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찾는 즐거움 아닌 ‘잃는 즐거움’을 발견하다
‘길’, 찾는 즐거움 아닌 ‘잃는 즐거움’을 발견하다
  • 노준희 기자
  • 승인 2021.07.06 10: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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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충남문인협회 회장, 여행산문집 「길 잃는 즐거움」 펴내

천안 출신의 시인이자 수필가인 이정우(64) 충남문인협회 회장이 여행산문집 ‘길 잃는 즐거움’을 펴냈다. 이미 그는 수필집 ‘그리움, 그 마른 상상력’과 시집 ‘빗소리 따라 그곳에 다녀오다’를 출간하며 작가적 역량을 입증했으며 37년 작가 생활을 돌아다보는 이번 산문집을 통해 자신의 문학 감성을 회고하고 정리했다. 

길 잃는 즐거움은 국내는 물론 국외 곳곳을 다닌 약 50편의 흔적을 기록한 여행산문집인데 이정우 회장은 ‘여행 에세이’가 아닌 ‘워킹(walking) 에세이’로 불리길 원했다. 길을 걸으며 떠오른 생각들, 길을 잃어도 좋을 만큼 길 위에서 차오른 생각들을 정리한 글이기에 그런 바람을 가진 게 아닌가 싶다. 

이정우 충남문인협회 회장

“생각의 알몸으로 걷고 있을 때가 많았다” 

이번 저서에서 이정우 회장은 감성적인 언어와 더 깊은 사랑을 나눴고 그 감성은 한없이 길 위에 스미며 날개를 펼쳤다. 더욱이 그 감성의 끝에는 그만의 문학적 사유의 결을 되새긴 깨달음이 드러나곤 했다. 

"길이란 말이 참 좋다. 어딘지 모를 낯선 길도, 아주 익숙한 길도 그저 그곳을 걸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나 오늘 살고 있구나’ 하는 숨소리를 듣게 되는 것 같아서 가끔, 생각의 알몸으로 걷고 있을 때가 많다."

산문집 에필로그에 밝힌 글이다. 얼마나 길에 대한 감성이 충만해지면 생각의 알몸으로 걸을까. 그는 길을 그저 걷지 않았다. 눈으로 걸었고 가슴으로 걸었고 발길로 걸었다. 그러면서 우리 삶에 추억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여행에서 건져 올렸다. 그가 서술한 여러 형태의 정감은 그리움의 본질을 고민한 흔적이다. 여행지 사진조차 그리움을 더 아련하게 떠올리게 하는 흑백사진으로 그의 글 곁에 나란히 들어있다. 

또한 그는 여행 장소가 무조건 드러나게 모든 제목을 뽑지 않았다. 글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어딘지 알게 되는 글이 있다. 목적지를 모르고 떠난 여행처럼 모험하듯 찾아 나가는 이야기 속에서 내가 선 곳이 어딘지 알게 되니 배시시 웃게 되는, 이 또한 잃은 길을 찾은 듯한 묘한 즐거움이 아닐까. 

이정우 작가가 펴낸 '길 잃는 즐거움'

호기심 가득했던 지난날의 경험은 엄청난 자산 

여행은 타인들과 같이 가지만 그는 늘 같이 간 사람보다 3~4배 더 걸은 듯하다고 말했다. 일행이 쉴 때도 그는 주변을 다녔고 새벽에 일어나 호텔 주변을 걸으며 새로운 발견에 즐거워했다. 가기 전엔 눈으로 여행하고 다녀온 후엔 사진과 글을 정리했으며 반드시 미술관과 문학관을 여행 코스에 집어넣어 그의 여행 단상을 풍요롭게 채웠다. 

“유명한 사람의 그림은 하나의 서사예요.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들어있어요. 재밌단 말이죠. 글 쓰는 사람이 영감을 얻기에 그림만큼 좋은 게 없다는 생각이에요. 번뜩이는 영감은 한순간에 떠오르는 것이지요.” 

