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면서 묵직하게 존재감 드러낸 신인 작가 이명열의 '양철지붕을 끌고 다니는 비'
조용하면서 묵직하게 존재감 드러낸 신인 작가 이명열의 '양철지붕을 끌고 다니는 비'
  • 노준희 기자
  • 승인 2020.12.17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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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의 겨울은 작가들 출간 전성시대다 3

오래전 등단했었다. 그런데 그 후 이명열 시인은 20년간 직장인으로서 충실히 살며 조용히 시만 지었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시를 내놓지 않고 아직은 부족하다 느끼며 살았다. 그러다가 설암 투병 중인 친정어머니를 위해 어머니가 지은 시와 그림을 전시해드렸더니 어머니가 그렇게 기뻐할 줄 몰랐다. 
“어머니가 너무 행복해하셨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시집 낸다면 후회할 거 같더라고요. 이렇게 기뻐하실 거라면 내 시집을 내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모습을 한 번 더 보고 싶었어요. 시를 모아 출판사로 보냈더니 쟁쟁한 작가님들이 너무 좋다고 돌려보셨다고 하더군요.”
등단 후 너무나 오래 조용했었기에 새로운 등용문을 거치는 게 낫다는 주변 작가들의 조언에 따라 그는 다시 도전했고 우리나라 문인들의 대표 등용문인 ‘신춘문예’에 버금가는 문단<서정시학>에 당당히 등단했다.

이명열 시인
이명열 시인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다시 본 그의 시 

무려 20년을 웅크리고 있던 그가 놀랍게도 서정시학에서 등단했지만 그는 여전히 쑥스럽고 내세울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극찬은 넘칠 듯 쏟아졌다. 문학평론가 장석주 시인은 “허황한 데 없이 단정한 리듬 속에서 발견한 고요한 슬픔의 형질”이라며 “한 번 읽고 덮어 버릴 게 아니라 여러 번 거듭 읽고 싶은 시집”이라고 평론했다. 
권달웅 시인은 감탄했다. 권 시인은 “이명열 시인의 시를 읽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시는 지난날 내가 경험한 물상들을 달빛처럼 떠올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시의 품격과 향기를 지니고 선명한 이미지로 표현한 내면의식”이라는 평을 밝혔다. 
나태주 시인도 이 시인의 시를 주목했다. “이명열 시인은 요즘 시인들과 달리 시의 행간이 해맑고 시의 문장 또한 투명하다. 무엇보다 문장이든 문장 배면에 깃든 정서든 촘촘하다. 이만하면 내일의 우리 시단을 맡겨도 좋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이명열 시인의 서정시학 등단 작품이 들어있는 시집 양철지붕을 끌고 다니는 비
이명열 시인의 서정시학 등단 작품이 들어있는 시집 <양철지붕을 끌고 다니는 비>

갈라파고스섬에서 숨어서 읽고 숨어서 쓴 것처럼 

오랫동안 시를 써서 모아뒀으니 시집 내는 게 힘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오래 묵은 사람이 시집을 낸다니 주변에서 많이 도와줬다. “감사한 분들이 많아요. 특히 부모님이 서로 몰래 돈까지 찔러주며 저를 응원하셨어요.”
하지만 그도 오래전 아무에게도 안 알리고 폐기한 시집이 있다. “낼 때는 좋아서 냈지만 내고 나니 이건 아니다 싶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었지요.” 그는 지금의 서정시학에 등단한 게 가장 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시 쓰는 일을 다이어트와 같다고 말했다. 
“안 먹어도 힘들고 먹어도 힘든 것처럼 시도 안 써도 힘들고 써도 힘들어요. 내 안의 고름처럼 짜내지 않으면 곪듯이 시도 끊어내지 않으면 내가 미칠 것 같아서 살려고 썼어요. 시는 내게 종기 같은 거, 놔두면 곪으니까 쓰는 거였어요.”
무슨 말일까 했다. 그만큼 그의 내면에는 시어로 가득 차 있었다. 가득 찬 잔처럼 비우지 않으면 넘쳐버리기에 그는 시를 쓴 것이다. 그는 “갈라파고스섬에서 숨어서 읽고 숨어서 쓴 것처럼” 시를 썼고 그의 내면에 깃든 꽉 찬 시어로 온갖 삶의 흔적들을 편직 했다. 

어머니를 위한 전시에서 이명열 시인

20년의 우직한 성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어느 날 잠결에 지인으로부터 받은 전화 너머로 들은 시에 소름이 쫙 끼친 적이 있었어요. 일어나 그 시를 써봤더니 원본과 행간까지 제가 똑같이 썼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살갗에 소름 끼치는 시를 쓰고 싶었어요.” 이병률의 <견인>이라는 시였다. 
새벽 4시면 일어나 6시까지 매일 공부했다. 직장에 다녀야 했고 살림도 해야 했기에 늘 겉도는 시만 쓰고 싶지 않아 시의 중심에 깊게 가보고 싶은 욕심으로 열심히 살았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었지만 생각에 머물지 않고 계속 채워왔고 서정시학 등단 덕분에 자신의 시가 남루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 있었다. 
“혼자 오래도록 해왔기에 시류의 영향을 받지 않아서 전문가들이 인정해준 게 아닌가 생각해요. 이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를 쓰려고 하니 사물을 응시하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뭘 하나 봐도 깊이 있게 오래 바라보는 힘이요.” 
누가 뭐래도 인정받는 서정시학에 등단한 그에게 시를 잘 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조언을 부탁했다. 
그는 감히 조언할 입장은 아니라고 무척 조심스러워하며 “글은 어떤 트릭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읽고 쓰는 것만이 길이라고 생각하고 달리 방법이 없다. 나는 이 길이 아니면 길이 없다고 생각하며 읽고 썼다”고 말했다. 
우린 그동안 그 평범한 진리를 외면하고 세상이 내 글과 시를 못 알아준다고 생각하거나 이만하면 됐다고 자아도취 한 적은 없는지. 여전히 세상엔 열심히 시를 쓰고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고 많다. 자신이 부족한 게 무언지 생각해보고 이명열 시인에게서 흔들림 없는 우직한 성실과 노력을 한 수 배워야겠다. 

노준희 기자 dooaiu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