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합니다. 내 입장에 맞게 사고하는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세상입니다.

영상은 더 화려하고 자극적으로 인간을 부여잡고 휘두를 것입니다. 판단력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인간이 숨 쉬는 데 필요한 공기, 움직이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 이외에 최소한의 사고하는 힘이 필요한 세상입니다. 사고하는 힘이 생존의 문제로 이어진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멀리 돌아가는 것 같아도 능동적으로 사고하는 빠른 길은 독서입니다.

글 전진영 달님그림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