한때 디제이로 신촌서 2년 정도 활동했던 그는 스탠다드 뮤직을 선호했고 밥 딜런과 레오나드 코헨 등의 팝아티스트들을 흠모했다. 음악에 미쳐서 대학 갈 생각을 안 해서 삼수를 했다. 호기심에 대마초도 피워봤다고 했다. 

“지나고 나니 그런 게 다 소중한 자산이더라고요. 모든 경험은 인생에 도움이 돼요. 나는 아주 척박한 시대를 거쳐온 세대이지만 현재는 풍요로운 시대잖아요. 우리 세대는 미국의 원조를 받던 시대와 디지털 시대를 병행해서 살고 있어요. 행복한 거예요. 젊은 날 열정과 끌림으로 살았는데 시대를 교차한 내 인생에 감동으로 남을 수 있는 계기가 뭘까 생각해 보게 된 거지요.”

그도 한때는 호기심 충족을 우선한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던 것. 그런 그가 여행이란 매개를 통해 세월과 기억을 담고 문학적 사유의 결을 정리한 글을 내게 된 것이다. 

이정우 작가가 생각의 알몸으로 걸으며 가슴에 남은 여행 감성을 회고하고 정리한 '길 잃는 즐거움'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살아가는 모든 일은 길을 만드는 일 

또한 그가 이 산문집을 내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잡문을 많이 쓰다 보니 순수문학이 안 돼서 고민했어요. 작가로 산 세월에 비해 산문집을 늦게 낸 편이지요. 58세 다 돼서 수필집을 냈고 시집은 62세에 냈으니까요.” 

동일한 문학 패턴의 작품을 내는 거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시와 수필, 산문을 골고루 내는 데에 힘을 쏟았다. 앞으로 그는 “기회가 된다면 시 해설집을 내고 싶다”며 “평론까지 안 가더라도 독서산문집이면 어떨까” 하며 진중하게 말했다. 

실상 산문집의 바탕이 된 글은 평소 낯선 곳에 가길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기도 했다. 가기 전의 설렘과 현장의 이끌림, 다녀온 후 감동이 그에겐 퍽 벅찬 일이어서 오래 켜켜이 쌓아둔 글을 이번 기회에 다 끄집어내서 마음으로 정리한 글이라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좋아하는 여행을 못 가니 이참에 잘 정리해보잔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하나의 텍스트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이전 수필집과 시집을 응축한 완결편으로 이번 산문집을 표현했다. 그가 지난날 경험한 기억은 추억처럼 소중한 문학 감성으로 자랐고 깊은 사유의 폭을 열어주었다. 적절하게 비워둔 행간은 독자들의 생각이 행간에 배이게 하고 싶은 이정우 회장의 배려였고 독자들은 그 행간에서 쉼을 얻듯 사유의 확장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문협 회장으로서 문학운동 저변을 확대한다고 뛰어다니곤 했는데 그 속에서 문학세계도 보여주는 것이 마땅한 도리가 아닐까 싶었다”며 “길 잃는 즐거움은 사실 반어법이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한마디에 진심을 담았다. 

“길 잃는 건 난처함이나 불안이 아니에요. 길 잃는 것을 권면합니다. 길을 걸으며 즐기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중엔 다 즐거움으로 돌아올 테니까요.”

 

천안 출생인 이정우 작가는 1994년 ‘시와 시론’을 통해 문단에 데뷔했다. 그동안 천안문인협회, 천안수필문학회, 백매문학회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시집과 수필집, 칼럼집 등을 펴냈다. 2019년부터 충남문인협회 회장을 맡아 문학운동 일선에서 창작과 공유, 공감과 확산이라는 문학 저변을 넓히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 컨설턴트, 인문학 강사, 방송 출연 등을 하고 있으며 여행플래너로서 느린 삶을 추구하고 있다.

노준희 기자 dooaiu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