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문선
내 친구, 문선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3.1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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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이며 어지럽게 날리는 기억의 낱장 중에 선이를 부여잡고 잠에서 깼다. 순식간에 일어난 접촉사고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막다른 길을 마주한 것처럼 선이는 그렇게 불현듯 나를 찾아온다. 이자에 이자가 더 해진 무거운 독촉장처럼 그리움이 가슴을 짓누른다. 두 손에 얼굴을 묻고 긴 한숨을 내쉰다. 너의 빈자리가 주는 공허함을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 것일까? 오십이 넘도록 지병처럼 너를 앓고 있다. 보고 싶다. 선이야!

눈썹에 맞춰 자른 앞머리, 귀밑에서 똑 잘린 윤기나는 단발, 까무잡잡한 피부, 손질된 깨끗한 옷, 단정함에 침착함이 묻어나는 아이. 문선. 성은 ‘문’, 이름은 ‘선’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만나 2학년으로 남아 있는 착하고 믿음직스러운 선이. 영락없는 시골뜨기인 나와는 분위기 자체가 다른 아이였다.

선이와 만남은 그 당시 서산군 부춘리에서 동문리로 이사 가면서였다. 전학 가야 했는데 부모가 이리저리 미루다 때를 놓쳐 가까운 학교를 놔두고 멀리 걸어 다녀야 했다. 제일 감당하기 어려운 건 여름 땡볕이었다. 그림자가 길어질수록 팔다리도 늘어졌다. 진득한 땀을 흘려가며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고되고 외로운 등, 하굣길은 고행길이었다.

그 길에서 무슨 라사라는 양복점 마네킹 옷이 언제 바뀌는지 매일매일 쳐다보기도 했고 현수막을 길가에 내놓고 글씨를 쓰는 아저씨를 신기하게 보기도 했다. 한 번쯤은 아저씨가 글씨 비뚤게 쓰지 않을까 생각하며 글씨를 다 쓸 때까지 지켜본 적도 있었다. 아저씨가 글씨를 안 쓰는 날은 큰 재미를 놓친 양 아쉬웠다. 비가 오는날이 대부분 그랬다. 식료품점을 지날 때는 운이 좋으면 꼬부랑말을 하고 얼굴도 허옇고 코가 높은 군복을 입은 미군들을 볼 수 있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빤히 그들을 지켜보기도 했다. 시내를 빠져나오면 돌을 발로 차며 걸었다. 돌을 차다가 잃어버리면 다시 다른 돌을 차면서 집까지 가는 지루함을 달랬다. 작은 발로 홀로 걷는 길이 얼마나 싫고 힘들었는지 학교만 가까웠어도 정말, 정말 공부를 잘했을 거란 생각에 부모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 지루하고 힘든 길에서 길동무로 만난 친구가 선이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 선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걷던 내가 있다. 선이를 몇 번 보았다. 말을 붙이고 싶었지만 수줍음 많고 내성적이라 말을 건넬 용기가 없었다. 선이가 먼저 말을 걸고 선이가 먼저 내 손을 잡았을 것이다. 선이는 선물처럼 내게 왔다. 선이 아빠는 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고 했던 것 같다. 우리 부모야 그렇다 쳐도 선이는 왜, 먼 학교를 다니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주로 하굣길을 함께했다. 서로 먼저 수업이 끝나면 기다렸다가 같이 오곤 했는데 복도 창가에 까만 머리가 서성이면 마음이 급해졌다. 선생님과 마지막 인사가 끝나면 필사적으로 문을 향해 뛰어 선이에게로 달려갔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손을 내밀어 잡고 나란히 걸었다. 가방을 두 어깨에 메고 뭍 세상이 신기한 어린 거북이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스쳐지나는 것들에 대해 얘기했다.

아카시아꽃향기를 맡으며 과수원 길을 노래했고 해바라기가 핀 길을 걸었으며 코스모스가 일렁이는 작은 언덕을 향해 손을 흔들기도 했다. 넓은 논이 보이는 길에서는 벼가 익어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자연의 색채에 감탄했다. 비포장도로를 지나는 차들이 뿌연 먼지를 구름처럼 몰고 와 우리를 덮칠 때는 도로를 등지고 흙먼지가 잠잠해질 때까지 손을 잡고 고개를 숙이기를 반복했다. 혼자 먼지를 덮어쓸 때는 얼굴이 찌그러졌는데 선이랑은 괜찮았다. 우린 밀가루처럼 고운 먼지를 떨어내며 걷고 또 걸었다.

