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병만 고치나요? 사회를 치유하는 일도 의사가 할 일이죠”
“의사가 병만 고치나요? 사회를 치유하는 일도 의사가 할 일이죠”
  • 지유석 기자
  • 승인 2021.04.22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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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페이스북 통해 현실 정치 질타 나선 아산 현대병원 박현서 원장
아산 현대병원 박현서 원장
아산 현대병원 박현서 원장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전공의가 의료거부로 맞서면서 한바탕 논란이 일었던 지난해 8월, 아산 현대병원 박현서 원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박 원장은 '나는 지금 화가 단단히 나 있다'는 제목의 게시글에서 사뭇 강한 어조로 전공의 진료거부 사태를 질타했다. 당시 박 원장의 글은 지역 언론은 물론 MBC 등 주요 언론까지 나서 대서특필하는 등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난 지금, 박 원장은 다시금 페이스북에 분노를 표출하고 나섰다. 박 원장은 지난 4일(일)자 '내 엄중히 묻나니, 의사 안철수와 검사 윤석열은 답하라'란 제목의 글을 올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박 원장은 재차 지난해 전공의 파업사태를 상기시키면서 안 대표를 향해 "진료거부 사태에서 안철수 씨는 무엇을 했는가? 왜 환자 목숨을 담보로 한, 정치 의사들에게 이용된 추악한 진료거부 사태에서 의사 안철수는 아무 말도 안 했는가?"라고 물었다. 

이어 윤 전 검찰총장을 겨냥해선 "검사 집단의 기득권을 해체해 민주적 검찰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부임하는 법무장관들마다 누가 고소하지 않아도 알아서 탈탈 털더니 국민 목숨 줄을 거머쥐고 하는 불법 집단진료거부는 당신네 검사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비해서는 껌값이었나? 검사 윤석열의 대답이 듣고 싶다"고 질타했다. 

박 원장의 게시글이 올라온 시점은 '대선 전초전'으로 불렸던 4.7재보궐선거가 임박한 시점이었다. 시기를 고려해 보면 정치적(?)으로 비칠 여지가 없지 않았다. 

기자는 보다 깊은 이야기를 듣고자 인터뷰를 요청했고 박 원장은 요청에 응했다. 인터뷰는 21일(수) 오전 박 원장이 재직하는 현대병원에서 이뤄졌다. 무엇보다 박 원장은 자신의 게시글이 정치적 목적이라기보다 국민건강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박 원장과 나눈 일문일답. 

-. 최근 정치적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큰 게시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일정 수준 정치적 의도가 있는 건 아닌가?

"지난해 전공의 의료거부 사태 때 허위정보가 너무 많았다. 현직 원장인 대학 동기조차 잘못된 정보에 현혹될 정도였다.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정치적 목적이라기보다, 의사로서 국민건강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고 정부로 하여금 의료정책을 올바르게 펼치도록 해 국민건강에 도움을 주려 했다는 말이다."

-. 허위정보가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지난해 전공의 의료거부 사태의 발단은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밝히면서다. 그런데 의대 정원 확대는 서울·수도권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자는 게 아니었다. 지방의대와 공공의대 정원 확대였는데, 이게 뒤섞여 이슈화된 것이다. 

공공의대 정원 확대부터 설명해보자. 전공의 파업 시점에서 전국 의대 정원은 3058명이었다. 그때 경영진 비리로 전북 남원 서남대가 폐교 조치 되는 바람에 이 학교 의대생 49명이 오갈 데가 없어졌고 따라서 의대생 정원도 3009명으로 줄었다. 

먼저 공공의대 정원 확대는 서남대 의대생 49명을 수용할 의대를 만든다는 취지였다. 그리고 지방의대 정원 확대는 기존 의대 정원의 10%를 별도 전형으로 선발하고, 졸업한 뒤 10년 동안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의사로 활동하게 한다는 게 뼈대였다. 

충남의 경우 순천향대·단국대·건양대(논산)에 의대가 있는데 총 정원은 200명이다. 원안대로라면 충남지역 의대 정원이 20명 느는 수준이었다. 전국적 수준에선 300~400명 증원이 예상됐다. 

그러나 당시 의대 정원을 늘리면 현 정부 여당 유력 정치인 자녀가 입학할 것이라는 식의 허위정보가 유튜브 등을 통해 퍼졌다. 만약 그런 식이었다면 내가 먼저 나서서 반대했을 것이다."

※ 당시 박 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아산 같은 지방 소도시에 의무적으로 10년간 근무해줄 지역 의사를 고작 한해에 300명, 즉 현재 의대 정원의 겨우 10%만 매년 더 뽑겠다는데, 그것도 딱 10년간만 한시적으로. 그래서 헌법에도 보장된 지역주민을 포함, 모든 국민의 빠짐없는 건강 행복추구권을 조금이나마 달성한다는데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고 응급실까지 닫게 하고, 아픈 중환자까지 버려둔 채 파업에 나서야 할 절실한 이유인가?"

-. 혹시 페이스북 글에 항의하는 이들이 없지 않았나?

