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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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2.1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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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 같이 회식했던 여덟 명 중 한 직원이 자신의 팔을 내보이면서 괜찮냐고 물었다. 옷소매를 걷어보니 이게 웬일인가! 팔뚝에 오돌토돌한 붉은 점이 번져 있었다. 깜짝 놀라서 화장실로 달려가 몸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옷으로 가려진 내 몸은 멀쩡한 곳이 없었다. ‘아침부터 몸이 나른하면서 미열이 있는 것 같아 몸살기가 있나? 조금 지나면 괜찮겠지.’하고는 일에 몰두하다 잊고 있었는데, 회식을 했던 두 사람만 이런 증세가 나타났다. 그로 인해 저녁을 함께 먹었던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1차로 갔던 단골 식당 고깃집 음식은 이상이 있을 리 없다, 2차로 처음 간 막걸릿집 부침개 맛이 이상했었다, 음식점 내부도 청결하지 않았다, 분위기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주인도 불친절했다 등. 우리는 음식점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쳐가며 두 번 다시 가지 말아야 할 집으로 낙인찍었다.

큰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 피부 질환으로 3년여 동안 고생한 일이 있었다. 여름방학을 며칠 앞두고 아들은 학원 앞 포장마차에서 떡볶이와 순대를 사먹었다. 이튿날 아침, 아들의 배 부분에 붉은 반점들이 돋더니 하루가 지나자 온몸을 다 덮어 버렸다.

“아들, 왜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순대, 떡볶이를 사먹었어. 그런 데서 먹는 음식이 위생적이겠어?”

화가 나서 나무라는 내 말에 아들이 말했다.

“친구들과 같이 사먹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들은 괜찮아요!”

나는 아들 몸에 생긴 붉은 반점 원인이 청결하지 못한 곳에서 음식을 사먹었기 때문이라고, 다시는 청결하지 않은 집에서 음식을 사먹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붉은 반점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일주일, 열흘, 한 달, 두 달, 일 년이 지나도 나을 기미가 없었다. 음식으로 인한 알레르기 반응 같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던 병원에서도 쉽게 치료가 되지 않자 병명을 모르겠다,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희귀병이다, 가렵지 않은 게 더 큰 문제다, 가려운 증세가 있는 것보다 피부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확률이 더 높다는 말로 겁을 주었다.

그즈음, 오래 살던 집에서 이사하게 되었다. 집을 옮기고 일주일이 지났을까. 아들 피부에서 동고동락했던 그 몹쓸 것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찌 이럴 수가 있지(?) 긴 세월, 애걸복걸해도 꿈쩍도 하지 않던 피부질환이 환경이 바뀌자마자 흔적 없이 사라졌네.’ 나는 춤을 출 만큼 기뻤다. 하지만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속담처럼 내 몸에 생긴 증세가 아들이 여러 날 힘겨워했던 피부 질환과 같은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에 커피 한 잔을 타서 마셨다. 목으로 뜨거운 물질이 넘어가자 몸 전체에 나 있던 불긋한 반점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조금씩 가렵기 시작하였다. 아! 이것은(?) 섬광처럼 스치는 게 있었다. 짐작이 가는 곳에 전화를 걸었다.

“며칠 전, 우리가 먹었던 나물이 혹시 옻나무 순이었어요?”

“엄나무 순과 옻나무 순이 섞여 있었습니다.”

“아휴, 원인을 알았으니 다행이에요. 그렇지만 큰일 날 뻔했어요. 저 말고 다른 한 사람은 호흡곤란까지 와서 위험했었어요. 왜 옻 순이 섞여 있다고 말 안 했어요? 옻나무에 있는 성분은 체질에 따라서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날 수 있고, 그 증세가 있을 때는 열을 동반하기 때문에 뜨거운 음식을 금해야 하는데요.”

내 말에 주인은 안절부절못했다.

늘 그랬듯이 우리가 단골로 가는 고깃집에서는 무엇이든 더 주려고 하는 주인 부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날도 몸에 좋은 엄나무 순 나물이라며 두 접시 가득 내왔다. 먹으면서 ‘어라, 엄나무 순 맛이 아닌 데’하면서도 주인 말에 한 치의 의심도 안 했다. 일행은 2차로 갔던 막걸릿집에서 불쾌감을 느꼈다. 어둑한 조명 빛과 칙칙한 실내장식. 주문한 음식을 식탁에 갖다 놓아주는 종업원의 성의 없는 손길. 주인에게서 풍기는 거만한 태도. 이런 것들로 해서 막걸릿집에서 먹었던 음식에는 이상이 없었는데도 몇 사람의 여론몰이로 가지 말아야 할 곳이 되었다. 그러니, 단골로 간 식당에서 먹었던 엄나무 순 나물에 문제가 있었다는 생각을 못 했다. 아니, 안 한 것이다.

나는 옻이 올라 20여 일을 고생했다. 원인을 몰라 불안했던 마음은 가셨지만, 뒤늦게 나타난 가려움증으로, 특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밀한 곳이 가려워 연신 화장실로 쫓아다녀야 했다. 아마도 죄 없는 막걸릿집을 모함한 대가가 더해졌으리라.

글 박순옥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창과 졸업
2016년< 한국산문>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