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어른
어쩌다 어른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3.01.16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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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방송 오락프로그램 <미운우리새끼>를 보았다. 나이가 40대 중·후반인 출연자들의 일상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국내 연예인 중 내로라하는 노총각들의 생활을 그들의 엄마들이 한심하다는 듯 바라본다. 때론 폭소가, 때론 연민이 넘치는 그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것이 시청자들의 몫이다. 철없어 보이는 그들의 행동을 하나씩 보노라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이와는 하등 상관이 없어 보인다.

주어진 대로 만족하며 살려고 노력했다. 욕심 없는 나와 추진력 없는 옆지기와 함께 살아온 삶은 시간이 흐를수록 헐렁한 살림살이가 말해줬다. 처음부터 추진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결혼 초 잘 나가던 사업이 10여 년 승승장구하고는 그 뒤론 주~욱 고배를 마셨다. 그는 성공에 대한 미련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실패를 인정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아직도 눈은 예전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그래서 인생의 선배들이 그랬나? 젊어서의 성공은 피할 것 중에 하나라고…….

긴 시간 되는 일이 없자 성격도 변해갔다. 내면을 정복하지 못한 화가 시시때때로 쏟아졌다. 감정이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처럼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시끄럽지 않으려고 덮어버린 것들이 어느 날 더 커다란 불덩이가 되곤 했다. 이쯤 되면 집안 기류가 냉랭해져서 온 가족이 불편해졌다. 갱년기를 넘기며 나 또한 자주 화가 올라왔다. 전엔 잘도 참아내던 인내가 바닥을 들어냈다. 착한 척하며 사는 것도 이골이 났다. 우리는 부딪치고 깨지고 아프고 삶의 슬픈 무게를 감당하며 어쩌다 보니 지금에 도착해 있었다.

이상적인 삶이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내가 닿을 수 있는 최고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웬걸, 그것도 어느 정도 경제력이 뒷받침되었을 때 ‘묵묵히’라는 표현이 가능했다. 여성스럽던 내가 터프 걸이 되는 건 순간이었다. 순종형이던 내가 리더형이 되어갔다. 가정경제의 환기를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일을 도모하고 솔선수범 일했다. 현모양처를 꿈꾸던 내가 남자 셋을 휘두르는 장부가 되었다. 목소리 작던 내가 소리통이 커졌다. 덕분에 약한 성대가 자주 쇳소리를 냈다. 마음과 행동이 따로 놀았다. 사근사근 나긋나긋한 여자가 아니라 호령하는 장수 같았다. 집안에 악역을 자처했다.

“여봇, 이거 좀 치워서 안 보이는 데 갖다 놔욧.”

“야~ 야~ 큰아들, 빨랑빨랑 일어나지 못해?”

“야~ 슈퍼맨, 제발 운동 좀 하고 살 좀 빼라 엉?”

어느 날 돌아보니 세월이 훌쩍 지나가 있었고 그런대로 잘 먹고 잘살고 있었다. 20대를 벗어나 3, 40대 그리고 정신없이 보낸 50대, 매일 매 순간이 처음 맞는 삶이었다. 실수와 실패를 번번이 치르며 세월을 보냈다.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면 더 나은 어른의 모습이 될 수 있었을까. 어느 날 돌아보니 별로 이루어 놓은 것도 없고 보여 줄 것도 없는 중년이 되어있었고 초로의 노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우리는 엉거주춤 어른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다들 살아가는 거란다.”라고 어르신들이 말했고 또 실제로 그렇게 살아졌다. 너나없이 그런대로 아옹다옹 살아지는 것이 인생이었다. 그러니 미래의 어른들이여 기탄없이 살으라.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던 우리도 살아냈으니 그대들 또한 잘 살아지리라.

현세대를 일컬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를 지나 오포세대(집, 경력), 칠포세대(희망/취미, 인간관계), 구포세대(신체적 건강과 외모)까지 포기하는 시대가 왔단다. 경악할 일이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여 부디 아무것도 포기하지 말기를……. 그 어떤 것도 피하지 말고 용감하게 현실과 마주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기를 두 손 모은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하루가 주어지고 모두가 처음 맞는 생이다. 그 하루가 이어져서 자신의 일생을 만들어 내듯이 숨 가쁘게 빛나는 오늘, 지금을 사랑하며 살아보자. 지금 거울 앞에 비치는 나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그 모습은 분명 과거로부터 왔고 미래로 향해 달려간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모습으로 남겨져야 하지 않을까. 설령 그렇게 되지 않을지라도 어떠랴. 욕심 그릇이 작으면 자유롭다. 살아 있는 것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으랴.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소음은 마음속에서 내가 만들어 내는 소리란다. 그 소리를 잠시 멈추고 자신과 마주하여 볼 일이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다시 자유로운 비상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돌고 도는 게 인생 아니던가. 눈물 흘릴 때가 있으면 크게 웃을 때가 있는 것이다.

문득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시 소절이 생각나 피식 웃는다.

‘사람이 온다는 건 /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의 과거와 / 현재와 / 그리고 /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이하 생략

그러니까 어마어마한 두 사람의 일생을 다 합쳐도 우린 영락없는 실수투성이 어른이었다. 옆지기가 환갑이 되었다. 기념으로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삶에도 환기가 필요했다.

이순(耳順)이 훌쩍 넘어도 인생, 아직도 모를 일 투성이다.

글 : 김 순 례 

서울 디지털대학 문예창작과 졸업한국산문 작가협회 회원천안 수필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