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손 치워주세요"
"이제 손 치워주세요"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4.2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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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마를 겨우 떼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바깥놀이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다.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면 서너 살 된 언니들이 타는 유아용 세발자전거 뒤에 붙어있는 작은 바구니에 있는 힘을 다해 올라타려고 한다. 그러다가 바퀴 달린 기구를 처음 타보는 경험험을 하는데 바로 씽씽카다. 씽씽카를 타고 느릿느릿 바퀴를 굴리다 성에 안 차면 휙 집어던지고 세 살 언니들이 타는 세발자전거에 눈독을 들인다. 두 딸들의 자전거 타기 첫 시도는 보통 세 살 즈음에 했던 기억이 난다. 유아용 자전거는 심하게 안전해서 웬만하면 다치지 않고 능숙하게 운전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다섯 살 즈음이 되면 뒤에 바구니 대신 보조바퀴가 달린 조금 큰 언니들이 타는 세발자전거를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한다. 씽씽카를 타다가 바구니가 달린 세발자전거로 갈아타고 크기가 확 달라진 보조바퀴가 있는 두 발 자전거로 갈아타는 데에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아이들이 자라는 시간은 더디면서도 찰나처럼 빨리 지나가기도 한다.

드디어 마지막 코스, 보조바퀴를 떼어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그때부터 진정 언니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하는수 없이 보조바퀴를 떼어내야 할 시기가 온다. 그때가 가장 위험하다. 남편과 번갈아가며 자전거 뒤를 잡아주며 함께 뛰어야한다. 가장 격렬하게 놀아주면서 친밀하던 시절이기도 하다.

딸은 뒤를 돌아보며 “손 놓지마, 손 놓지마.”라고 몇 번이고 확인한다. 남편은 아이가 운전하는 자전거 뒤를 잡아주다가 어느 순간 손을 놓아버린다. 몇 번이나 넘어졌고 그래서 팔꿈치며 무릎에 멍이 들기도 한다. 시퍼런 멍이 들었다고, 아프다고 자전거 타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때 멈춘다면 자전거는 그저 공산품이 될 뿐이다. 때에 맞는 적절한 욕망이 아픔을 이기면 어느순간 바퀴는 잘 굴러간다.

두 딸들은 그렇게 자전거를 배웠고 스스로 타게 된다. 베란다에서 내다보이는 작은 운동장을 지루한 줄도 모르고 몇 바퀴가 되었건 땀을 뻘뻘 흘리며 페달을 밟는다. 그러다가 집 앞에서 볼 수 있는 안전한 작은 운동장을 벗어나 아파트 단지를 친구들과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급기야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다른 동네로 이동하면서 내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딸은 내가 손을 내밀어 도와주려고 하면 상관하지 말라거나 관심을 끊으라며 간섭으로 치부한다.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수월하게 숙제를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딸은 그저 싫다고 손사레 치는 시절이 온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가. 미술 숙제를 도와주었다가 학교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상장을 들고 와서는 식탁 위에 심드렁하게 던진다. 
“와, 상이네. 상 받았어? 축하해.”
“그게 내 상이야? 엄마 상이지.”
엄마 손을 조금이라도 빌려서 뭔가를 성취하면 그건 가짜라고,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바른 소리를 하며 대필자를머쓱하게 한다. 이때부터 딸은 이제 진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려고 발버둥친다. 대신 상 받아 주는 인생이 아니라 못해도 진실한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고 센 척하거나 시건방을 떨면서 두려움을 포장하기도 한다. 뭐든 혼자 하려고 애쓰는 딸을 보면 기특하고 대견하지만 한쪽 가슴엔 서운함과 불안이 공존한다. 


고 3 때 여섯 개 대학 중 가장 가망이 없는 대학에 희망을 걸고 죽자고 자소서를 쓰는 작은 딸을 지켜 보다가 이 어미가 네 미숙한 자소서에 날개를 달아주마하고 거침없이 수정을 하여 4번 문항까지 탈고를 하였다. 스스로 만족하며 이 자소서가  ㅎ대학에 가 닿는 날 자소서계에 새 역사를 쓰게 될 것이니 어서 학교에 가져가 담임 선생님께 검사를 맡고 깜짝 놀래켜 드리렴, 그러고 학교에 보냈는데 딸이 노랗게 뜬 얼굴로 돌아와선 3번 문항만 빼고 싹다 고치라는 믿고 싶지 않은 결과를 통고 받았다. 그날 날개를 단 건 자소서가 아니라 내 망상이었다. 


며칠 전 둘째딸이 남자친구를 데리고 집에 왔다. 내가 치앙마이로 여행을 떠난 둘째날이었을 거다. 실은 남자친구와 놀러갈 계획이었지만 집에 남은 남편에게 친구들과 1박2일로 놀러간다고 했던 거짓말이 들통이 나는 바람에 저녁 11시에 남자친구와 불려 온 것이다. 남편에게 멋진 아빠가 되어주라고 치앙마이에서 부탁했지만 멋진 아빠의 정의는 각자 다른지라 남편은 딸아이의 남자친구에게 술을 들이붇듯이 먹이고 끝내 기절을 시켜버림으로 멋진 아빠 역할을 해버렸다.

딸의 사생활을 지켜줄 때가 왔건만, 보조바퀴를 뗀 자전거를 타고 뒤를 돌아보며 엄마, 아빠가 잡아주고 있는지 확인하던 여섯 살 난 딸은 저만치 떠나있건만, 여전히 우리는 자전거를 놓지못하는 엄살쟁이 부모다. 일찌감치 벚꽃이 피더니 벌써 진다는 소식이 들린다. 꽃구경은 이제 남편과 손잡고 할 일이다. 딸들은 세상구경하느라  밖으로 밖으로 나가게 두고 말이다. 

글 우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