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다시 하나 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부서집니다”
“노조가 다시 하나 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부서집니다”
  • 지유석 기자
  • 승인 2021.01.18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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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지회 도성대 지회장 

2020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유성기업 노사갈등이 마침내 출구를 찾았다. 이날 노사는 단체협약 복원과 지부 집단교섭, 중앙교섭안 수용과 ▲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임금 ▲ 제1 노조 조합원에 대한 위로금 지급 ▲ 경영진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사내 설치한 CCTV 철거 ▲ 현 제1 노조 지위 인정과 제2 노조와의 차별 철폐 등 세부 현안에 합의했다. 10년째 이어지던 갈등이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유성기업 노사갈등의 본질은 사측이 제2 노조를 조직해 기존 제1 노조인 유성기업 아산·영동 지회의 힘을 약화하려는 데 있었다. 

유시영 전 대표 등 당시 경영진은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으로부터 제1 노조 무력화 전략을 자문 받아 실행했고, 회사 자금을 자문료로 지급했다. 사법부는 이 같은 사실의 위법성을 인정해 유 전 대표에게 두 차례 징역형을 선고했다. 

오랜 갈등이 끝났지만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지회(아래 지회) 도성대 지회장은 기쁨보다는 '허허하다'는 심경이 앞선다고 토로했다. 지난 12일 도 지회장을 만나 속내를 들어 봤다. 

금속노조 아산지회 도성대 지회장
금속노조 아산지회 도성대 지회장

-. 10년 째 이어지던 갈등이 끝내 일단락됐다. 어떤 심경인가?

마음에 구멍이 크게 뚫린 느낌이다. 이제껏 이른 새벽에 근해 시위하고 하루 시작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 일을 멈추게 됐다. 이러니까 죄짓는 느낌이 든다. 

또 '이런 결과를 얻으려고 긴 시간 싸웠나' 하는 생각에 허허하다. 끝나서 시원한 마음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허한 마음이 남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최소한 조합원에게 갈등을 일단락 지어줘야 한다는 마음은 늘 품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노사합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 가장 의미 있는 합의사항이라면?

올해부터 중앙교섭과 지부 집단교섭에 참여하기로 한 점일 것이다. 유성기업 지회가 속한 금속노조는 업체별로 단체협약을 맺는다. 소속 사업장은 금속노조가 맺은 중앙교섭 결과를 준용 받는다. 따라서 우리 지회가 중앙교섭과 지부 집단교섭에 참여하기로 한 건 산별노조로 가기 위한 초석을 놓은 셈이다. 이건 굉장히 의미 있는 합의라고 본다. 

-. 노사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신속하게 이뤄졌다는 인상을 받는다.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았나?

적어도, 회사 경영진 중에 노조 무력화를 주도한 A 임원의 영향력이 약화하면서 노사합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었다고 본다. 

사실 갈등 해결은 (사측이) 마음먹기 나름이었다. 2018년 10월 즈음해서 협상 테이블이 마련됐다. 그간 협상에서 우리 지회는 전향적인 태도로 임했다. 반면 사측은 달랐다. 지역사회와 정부, 사법부의 압력 때문에 사측이 마지못해 협상 테이블에 나왔을 뿐, 해결 의지는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다 최근 A 임원이 의사결정에서 배제되면서 사측이 회사의 장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A 임원의 영향력이 줄어들수록 교섭이 진전됐다고 말할 수 있겠다. 

“노조의 힘, 다시 추스를 때”

유성기업 노사는 2011년 5월 이후 극한 대립으로 치달았다. 그러다 2020년 12월 31일 해결점을 찾았다. 현재 충남 아산에 있는 유성기업 제1 공장은 평온한 모습이다.
유성기업 노사는 2011년 5월 이후 극한 대립으로 치달았다. 그러다 2020년 12월 31일 해결점을 찾았다. 현재 충남 아산에 있는 유성기업 제1 공장은 평온한 모습이다.

-. 노사갈등의 발단은 주간연속 2교대제였다. 이에 관해 합의된 바가 있는가?

※ 일반적으로 자동차산업은 주야 2교대제를 실행해 왔다. 주야 2교대제는 보통 주간과 야간조가 8시간 정규시간에 2시간 잔업을 하는 근무형태다. '주간연속 2교대제’란 이러한 주야 2교대의 근무형태를 주간에만 오전조 8시간, 오후조 8시간씩 2교대 근무한다는 것을 뜻한다. (글쓴이) 

그렇다. 하지만 제2 노조의 존재 때문에 당장 실시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일단 실행위원회를 꾸리고 매월 1회 이상 모임을 갖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실행위는 단체협약이 있는 2023년까지 매월 20회 이상 만날 수 있다. 실행위 회의를 통해 기본 틀을 짠 다음 2023년에 주간 연속 2교대제를 요구할 방침이다.

아마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은 이전에 비해 수월할 것이다. 요사이는 원청인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많은 업체들이 이 제도를 시행 중이니 말이다. (이와 관련, 현대차는 하청인 유성기업이 먼저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하면 원청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노사갈등에 개입했다. 법원은 이 사실을 인정해 현대차 임원에게 비록 집행유예지만 실형을 선고했다 -  글쓴이)

-. 향후 계획이 있다면?

답은 정해져 있다. 지회를 하나로 만드는 작업이다. 지난 10년의 시간이 순탄치 않았지만, 조합원들은 사측으로부터 징계, 고소고발, 손해배상 가압류 등을 당해도 굴하지 않았다. 이런 근성 때문에 10년을 싸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011년 당시 조합원은 아산지회와 영동 지회가 각각 360여 명과 240여 명 수준이었다. 그러던 게 현재 아산지회 131명, 영동 지회 124명으로 줄었다. 10년 사이 절반 내지 3분의 1이 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5년이나 10년 이내에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견뎌낼 수 있을까? 물론 그간 있었던 노조 무력화 시도가 되풀이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앞으로의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점을 갖춰야 하는지 준비해야 한다. 아무 준비 없이 시간을 보내면 반드시 부서질 것이다. 

지유석 기자
iron_heel@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