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 부끄럽고 숨겨야 할 대상 아니다!
성(性), 부끄럽고 숨겨야 할 대상 아니다!
  • 박희영 기자
  • 승인 2020.10.29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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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얼렁뚱땅 성교육 아닌 올바른 성교육

 ‘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토론이 필요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라는 물음으로 시작된 유년기의 호기심은 사춘기 청소년이 되면서 성에 대한 궁금증으로 커지기 마련이다. 인간의 성적 호기심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회에선 그 호기심의 시작인 섹스나 성(性)이라는 단어를 마치 금기어 인양 터부시하고, 대체할 만한 단어를 찾아 에둘러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성교육은 성적 호기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만한 여건이나 제도적 장치가 거의 없다는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상품화되거나 왜곡된 성 지식으로 인해 잘못된 이성관을 갖게 된다. 
전북 남원에 있는 여성주의 문화단체 문화기획 ‘달’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유진 활동가와 함께 우리나라 성교육의 현주소 들여다봤다. 

이유진 활동가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폭력예방통합교육 전문강사로 학교와 공공기관·단체에 출강하고 있으며, 마을남성 페미니즘 공부모임·성평등연구 교사모임·성교육책읽기 모임·청소년 성교육 동아리 등 다양한 방식의 성/페미니즘 교육 활동을 진행해왔다.
이유진 활동가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폭력예방통합교육 전문강사로 학교와 공공기관·단체에 출강하고 있으며, 마을남성 페미니즘 공부모임·성평등연구 교사모임·성교육책읽기 모임·청소년 성교육 동아리 등 다양한 방식의 성/페미니즘 교육 활동을 진행해왔다.

“바나나에 콘돔 끼우는 연습이 성폭행을 부추기는 건가요?” 

지난 7월 전남 지역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성교육 수업을 위해 학생들에게 바나나를 준비해 오도록 지시했다는 민원이 국민청원 게시판에 접수된 일이 있었다. 

교사는 1학년 기술 가정 수업시간에 임신과 출산에 관한 주제의 수업을 위해 학생들에게 실습 준비물로 바나나를 가져오게 했고, 콘돔은 학교 보건실에 비치된 것을 사용해 다음 수업시간에 ‘콘돔 끼우기 연습’을 하겠다고 학생들에게 알렸다. 그러나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쳐 실습은 취소됐다. 민원을 제기한 이유는 ‘바나나까지 사용해 자세하게 성교육하는 것이 오히려 성폭행을 부추길 수 있다’였다. 당시 논란이 커지자 전남도교육청은 교육과정의 적절성 여부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고, ‘바나나 콘돔 성교육’에 대해 ‘적절했다’라는 결론 내렸다. 

이유진 활동가는 “아이들에게 피임을 잘해야 한다고 교육하면서 어떻게 피임하는지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 건 모순이고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토로했다.

성교육 수업을 듣고 남긴 한 학생의 소감
성교육 수업을 듣고 남긴 한 학생의 소감

성교육 일찍·많이 하는 국가일수록 첫 성관계 시기 늦췄다 

바나나 콘돔에 이어 여성가족부에서 ‘나다움 어린이 책’으로 선정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저자 : 페르 홀름 크누센>’, 이 책으로 인해 한동안 대한민국이 뜨거웠었다. 일부 학부모 단체에선 ‘포르노 동화책’이라는 표현을 할 정도로 문제적 책이라고 낙인찍었다. 삽화가 구체적으로 묘사되어서인지 ‘시기상조’ ‘동성애 조장’ 조기 성애화 걱정‘ 등 논란이 일자 여가부는 일부 초등학교에 보급한 책을 회수했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이 활동가는 “아이들이 일찍 성에 대해 접하면 너무 이른 시기에 성에 관심을 가져서 문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는 양육자 대상 성교육을 할 때도 많이 들었던 내용이다. 하지만 유네스코에서 제시하는 ‘포괄적 성교육’을 비롯해 많은 성교육 전문가들이 4~5세부터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라면서 “관련 연구에서도 그 연령대에 이미 성 고정관념이 확립될 수 있으니 성별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과 태도를 일찍부터 길러야 한다고 권한다. 한국보다 성에 개방적인 것으로 알려진 서구권에서는 성교육을 일찍·많이 하는 국가일수록 첫 성관계 시기가 늦춰졌다는 보고도 있다”라고 전했다.

아이는 어떻게 태어날까? 저자 : 페르 홀름 크누센
아이는 어떻게 태어날까? 저자 : 페르 홀름 크누센

아이들 성교육 걱정된다면 어른부터 스스로 성교육 받아야! 

우리나라 부모·어른들은 왜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성을 알려주지 못하는 걸까. 이유진 활동가는 “어른들이 아이가 성을 아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자신도 성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양육자들도 제대로 성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세대고, 성인이 된 후에도 성을 공부하지 않았다. 아이들 성교육이 걱정된다면 그 아이를 책임지는 사람들부터 스스로 성교육을 받고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성인·양육자가 성에 대해 가진 왜곡된 인식과 태도를 그대로 대물림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동 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성교육에서도 금기와 통제만 반복하는데, 아동 청소년 또한 성적 권리가 있는 존재이며 좋은 교육을 받으며 성장할 권리도 있다. 성인·양육자는 이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성과 인권에 대한 올바른 관점 없이 좋은 성교육은 불가능하며, 이는 페미니즘 교육으로 모두 해결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페미니즘 교육이 일상과 학교 모두에서 이뤄져야 바람직한 성교육 가능 

이 활동가는 교육부에서 2015년에 만든 ‘성교육 표준안’이 성 고정관념과 성폭력에 대한 편견을 담고 있어 여성단체와 청소년 인권단체 등 성교육 관련 기관에서 전면적 개편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과 성폭력 예방 교육 시 피해자에게 조심하라는 식의 교육은 성폭력 상황에서의 대처법 중심으로 성폭력 근절에 실질적인 효과가 없을뿐더러 가해자 책임을 덜어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렇게 두 가지를 우리나라 성교육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그리고는 “생물학적 성별을 바탕으로 성 고정관념에 중심을 둔 성교육은 차별과 폭력을 용인할 위험성이 크다. 이 때문에 다양성과 그에 대한 권리를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 그것은 헌법에 보장된 인권이 문제이기도 하다. 차별과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젠더와 만났을 때 성차별과 성폭력 문제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라면서 “결국 페미니즘 교육이 어렸을 때부터 일상과 학교 모두에서 이뤄져야 ‘바람직한 성교육’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또 “많은 미디어에서 아동 청소년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면서 성교육을 할 때는 아동 청소년에게 성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성은 위험하다는 식으로 가르치는 게 지금 우리 사회의 현주소인 것 같다. ‘올바른 성교육’이 무엇인지 정의하려면 ‘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토론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일상 속에서 자유롭고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장이 많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희영 기자 park5008@ca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