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좋은 집을 – 아프간 난민을 맞이하며
모두에게 좋은 집을 – 아프간 난민을 맞이하며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1.08.2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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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는 단어는 물질적인 요소와 비물질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아주 복합적인 단어입니다. 집은 우리가 사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그 공간에 스며든 사연이 형성하는 장소이기도 하지요. “집 같은”으로 조금 더 생각의 틀을 넓혀보면, 음식, 가구, 언어, 문화 등 너무나도 다양한 요소들이 집이라는 말에 얽혀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한국말로는 적절한 표현을 찾기가 조금 어려운데요, 영어로 집은 하우스(house)이기도 하고 홈(home)이기도 합니다. 하우스는 물리적 측면이 강조되는 표현이고, 홈은 보다 복합적인 단어이지요. 하우스는 보다 사물 중심적인 관점, 홈은 더 사람 중심적인 관점이 드러나는 단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마 우리말로는 주택과 주거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집은 보통 긍정적이고 따뜻한 감정과 연결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놈의 집구석!” 할 때 그 집은 온갖 복잡한 마음을 담고 있지요. 이처럼 집은 진짜 나를 드러낼 수 있고,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재충전할 수 있는 삶의 토대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감시와 억압, 차별과 폭력의 공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에도 집에 대한 여러 표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향, 친정, 시댁, 처가, 차쥐방, 기숙사….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쉽지요!

재밌는 표현을 소개하고 싶은데요, 바로 하우징(housing)과 홈잉(homing)입니다. 명사인 집에 현재진행형인 -ing를 붙여서 동명사로 만들어 낸 것이지요. 하우징이라는 표현은 개발도상국에서 집이 단번에 완성되지 않고, 그때그때 집주인의 형편에 따라서 조금씩 덧붙여져 가는 현상을 관찰한 터너(Turner)라는 분이 널리 퍼트린 단어입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집의 사회적이고 감정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홈잉(homing) 혹은 홈-메이킹(home-making)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요. 이탈리아의 보카그니(Boccagni), 네덜란드의 다위벤다크(Duyvendak) 등이 대표적인 학자입니다.

저는 네덜란드에 살면서 시리아 난민들의 하우징과 홈잉을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네덜란드 사회는 어떤 공간을 제공하는지, 그 공간을 긍정적 경험으로 채우기 위해 어떤 관계를 만들어 주는지. 또 난민들은 자기가 원하는 장소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 공간을 꾸며가는지, 어떻게 친구들을 사귀어 가는지. 매일의 삶이 집처럼 느껴지기 위해서는 음식도 중요하고 사회생활도 중요한데,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가는지 살펴봤습니다. 제 자랑도 보태면, 연구를 잘했다고 세계사회학회의 학술지 현대 사회학(Current Sociology)으로부터 이달의 사회학자로 뽑히기도 했었지요!

제 연구는 암스테르담의 한 주거 프로젝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청년 280명과 여러 국가 출신의 난민 청년 280명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연합기숙사(?) 같은 프로젝트였는데요, 이들은 서로 다 같이 어울리기도 하고, 또 말이 편한 동족끼리 어울리기도 하며 서로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자기 방에 고립된 사람도 있었지요. 연구의 한 부분으로 난민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이 자기 집에 대한 만족도까지 좌우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같은 환경에 살아도 친구를 잘 사귀고 즐거운 삶을 사는 사람에게 그 집은 안식처이자 삶의 토대였고요, 적응이 어렵고 일상에 불만이 많은 사람에게 그 집은 그저 수용소에 불과했습니다.

불과 3년 전, 우리나라 인구의 0.00001% 정도 되는 500여 명의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 우리 사회는 큰 두려움을 마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현상이었으니 이해도 됩니다. 다만 3년이 지난 지금, 그 두려움이 과했던 나머지 거대한 폭력과 인생의 굴곡을 피해 찾아온 그분들께 더 큰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지금 비행기를 타고 오고 있는 400여 명의 아프간 난민들. 그동안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집에 있어도 집이 아니었을 겁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그분들께 집다운 집을 내어줄 수준이 된다고 믿습니다.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며 나를 재충전 할 수 있는 곳, 마음대로 노래하고 춤추며 나답게 살 수 있는 곳, 주변은 훤히 꿰고 있어 익숙하고 편안한 곳, 움츠러들지 않고 자유롭게 활보하며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곳…. 우리가 꿈꾸는 이런 집을 아프간 난민들도 같이 꿈꿔도 될까요? 이번에는 한번 두 팔 벌려 환영하고, 기꺼이 온정을 베풀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충남사회혁신센터 김규희 기획운영본부장
충남사회혁신센터 김규희 기획운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