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토와 프란치스코, 너무도 인간적인…
베네딕토와 프란치스코, 너무도 인간적인…
  • 지유석 기자
  • 승인 2020.12.1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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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두 교황 우정 그린 넷플릭스 영화
두 교황_포스터전임 베네딕토 16세와 현 프란치스코 2세 교황의 우정을 그린 넷플릭스 영화 ‘두 교황’ ⓒ 넷플릭스 제공
두 교황_포스터전임 베네딕토 16세와 현 프란치스코 2세 교황의 우정을 그린 넷플릭스 영화 ‘두 교황’ ⓒ 넷플릭스 제공

로마 교황은 전 세계 6대륙에 걸쳐 12억3000만 명의 신도를 가진 가톨릭교회의 수장이다. 그리고 가톨릭교회는 2천 년 역사를 자랑한다. 역사와 조직 규모 면에서 단연 으뜸이라 할 만하다. (가톨릭과 세를 겨룰 조직은 이슬람이 거의 유일하다)

현재 이 거대 조직의 수장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 2세다. 그런데, 교황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전임 베네딕토 16세다. 프란치스코 2세 이전, 교황은 단 한 명이었다. 가톨릭의 전통은 베네딕토 16세에 와서 깨졌다. 베네딕토 16세는 사임이라는 사상 초유의 결단을 내렸고, 그 뒤를 프란치스코 2세 교황이 이은 것이다. 

‘넷플릭스’ 영화 <두 교황>은 교황직 사임이란 엄청난 결단을 내린 베네딕토 교황과 그의 뒤를 이은 현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사실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2세는 극과 극이다. 베네딕토가 유럽(독일) 출신 주류 엘리트라면 프란치스코는 가톨릭 변방인 아르헨티나에서 나고 자랐다. 게다가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무척 보수적이었던 반면 프란치스코는 개혁 성향이 강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베네딕토 16세에 앞서 교황을 지냈던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 내부적으로는 낙태·피임·동성애 등 현대 사회의 첨예한 이슈에서 보수 노선을 지켜왔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임기 중 신앙 교리성 장관을 지냈던 이가 바로 베네딕토 16세로 등극할 라칭어였다. 

라칭어는 교황 착좌 뒤, 전임 교황의 노선을 계승하는 데 앞장섰다. 영화 속 라칭어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후임을 결정할 ‘콘클라베’에서 프란치스코 2세로 불릴 아르헨티나 출신 호르헤 베르골리오를 처음 만난다. 

라칭어는 베르골리오를 홀대한다. 라칭어는 신앙 교리성 장관으로 재직하며 해방신학자들을 배척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해방신학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태동했으니, 라칭거가 베르골리오를 탐탁지 않게 여겼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영화는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라칭어와 베르골리오가 만나 교감하는 과정을 그린다. 라칭어(앤서니 홉킨스)는 독일 출신답게 완고하고, 피아노와 클래식 음악 등 고급문화에 정통하다. 베르골리오(조나단 프라이스) 역시 아르헨티나 출신답게 축구와 탱고를 즐기며, 군부 독재와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린 조국의 상황에 엄중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얼핏 극과 극으로 보였지만, ‘두 교황’은 이내 흉금을 털어놓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간다. 이렇게 두 사람이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은 실로 감동적이다. 

대배우 앤서니 홉킨스와 조나단 프라이스의 연기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특히 조나단 프라이스는 프란치스코 2세 교황과 비슷한 외모로 흡사 프란치스코 2세 교황이 직접 연기하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온다.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의 진행 과정은 또 하나의 볼거리다. 

두 교황_스틸컷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2세는 첫 만남부터 신경전을 벌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내 흉금을 털어놓고 신뢰를 쌓기에 이른다. ⓒ 넷플릭스 제공
두 교황_스틸컷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2세는 첫 만남부터 신경전을 벌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내 흉금을 털어놓고 신뢰를 쌓기에 이른다. ⓒ 넷플릭스 제공

슬픈 아르헨티나, 그리고 한국의 세월호 

더욱 감동적인 대목은 프란치스코 2세 교황이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는 장면이다. 그의 조국 아르헨티나는 한때 군부독재로 신음했었다. 베르골리오의 과거는 조국 아르헨티나의 아픈 역사와 겹친다. 

비델라 군사정권 시절, 예수회 소속 베르골리오는 교회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빈민 사목활동을 하는 신부들에게 사목 중단을 압박했다. 비델라 군사정권은 조금이라도 반정부 성향을 보이는 이들을 닥치는 대로 체포해 고문하고 살해했기 때문이다. 예수회 신부들의 빈민 사역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베르골리오가 사역 중단을 압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빈민 사역 요리오 신부와 펠릭스 신부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군사정권의 모진 탄압을 받았다. 이런 프란치스코 2세 교황의 과거 행적은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고 착좌를 전후한 시점에 다시금 논란이 불거졌다. 

민주정부가 들어서자 베르골리오는 변방인 코르도바로 쫓겨나다시피 했다. 그곳에서 베르골리오는 심한 내적 갈등에 휩싸인다. 그리고 마침내 가난한 이들 옆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한다. 

앞서 언급했듯 라틴 아메리카에선 해방신학이 태동했다. 예수회 소속이었던 프란치스코 2세 교황은 해방신학과는 다소 결을 달리한다. 하지만 그가 과거의 아픔을 딛고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기로 한 건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해방신학의 기본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 

프란치스코 2세 교황은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2014년 8월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2세 교황은 일정 내내 세월호 유가족의 아픈 마음을 살뜰히 어루만져주고 떠났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면서 "인간의 고통 앞엔 중립은 없다"는 귀한 가르침을 전해줬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엔 “교황께서 참 훌륭한 분이었구나”하는 인상 정도였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세월호 유가족을 ‘챙겼던’ 교황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아마 프란치스코 2세 교황은 부당한 고통을 당하는 세월호 유가족을 보면서 조국 아르헨티나가 겪은 고통과 그 속에서 자신이 겪은 불행을 떠올렸으리라. 그래서 더 이들을 연민했고 비슷한 아픔을 겪은 한국 국민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으리라.

영화 속에서 프란치스코 2세 교황은 군사정권 시절 자신의 과오로 탄압받았던 요리오와 할릭스 신부를 떠올리며 나지막이 고백한다. 교황의 독백은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신다. 

“친구여, 전 어디에 있었나요? 그리스도께선 어디에 계셨나요? 대통령궁에서 차라도 마시고 있었나요? 아니면 감옥에서 고문당하고 있었나요? 요리오, 할릭스 신부와 함께요?”

이 영화는 종교적 메시지에 그치지 않는다. 두 교황의 인간적 면모는 그분들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선한 이웃임을 일깨운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돈맛’에 거의 중독되다시피 한 한국 교회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가톨릭, 개신교 교회 모두에게.

지유석 기자
iron_heel@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