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둥이 출신 어머니
늦둥이 출신 어머니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2.20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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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구 남매의 늦둥이로 태어났다.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딸을 할아버지는 무척 사랑했다. 어머니는 외삼촌들과 이모들의 눈치를 한 몸에 받으며 오로지 할아버지의 사랑만 믿고 살았다.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입고 싶은 것 다 입고, 갖고 싶은 것 다 가져야 직성이 풀릴 만큼 고집불통에다 당신 뜻은 절대 굽히지 않는, 속된 표현을 빌리자면 막무가내 막가파였다.

삼남 육녀의 막내인 엄마가 열다섯이 되었을 즈음에는 오라버니들과 언니들은 모두 혼인하여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었다.

친정에 다니러 온 이모가 부모님 간식거리라도 챙겨오면 내놓기 무섭게 철없는 막둥이 입으로 홀라당 들어가 버리니 이모 마음 편할 리 없었다.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당연히 이모 눈에 어머니가 결코 이쁠 리 없었다. 그 후로 이모들은 음식을 몰래 숨겨와 친정엄마에게 친정아버지에게 잘 챙겨드리라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결국 막내 입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철부지 늦둥이 딸이 열일곱 되던 날 아버지께서 조용히 부르시어 “막내야 인자부터는 성들이 사 오는 거, 니 안 줄 것이여. 아부지가 다 먹을 것이니께 앞으로는 눈독 들이지 말어.” 라고 했다. 설마 했던 막내의 예상과 달리 그날 이후로 할아버지는 정말로 혼자 먹었다. 철없는 늦둥이는 그것이 서운해 참 많이도 눈물 바람을 했다.

세월은 그리 그리 흘러 막내가 시집을 가는데 어이쿠 이 일을 어찌할거나, 신랑이 글쎄 일남사녀의 외아들에 막둥이였던 것이었다. 그러니 두 분의 삶 결코 녹녹치 않았음은 두말하면 잔소리 세 말하면 입 아프다. 두 늦둥이 부부는 “나 좀 봐줘. 무슨 소리?!, 나만 위해 줘!”가 되어 버린 것이다.

배려가 서툰 탓에 서운한 감정이 앞서는 것은 당연지사. 설명하지 않아도 좌충우돌 부부싸움 불 보듯 훤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일남 삼녀 떡~하니 두셨으니 (그중 셋째가 바로 나다) 싸우며 정이 들었던 것인지, 술기운에 여차저차 그런 것인지 하여간 우여곡절 사연 많아도 자식을 많이도 두셨다. 그런 부모에게 태어난 자식들은 당근, 철이 빨리 들 수밖에.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단다. 때는 바야흐로 70년대 중반, 단풍이 아기 뺨처럼 발그레하게 채색되어가고 있을 그런 때였을 것이리라. 아기를 둘러업고 나온 젊디젊은 울 어머니. 그날도 아버지랑 옥신각신 다투시고 식전 댓바람부터 이모 집에 갔더란다. 40여년을 울 어머니 딸로 살면서 추측하건대 그날 울 어머니, 이모에게 남편 흉 열라잡으면서 마시지도 못하는 막걸리 몇 사발 들이켰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이 이야기는 부부싸움을 하신 후 시간이 많이 흘러 아버지께서 당사자인 내게 폭로하신 사건임을 밝히는 바이다.)

울 어머니 저녁노을 내려앉을 즈음에서야 얼굴이 발그레하여 귀가. 그래도 이모 집에서 뜨는 해 안보고 집으로 돌아온 것까지는 젊은 엄마 어쨌든 기특하다. 술도 한잔했겠다, 취기는 올라왔겠다, 짜잔~ 여걸의 포스로 위풍당당하게 귀가하신 어머니. 게슴츠레 아버지를 노려보면서 방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던 아버지, 아기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고, 울 기특하신 어머니 콧방귀 뀌면서 포대기에 손을 얹는데…… 잡혀야 할 아기 궁둥이가 안 잡혔으니, 이리저리 둘러봐도 아기는 온데간데없고 빈 포대기만 펄럭였단다. 찰나, 아버지는 어머니의 뺨을 한 대 찰싹, 정신이 바짝 든 울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헐레벌떡 날 저문 가을 길로 아기를 찾아 나서는데, 산들바람 야속이 불어오고 어둠은 한층 짙게 잦아들었다.

술에 취한 어머니가 헐렁해진 포대기에서 빠져버린 아기를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갈지자로 바쁜 걸음 옮길 때, 우리 아기 울지도 않고 씩씩하게 행길을 따라 기고 있었다. 이모 집 가는 길을 거슬러 가던 아버지. 어스름 길 저쪽에서 엄마, 엄마를 부르며 씩씩하게 기어가고 있는 아기를 찾은 것이다. ‘엄마’ 한 번에 한 걸음 기고, ‘엄마’ 한 번에 또 한 걸음 기어가는 아기. 불행 중 다행, 다행 중 불행이었다. 아기를 안고 보니 무릎은 피투성이고 손바닥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던 70년대 시골길이었기에 망정이지 이 몸 하마터면 오늘, 이 수필 완성하지 못할뻔했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며 무릎과 손바닥을 내려 보는데 정체 모를 상처의 흔적, 좀 억지스럽더라도 그날의 것이리라.

그렇게 세월을 지나 이제 일흔을 훌쩍 넘어선 어머니. 아직도 늦둥이 기질 못 버리시고 남이 가진 거 나 안 갖곤 못살아, 이시니 자식들 환장할 지경이다. 오늘도 애꿎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원망하면서 철없는 울 어머니 뒤치다꺼리에 바쁘기만 하다. 물론 울 어머니 자식 사랑 둘째라면 서럽고, 내 새끼 일이라면 당신 목숨 바쳐도 아깝지 않을 만큼 애틋하다. 오늘도 여전히 늦둥이 막내인 어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글 : 강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