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해본 생활실험 : 21일간의 채식 도전기
혼자해본 생활실험 : 21일간의 채식 도전기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1.07.3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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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은 밤, 해양 쓰레기의 주범은 어업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엄청난 양의 그물이 바다에 버려지고, 수많은 바다생물이 고통받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상품성이 없는 물고기들은 그물에 걸려 올라와도 죽은 채 바다에 다시 버려진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플라스틱 빨대만 쓰지 말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먹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람의 육식과 이로 인한 동물의 고통, 그리고 식량난 및 이산화탄소 배출 등의 문제와 더불어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정신을 조금 가다듬고 다시 생각해 보니, 완전 채식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일 것이라는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일단 시작으로 채식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보기, 그리고 고기와 사람, 사람들과 만나 고기를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어떤 어려움을 만날지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점심, 곤드레 비빔밥집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친절하게 멸치 반찬을 가득 내어주시며 같이 비벼 먹으면 더 맛있다고 하십니다. 함께 식사한 동료에게 물어보니, 기왕 반찬으로 나왔으니 먹어도 되겠지만, 결심한 첫날이니 참아보라고 권합니다. 멸치는 포기하고, 같이 나온 된장찌개를 먹었습니다. 또 웬걸, 뚝배기 밑에서 북어가 한 조각 나옵니다. 채식이 보통 일이 아님을 실감했습니다. 퇴근 후 집에 왔더니, 아내가 맛있는 주꾸미볶음을 해 놨습니다. 사정을 말하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온통 고기와 생선입니다.

다음날 점심에는 김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저는 채식을 선언했으니 좋아하던 참치김밥 대신 야채김밥을 먹었습니다. 또 한번 웬걸, 야채김밥에도 햄이 있는 걸 깜박했네요. 고기가 이토록 제 밥상에 깊이 침투했음을 실감했습니다. 업무에 복귀하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는데, 삼각김밥에도 도시락에도 고기가 아예 없는 메뉴는 찾기 힘들었습니다. 즐겨 먹던 우렁쌈밥도 고민이었습니다. 우렁이는 먹어도 될까 안될까.

한번은 업무차 손님이 오셨습니다. 점심 식사를 함께하기로 했는데, 며칠 전 함께 삼겹살을 먹어놓고는 이제 와서 채식 중이라고 이야기하기가 민망합니다. 은근슬쩍 청국장을 권해봤지만 소머리국밥을 먹게 됐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 본인의 결단이라는 것에도 참 여러 단계가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집에서 먹는 저녁 식사는 채식을 실천하기 어렵지 않은데, 여럿이 함께 먹는 식사에서는 채식을 고집하기가 영 민망합니다.

결국 21일간의 채식 일기에는 이런저런 변명만 가득 담기게 됐습니다. 채식 일기라기보다는, 나는 오늘 어떤 상황에서 고기를 먹었는가에 관한 이야기만 가득합니다. 채식을 실천하시는 분들에 대한 존경만 더해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채식 도전이 완전한 실패는 아니라는 위안을 얻습니다. 고기가 약간 들어가기는 하지만, 삼겹살 대신 두부전골을, 치킨 대신 파전을 먹는 날이 전보다는 많아졌습니다. 요즘도 저는 꾸준히 고기를 먹습니다만, 전보다는 많이 줄인 것 같습니다. 한 달에 닭 5마리를 먹다가 1마리를 먹었다면, 4마리에게는 다행인 일 맞죠?

온 국민이 고기를 줄이면 관련 농가는 어쩌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대안이 있습니다. 그나마 살만한 환경에서 살다가 죽은 고기를 먹을 것. 고기는 아니지만, 우리 삶에 아주 가까이 온 ‘동물복지 유정란’의 예를 들면, 매달 서른개를 5천원에 먹다가, 이제는 열 다섯개를 5천원에 먹으면 되는겁니다. 많은 사람이 이런 소비에 참여한다면 농가 소득이 줄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동물의 생명을 보다 존중하면서, 사람에게 이로운 식품을 생산한다는 자부심과 보람을 얻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이 예시는 틀렸다고 하더라도, 찾아보면 상생의 길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사회혁신도 한걸음부터겠지요. 저도 이제 막 첫걸음 뗐습니다.

김규희 충남사회혁신센터 기획운영본부장
김규희 충남사회혁신센터 기획운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