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김라일락이 정향이다
미스김라일락이 정향이다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4.16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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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개회나무인 정향은 토종라일락

‘리라 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 옛 오빠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 속에 ‘리라 꽃’ 같은 아가씨, 그 꽃이 라일락이라는 걸 생각하며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털개회나무인 정향 라일락이 바로 미스김라일락으로 둔갑했다는 것. 미스김라일락은 작고 앙증맞으며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아 관상용으로 좋다. 누구든지 집안에 들여놓기 알맞게 상품화됐기 때문이다. 수수 모가지를 닮아서 수수꽃다리라 불리는 나무도 라일락의 일종이다. 순수함이 담긴 이들의 꽃말은 첫사랑이며 매혹의 향기와 젊은 날 추억이다.

미스김라일락이 탄생하게 된 계기는 서울의 북한산을 김양과 함께 오르던 미국의 엘윈 미더가 바위 옆에서 정향 라일락을 발견한다. 미더는 씨앗을 본인의 나라 미국으로 몰래 가져간다.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김양이랑 산을 오르다 발견했으니 김양라일락이라고 지을까 골똘히 고민하다 아니지 김양 라일락보다는 미스김라일락이 좋겠다고 생각해 미스김라일락이되었다.

엘윈 미더는 1910~1966년 당시 미군정의 소속으로 한국에 파견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한국의 자생 라일락인 정향나무를 1954년 뉴햄프셔 농업실험장에 처음 출시했다.

이후 미국 전역과 북미, 유럽, 나아가 전 세계에 알리고 널리 보급된 라일락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원종인 정향나무는 다시 한국으로도 역수입되어 정원이나 식물원 등에 심어졌다. 미더의 미스김라일락은 영국 왕립원예협회로부터 ‘AWARD OF GARDEN MERIT’(우수한 정원식물 상)에 선정이 된다.

엘윈 미더에 앞서 어니스트 윌슨은 1876~1930 미국 하버드대학 아놀드수목원에서 식물분류 학자로 근무하던 1917년 한국 원산지인 수수꽃다리 ‘Syringa oblata subsp. dilatata’의 종자를 채집해 미국에 보낸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한국과 중국 등 동북아시아에서 수집에 열을 올렸다. 무려 2,000여 종에 이른다. 그의 이름을 딴 ‘Abies Koreana Wilson’이라는 학명이 붙었다. 한국 원산의 수많은 자생식물이 미국에서 품종개량을 거쳐 새로운 관상수 품종으로 만들어졌다. 한국 원산의 구상나무 종자 역시 미국에 가져가 교배를 통해 크리스마스트리용 품종으로 육종시켰다.

또한 어니스트에 앞서 1882~1952년 일본의 Nakai가 채집해간 식물은 4천1백여 종, 한반도 자생식물 대부분이다. 일본 박물관에는 한반도에서 침탈해간 식물표본이 보관되어 있다. Nakai는 동경대를 졸업해 같은 대학의 교수이자 부속 식물원장이며 일본 국립과학박물관장을 지냈다.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1910년대 초에 조선총독부 촉탁의 신분으로 조선에 건너왔고 이후 한반도의 식물을 샅샅이 훑고 다니면서 채집해갔다. 조선총독부에서 예산과 무장병력을 지원받아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험준한 고산지역이나 외딴 무인도를 포함해 한반도 전역의 야생을 이 잡듯이 뒤졌다. 물론, 조선인 식물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가 한반도에서 노략질한 식물 종을 집대성하여 펴낸 ‘조선 삼림식물편’ 22집은 한반도 식물 연구의 고전으로 남아 있다.

토착 식물을 일상적으로 보고 즐긴 사람은 한국인이었지만, Nakai는 대부분을 자기가 처음 발견했다 주장하며 자기 마음대로 학명을 지어 세계 식물학계에 먼저 보고했다. 한반도 자생식물 중에는 학명에 ‘Nakai’라는 이름이 무척 많다. 이를테면, 토종라일락의 일종인 수수꽃다리는 학명이 Syringa dilatata Nakai.이다. 토종라일락으로서 흔히 정향나무로도 불리는 털개회나무는 학명이 Syringa patula Nakai.이다. 한국인의 정서를 상징한다 해도 지나침이 없을 개나리의 학명은 Forsythia koreana Nakai.이다. 유일하게 한반도 고유종인 미선나무는 Abeliophyllum distichum Nakai이고, 세계적으로 한반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노각나무는 Stewartia Koreana Nakai이다. 사과나무 원시종인 능금나무는 Malus asiatica Nakai이다.

한반도 특산종인 금강초롱꽃은 금강산에서 가장 먼저 발견됐다고 하여 ‘금강’이라는 말이 이름의 맨 앞에 붙었다. 이 식물을 가장 먼저 발견해 학명을 붙인이도 Nakai였다. 그는 금강초롱꽃에 Hanabusaya asiatica Nakai라는 학명을 달았다.

Nakai는 조선에서 자신의 식물 채집을 군 병력까지 동원하면서 도와준 조선총독부에 보은하는 의미로 그 총독부의 실력자 이름을 학명에다 집어넣었다. 대개 종명에는 발견된 지역인 한국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이 국제관례인데도, 그는 koreana가 아니라 asiatica라는 이름을 썼다. 발견 장소를 한국이 아닌 아시아로 쓰면서, 모호하게 흐려놓는 행위는 고의적이었다.

섬초롱꽃은 이 세상에서 오직 한국의 울릉도에만 자생한다. 섬초롱꽃은 한국 특산종이면서 울릉도 특산종인 셈이다. 섬초롱꽃의 학명은 Campanula Takesimana Nakai라는 자신의 이름이 들어 있다. 게다가 <다케시마>라는 지명이 들어 있다. 자생지인 울릉도를 다케시마라는 자국의 이름으로 표기한 것이다. 지금 한반도에 자생하는 식물 종 가운데 얼추 75%가량이 학명에 Nakai 등 일본인 이름이 들어 있다. 정향나무를 비롯해 꽃개회나무, 섬개회나무 등 수수꽃다리 속 토종라일락에도 어김없이 일본 식물학자의 이름이 들어 있다.

우리 한반도 대한민국 식물 원종 2,000여 종이 미국으로 갔고 4천1백여 종은 일본으로 보쌈당해 갔다. 한반도 원종 식물이 외국인에 의해 자국으로 건너가 둔갑하여 다시 들어와 외국 품종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수입 개량품종은 원종과 비교하면 아름답지도 향기롭지도 않다. 그런데 ‘육종’이라는 핑계로 야생 원종의 유전자를 조작함으로써 자연 진화의 과정이나 흔적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우리 야생의 정향나무와 꽃개회나무가 서구의 육종가나 식물 사냥꾼에 의해 종의 순결을 상실해버린 셈이다. 라일락이라 불리는 종이 둔갑하고 둔갑해서 2백 종이 넘는다고 한다. 털개회나무 정향, 토종라일락, 수수꽃다리, 수많은 라일락의 원조는 한국이다.

외국으로 가 탈바꿈되어 돌아오기까지 고난을 견뎌온 나무들이다. 미스김라일락은 한국의 토종라일락 털개회나무인 정향이라는 걸 잊지 말자.

글 김지현

※정향나무에 대해-<네이버>-작성자 나그네-글에서 인용 착안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