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로 찾아간 놀이터
섬마을로 찾아간 놀이터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2.04.20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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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항에서 뱃길 따라 70리 떨어져 있는 섬. 생김새가 '고개는 서쪽, 뿔은 동쪽에 두고 드러누워 있는 사슴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녹도(鹿島). 전교생이 10명 넘지 않는 작은 청파초 호도분교 녹도학습장에 아이들과 어른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녹도학습장은 2017년, 폐교된지 10년만에 단 한 명의 아이를 위해 다시 문을 열었던 학교다. 폐교됐던 지역에서 학교교육이 재개된 것은 이것이 전국 최초의 사례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후 그날의 입학생은 6학년이 되었고, 단 한 명의 학생수는 유치원생 3명을 포함한 8명으로 늘었다. 소멸을 걱정하는 농산어촌의 현실에서 마을의 학교가 마을의 희망찬 미래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 거듭난 것이다.

지난 15일 이곳 녹도의 섬마을 학교에는 뭍에서 찾아든 어른들과 섬마을 아이들이 함께하는 놀이판이 펼쳐졌다. ‘섬 지역으로 찾아가는 놀이체험’. 올해로 3년차를 맞이하는 이번 행사는 보령교육지원청(교육장 김영화)의 지원과 예비사회적기업인 세상놀이연구소(대표 강동완)의 사회공헌사업으로 보령시 앞바다의 6개 섬마을 학교(외연도, 장고도, 녹도, 삽시도, 고대도)를 찾아가 놀이판을 펼치는 사업이다.

보령교육지원청에서는 ‘떡’을 해왔고, 세상놀이연구소에서는 ‘놀잇감’을 가져와 섬마을의 아이들과 놀이판을 펼쳐냈다. 이날의 놀이판은 특별한 일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주 오래전 이곳 녹도에 총각 선생님이 부임해왔다. 녹도 섬 처녀와의 결혼으로 녹도가 또 하나의 고향이 되었던 그는 칠순을 넘어선 나이에 다시 녹도를 찾았다. 그곳에는 폐허가 된채로 쓰임새를 잃은 녹도분교가 있었다. 이후 운명처럼 그곳을 인수한 선생님은 옛날의 녹도 섬처녀와 함께 하루도 쉬지 않고, 그때 그시절의 기억을 더듬으며 그곳을 다듬었다.

그즈음 노부부를 찾아온 한 사람. 그 옛날 섬마을 총각선생님의 제자였던 그는 그 섬학교를 관장하는 교육장(보령시교육지원청)이 되어 옛 학교터에서 옛 스승님을 뵈었다. 마음 한 켠에 간절함을 품고 찾아와 건넨 옛 제자의 한마디.

“선생님. 녹도의 아이들이 운동장이 없어요. 아이들이 운동장이 있는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하는데 어쩌면 좋죠?”

운동장이 없는 학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내심 마음에 걸렸던 그는 애써 만든 그곳에 다시금 학교종을 걸었다. 거처가 되고자 했던 그곳은 교실이 되었고, 정원이 되고자 했던 그곳은 운동장이 되었다. 그렇게 그 옛날의 섬마을 총각 선생님은 섬마을 아이들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었다.

녹도가 고향인 김영화 교육장은 “후배이기도 한 우리 녹도 아이들이 내가 뛰어놀던 운동장에서 노는 모습을 보니 꿈만 같다. 다시 학교를 열어준 강신원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놀이 경험이 부족한 섬 지역 학생들이 찾아가는 놀이체험을 통해 신나게 뛰고, 놀며 자라는 행복한 학교가 실현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놀이체험에 함께한 세상놀이연구소 강동완 대표는 “섬마을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놀이터다. 하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곁에 함께한 자연은 별스럽지 않은 일상인 것이다. 모바일 게임 등으로 심심할 새가 없는 아이들에게 자연 환경이 특별한 즐거움으로 느껴지게 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촉진과 외적자극이 필요하다. 녹도의 선생님들과 마을 어른들, 그리고 교육지원청의 지원 등은 이를 위한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작년까지 두 명의 학생이 있었던 호도분교는 더 이상의 학생이 없어 휴교상태이다. 하지만 단 한 명의 아이도 없었던 고대도에 다시금 한 명의 학생이 생겼고 그를 위해 학교가 열렸다. 한 학생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 지역과 마을을 살리는 교육을 위한 섬마을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충남교육청의 뚝심어린 지원은 인구소멸 지역으로 치닫는 농산어촌의 암울한 현실에서 한줄기 빛이자 대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을이 학교이고, 학교가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