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먼을 일깨운 격려 “우리는 고아가 아니야, 서로가 있었으니까”
하먼을 일깨운 격려 “우리는 고아가 아니야, 서로가 있었으니까”
  • 지유석 기자
  • 승인 2021.01.19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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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뜨거운 화제 몰고 다니는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

 

화제성을 몰고 다니는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 ⓒ 넷플릭스
화제성을 몰고 다니는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 ⓒ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은 화제성 면에서 최고를 달리는 작품이다. 넷플릭스는 공식 계정을 통해 드라마 런칭 후 4주 만에 6천 2백만 계정이 시청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퀸스 갬빗>은 92개국에서 10위권 안에 들었으며, 이 중 63개국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역대 넷플릭스 시리즈 사상 최고 시청자 수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타이틀 롤 베스 하먼을 연기한 배우 안야 테일러 조이의 매력이 돋보인다. 안야 테일러 조이는 독특한 외모로 에피소드마다 모델 룩을 소화하며 천재 소녀 베스 하먼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특히 6번째 에피소드에서 구소련 챔피언 보르고프에게 패한 뒤 술과 약물에 찌들어가는 하먼을 연기하는 대목은 압권이다. 괴짜 천재 연기 면에서 남성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견줄 만하다. 

이 드라마는 뛰어난 체스 실력을 지닌 베스 하먼이 남성 체스 챔피언을 차례로 꺾고 1인자로 등극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체스를 조금 알면 드라마는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하지만 꼭 체스를 몰라도 좋다. 어차피 이 드라마는 체스가 아니라 베스 하먼의 사랑과 우정이니까. 

내용을 좀 더 살펴보자. 베스 하먼은 '싱글맘' 앨리스 하먼의 손에 컸다. 하먼의 가족사는 많은 부분이 생략된 채 관객에게 전달된다. 부모의 결혼은 매끄럽지 않았고, 어머니 앨리스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동반자살을 시도했다고 추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숨지고 하먼은 살아남았다. 고아가 된 하먼은 '매슈언 홈'이란 개신교계 기숙학교에 보내졌고, 여기서 성장기를 보낸다. 

하먼은 기숙학교에서 절친 졸린(모지스 잉그램)을 만난다. 그리고 관리인 윌리엄 샤이블(빌 캠프)에게 체스를 배운다. 하먼은 남다른 총명함으로 체스 실력을 키워나간다. 하먼은 날마다 탐닉하다시피 하며 체스에 빠져든다. 여기에 주 정부가 아이들에게 지급하던 진정제는 하먼을 중독증으로 이끈다. 

어느덧 사춘기에 접어든 하먼은 양부모에게 입양돼 기숙학교를 떠난다. 기숙학교를 나간 뒤 하먼은 그간 쌓았던 기량을 마음껏 펼친다. 양모 엘마 휘틀리는 매니저를 자처하며 하먼을 뒷바라지한다. 

그러나 하먼의 도전은 순탄치 않았다.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하던 1960년대는 체스계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주 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여성은 하먼이 유일했으니까. 그러나 하먼은 이 같은 분위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실력을 펼친다. 하먼은 먼저 주 챔피언에 등극하고, 이어 전 미국 챔피언 자리까지 거머쥔다. 

이제 세계 챔피언 자리만 남았는데, 구소련 챔피언 바실리 보르고프(마르친 도로친스키)를 넘어야 한다. 하먼은 보르고프에게 두 번 도전했지만 모두 패한다. 패배 이후 하먼은 술과 약물에 찌들기 시작한다. 바로 이때, 고아원에서 만난 절친 졸린이 찾아온다. 졸린은 체스 스승 샤이블 씨의 부고를 전하며 장례식에 함께 가자고 권한다. 

하먼은 장례식에 갔다가 샤이블씨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샤이블씨는 하먼의 소식을 사소한 것이라도 챙기며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절친 졸린도 마찬가지였다. 졸린은 하먼에게 구소련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챔피언 대회 참가비를 선뜻 빌려준다. 그러면서 하먼을 격려한다. 

"우린 고아가 아니었어. 서로가 있었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아? 난 네 수호천사도 아니고, 널 구해주러 온 것도 아니야.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 너한테 내가 필요하니까 여기 있는 거야. 그게 가족이야. 언젠가 나도 네가 필요하겠지.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졸린의 격려에 힘입었을까? 하먼은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강자들을 차례로 꺾고 결승에 오른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에게 두 차례 패배를 안긴 보르고프 마저 격파한다.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 

이 드라마 <퀸스 갬빗>은 이렇게 서로가 외로운 존재가 아님을, 서로가 연결된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역설적이게도 하먼이 탐닉하다시피 한 체스는 고독한 경기다. 전략수립에서 경기 운영까지 홀로 해야 한다. 고아로 자란 하먼이 체스에 빠져든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먼은 혼자가 아니었다. 윌리엄 샤이블 씨와 절친 졸린은 하먼의 든든한 후견인이었다. 무엇보다 절친 졸리를 흑인으로 정한 건 신의 한 수 같다. 체스 기물이 흑과 백으로 나뉘듯 백인 하먼과 흑인 졸리는 때론 조력하고 때론 대립하면서 우정을 쌓아 나간다. 여기에 보르고프와의 마지막 결승 대국에서 한때 자신의 경쟁자였던 친구들이 전략을 짜주기도 했다. 

혼자가 아님을 느낀 하먼은 술과 약물에서 벗어나 진정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물론 호텔방에서 보드카를 들고 있는 장면이 묘한 여운을 주지만 말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난관을 이겨내고 자신을 찾아 나가는 이야기는 진한 감동을 준다. 이 드라마 <퀸스 갬빗>이 세계 각국에서 뜨거운 관심과 화제를 몰고 다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혹시 시즌2는 나오지 않을까? 제작자의 말을 들어보면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총괄 프로듀서 윌리엄 호버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다 내어놓았다. 만찬 같은 작품이었고, 매우 많은 사람들에게 깊숙히 만족스러운 것이었음이 틀림없다. 딱 알맞게 끝났다는 느낌이고, 그 자체로 완전한 것 같다"고 밝혔다. 제작자의 입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 드라마는 여기서 멈추는 게 딱 좋다고 본다. 


지유석 기자 iron_heel@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