"최근 올린 게시글은 조회 수가 낮아서인지 항의가 별로 없다. 하지만 전공의 파업 당시엔 항의가 빗발쳤다. 특히 의대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항의가 많았다. 이들은 '왜 의대 정원 확대를 부추겨 자녀 장래를 망치려 하냐?'고 비난했다.

그래서 '몸값이 올라가 의사 자녀 수입이 많아지는 게 성공인가? 아니면 꼭 필요한 현장을 떠나지 않고 아픈 사람 곁을 지키는 게 의사로서 성공이냐?'고 되물었더니 슬그머니 항의를 거뒀다. 하지만 게시글에 악성 댓글이나 말도 안 되는 허위정보가 계속 달렸다. 일일이 대응하기 어려워 무시했다. 또 '동료끼리 그럴 수 있냐'는 몇몇 원장의 반응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잘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다만 후배 의료인이 서운해할까 봐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 전공의 파업사태 이후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최근엔 '금고 이상 실형 시 의사면허 취소'를 뼈대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의사협회가 반발하고 나섰다. 곧 이임하는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개정 의료법이 의결되면 코로나19 진료와 백신 접종과 관련된 협력 체계가 모두 무너질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의료계의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이 법안의 국회 처리는 지지부진하다. 이와 함께 국민 불신도 깊어진 모양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의사 스스로 주어진 의무를 성찰하고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어야 했다. 의료법 개정안도 수술실 내 CCTV 설치 시 환자 동의를 받고 외부 유출을 방지하는 등 세부 내용을 손보면 되지 무작정 반대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의료인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계기였다. 

가장 문제 되는 건 비의료인의 대리수술일 것이다. 원인은 결국 의료인력 부족이다. 수술은 의사가 처음부터 맡아 해야 하는데 대학병원의 경우 일부 과정을 전공의에게 맡긴다. 때론 간호사가 대체하기도 하는데, 이런 식이면 간호사에게 소정의 자격시험을 거쳐 수술하게 해주자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건 의사 업무를 축소시키는 어리석은 일이다. 결국 의대 정원 확대는 지금의 문제와 다 연결돼있는 셈이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전공의가 의료거부로 맞서면서 한바탕 논란이 일었던 지난해 8월, 아산 현대병원 박현서 원장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사뭇 강한 어조로 전공의 진료거부 사태를 질타했다. 당시 박 원장의 글은 지역 언론은 물론 MBC 등 주요 언론까지 나서 대서특필하는 등 큰 파장을 일으켰다.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전공의가 의료거부로 맞서면서 한바탕 논란이 일었던 지난해 8월, 아산 현대병원 박현서 원장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사뭇 강한 어조로 전공의 진료거부 사태를 질타했다. 당시 박 원장의 글은 지역 언론은 물론 MBC 등 주요 언론까지 나서 대서특필하는 등 큰 파장을 일으켰다.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의료계 현안, 결국 ‘의대 정원’으로 귀결 

※ 박 원장의 고향은 서울이다. 그러나 1983년 순천향대 의대에 진학해 의학을 공부하면서 아산에 정을 느껴 정착했다.

-. 의료 서비스 면에서 서울 등 수도권과 아산 사이에 차이가 심한가? 

아무래도 중증치료에선 서울이 훨씬 낫다고 본다. 인구와 병원이 많고, 사례가 많아 노하우가 잘 축적돼 있다. 

무엇보다 의료전달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아산은 지역 중소병원에서 충분히 치료받을 환자가 가까운 천안이나 서울로 간다. 

심장초음파 검사를 예로 들어보자. 이 검사는 수술 전 환자가 마취를 견딜 수 있는지 보기 위해 실시한다. 일반 대학병원의 경우 간호사가 검사를 진행한다. 

그러나 이렇게 할 게 하니라 지역 중소병원에 환자를 보냈으면 한다. 그러면 비용도 대학병원의 1/5 수준에 불과하고, 검사도 심장내과 전문의가 담당해서 해준다. 지역 내 병원에 환자를 보내주는 대학병원도 몇몇 있다. 이렇게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돼 있다면 서울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는다. 의료체계에 과부하가 걸리면 중증환자가 제때 치료받을 시기를 놓친다. 

또 아산의 경우 일반외과·내과·산부인과·응급의학과 등 필수인력도 부족하다. 지역에서 일하던 의사가 일정 수준 재력을 갖추면 서울로 떠나기도 한다. 이런 이유에서 지금도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 지난해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던 입장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 끝으로 페이스북에 계속해서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글을 올릴 계획인가? 

그렇다. 의사에게 환자를 치료하는 일은 중요하고 많은 의사들이 열심히 이 일에 매달린다. 그러나 환자 고치는 일이 전부가 아니다. 사회를 고치는 일 역시 의사의 역할 중 하나다. '질병을 고치는 이는 소의(小醫)요, 사람을 고치는 이는 중의(中醫)요, 사회를 고치는 이는 대의(大醫)'란 옛말도 있지 않은가? 의사는 진료 말고도 사회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 

지유석 기자
iron_heel@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