큰 미루나무가 손을 흔들며 맞아주는 길에 들어서면 동행의 끝 지점이다. 갈림길에 서면 홀로 되어 한참을 집까지 걸어야 한다. 혼자 걸어가기 싫은 날은 가위바위보를 했다. 진 사람이 이긴 사람 집까지 데려다주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내기였다. 가방을 정해진 거리만큼 들어주는 가위바위보도 자주 했다. 선이는 가방을 들어주기 싫어 딴소리해도, 갈림길에서 선이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가야 하는 날에도 내가 우기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다가 할 수 없지, 하는 표정으로 내 뜻을 받아주었다. 나는 선이가 번번이 그러리라는 걸 알고 일부러 생떼를 부린 적도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있긴 했지만 동생들만 있던 내게 선이는 언니처럼 느껴져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런 친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었다. 수업 마지막 시간에는 매일 받아쓰기 숙제 검사를 했다. 일 학년 때는 받아쓰기만큼 중요한 숙제가 없었다. 우리 부모는 받아쓰기 숙제도 못 해주었다. 숙제를 포기한 대가로 매일 손바닥을 아프게 맞았다. 또 너냐 하는 선생님의 경멸의 눈초리를 받아내는 일은 견디기 어려웠다. 유독 마음이 상한 날은 예전에 살던 곳 큰집에 계신 할아버지를 찾아가서 받아쓰기 숙제를 하곤 했다.

그래도 가끔씩 백 점짜리 시험지를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내밀었던 나는, 손바닥이 붉어지는 것쯤은 괜찮았다. 선이가 보지 않는다면 그걸로 됐었다. 늘 조마조마했다. 선이네 반이 먼저 끝나는 날이 많아 선이가 이런 내 모습을 보면 어쩌나, 창가를 둘러보며 선이가 늦는 날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날이 한없이 이어지리라 막연히 기대했던 어느 날, 손바닥을 내놓고 맞을 채비를 하고 있을 때 복도 창가에 서 있던 선이를 보고 말았다. 선이 눈이 크게 내 눈에 들어왔다. 일 학년 꼬맹이 자존심에 생채기가 사정없이 나버린 날이었다. 손바닥만큼이나 마음이 붉어졌다. 시무룩한 표정을 하고 기다리고 있는 선이에게로 갔다. 선이가 날 어떻게 생각할까? 숙제도 안 해오는 친구에게 실망하진 않았을까? 참담했다. 쭈뼛쭈뼛 선이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선이는 감추고 싶은 내 손을 보는가 싶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느 날처럼 손을 잡아 주었다. 마음이 놓였다.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게 해준 선이가 고마웠다. 우린 어제처럼 놀면서 걸으면서 집으로 향했다. 2학년이 되면 같은 반이 되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고 작은 소망을 품은 우리는 행복했다. 아쉽게 바람대로 되진 않았지만 변한 건 없었다.

언제나 함께일 것 같았던 우리에게 이별이 찾아왔다. 우리 집이 이사를 하게 됐다. 이렇게 헤어질 수는 없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몇 날 며칠을 고민하던 끝에 선이가 주소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아냈다. 나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 주소가 뭐냐고 물으니 집집마다 번호가 있다고 했다. 선이네 집에도 우리 집에도 번호가 있단다. 수많은 집에 누가 그렇게 많은 숫자로 번호를 매겼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선이가 그렇다고 하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는 곳의 주소를 모르는 내게, 선이는 자기 집 주소를 부모님께 여쭈어 공책에다 써왔다. 꼭 편지하라고 했다. 이사 가면 우리 집 주소를 적어 편지하라고, 선이도 편지하겠다고, 나는 그러마 약속하고 선이 주소를 들고 안양으로 왔다.

그것이 선이와 마지막이었다. 한 통의 편지도 쓰지 못한 체, 선이에게 주고 싶은 공주가 왕관을 쓰고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분홍색 연필과 알록달록한 꽃잎이 바람결에 날리는 듯한 연필 두 자루만 기억 속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예뻐서 안 쓰고 선이게 선물하려고 애지중지하고 있었는데 편지 봉투보다 긴 연필은 사선으로 넣어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엄마는 봉투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보낼 수 없다고 했다. 연필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은 내 마음을 전 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린 나는 편지 쓰는 것도 잊고 실의에 빠졌다. 더 큰 봉투에 넣어서 우체국에 가서 부치면 된다는 걸 뒤늦게 알았지만 흙이나 가지고 놀고 새끼줄 꼬아 줄넘기하고 들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던 어린 촌뜨기에게는 그것조차 어려운 문제였다. 어떻게든 큰 봉투를 구해서 편지와 함께 연필을 보내고 싶었는데 둘째 동생하고 다툰 날 주소가 사라진 공책을 발견하고 말았다. 유력한 용의자는 내 눈을 피했고 셋째 동생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아직 방바닥을 쓸고 다니는 막내가 잡아 뜯었다기엔 정교하게 찢겨 있었다. 분명 둘째 소행인데 증거가 없으니 화를 낼 수 없고 어디에다 하소연할 길 없이 선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편지만이라도 썼더라면 어린 소견에 그땐 그게 왜 안 됐는지….

40년이 훌쩍 지나도록 나는 문뜩문뜩 선이가 그립다. 나처럼 선이도 날 잊지 않고 있는지, 어린 선이가 내 편지를 오래도록 기다리고 기다리진 않았는지, 선이야! 미안하다. 보고 싶다. 선이야!

글 김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