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알게 된 세상
걸으며 알게 된 세상
  • 시민리포터 고나영
  • 승인 2020.12.0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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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걷는다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모두 뒤바꿔 놓은 지도 벌써 1년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없고, 나 역시 하던 일을 쉬게 됐다.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활동하는 것을 즐겼던 나로서는 답답함을 넘어 화가 나는 상황이 계속됐다. 좋아하던 극장도, 도서관도, 카페도 갈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뭘 해야 이 숨 막히는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찾은 방법이 ‘혼자 걷기’이다. 

사실 나는 많이 걸어본 기억이 없다. 늘 아팠던 나는 학창 시절에도 운동장에서 체육수업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무리하면 안 된다는 경고에 늘 차를 타고 다녔고, 걷는 것마저 위험한 일로 인식했던 것 같다. 그렇게 굳어진 생활 습관은 건강이 나아진 지금까지 쭉 이어지다가 코로나 덕분에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 걸었던 길은 ‘신정호’였다. 첫째 아이가 너무 답답하다며 나를 끌고 간 곳. 제대로 된 운동화도 없던 나는 아이 운동화를 빌려 신고 억지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처음 알았다. 걷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 걷는 동안 행복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힘든 건 아니라는 것. 

그날 이후 홀린 듯 걸었다. 마스크를 쓰고 걷는 것이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걸었다. 걸으면서 하늘도 보고, 주위 나무들도 보고, 마주 오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는 일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온몸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이제는 안다. 

남편은 마라톤과 등산을 무척 좋아한다. 5살 때부터 아빠를 따라서 마라톤에 참가하고, 등산도 함께 한 아이들은 벌써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4학년이 됐다. 1년 전만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의 취미 생활을 이제는 함께 한다. 아직 등산은 무리지만 산 밑 아름다운 산책로를 걷고, 풀코스 마라톤은 못 뛰어도 걷기 대회는 함께 참여한다. 내 평생에 절대 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일들을 코로나 덕분에 하나하나 도전하게 됐다는 게 신기하고 감사하다. 

걷기 전과 걷기 후 참 많은 것이 달라졌다. 활동하기 좋은 옷과 신발이 외출의 기본이고, 걷기 좋은 길과 공원을 검색한다. 독서모임을 시작하면서 겪었던 변화와 비슷하다. 책을 읽으며 만나는 사람, 가는 장소가 달라졌듯 걷기를 시작한 후 좋아하는 공간, 마주치는 사람들이 달라진다. 여행을 가면 서점과 북카페, 도서관을 찾아다녔던 것처럼 이제는 걷기 좋은 길과 공원을 찾는다. 내가 몰랐던 세계가 열렸다.

“길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 길 위에서 만난 별 것 아닌 순간과 기억이 결국 우리를 만든다.” 

배우 하정우씨의 책 <걷는 사람>에서 읽었던 문장이다. 작년에 이 책을 읽을 땐 몰랐던 이 문장의 진짜 의미를 ‘걷는 사람’이 된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저 내 상황에 맞는, 내 건강이 허락하는 정도의 길에서 내 힘으로 한발 한발 걷는 동안 경험하고 느끼는 것들이 나를 만들어 갈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난 오늘도 걷는다. 천천히. 그리고 행복하게. 마스크 벗어 던지고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그 날을 기대하며.

시민리포터 고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