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지원사 조원근氏의 하루
생활지원사 조원근氏의 하루
  • 박희영 기자
  • 승인 2020.08.2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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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사는 어르신 돌보며 보내는 값진 시간

혼자 사는 이관종(86 동면) 어르신은 일주일에 두 번 찾아오는 생활지원사 조원근(65)씨가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화요일과 목요일 일주일에 두 번씩 오전 9시 30분부터 1시간 30분에서 두 시간가량 집에 들러 밀린 집안일이며 국 찌개 등 반찬거리를 만들어 줘 혼자 사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 

8월 20일(목) 홀로 사는 어르신 집에 방문해 청소뿐 아니라 부엌살림까지 척척 해내는 생활지원사 조씨의 일과를 동행 취재했다. 2016년 공직생활에서 정년퇴직 후 어르신들의 말벗을 자처하고 나선 그의 하루 지금 시작한다. 

 

첫 만남은 어색했지만, 지금은 속마음 털어놓는 사이 

같은 날 오전 9시 동면행정복지센터에서 모인 생활지원사 4명은 체온 측정 후 하루 일정을 공유한다. 회의가 끝나자 조씨는 차를 몰고 동면에 거주하고 있는 이관종 어르신 댁으로 출발. 십여 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니 어르신이 반갑게 맞이하며 “날이 꽤 덥다”라면서 느린 움직임으로 손수 에어컨을 켠다. 

당뇨와 고혈압 등의 합병증을 앓고 있는 이 어르신과 그의 첫 만남은 올 1월부터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 2월~3월 한 달여 간을 제외하고는 매주 2회씩 꼬박꼬박 만나다 보니 정이 많이 들었는지 지금은 곧잘 속내를 털어놓기도 한다. 어르신은 “지난번에 끓여놓고 간 국은 너무 맛있어서 내가 아껴 먹었어(웃음). 내가 못 하는 일을 이렇게 와서 해주니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조씨가 담당한 홀몸노인은 14명, 활동가 1명이 최대 18명까지 보살필 수 있다. 근무시간은 하루 5시간, 업무 시작은 9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에 적게는 두 곳 많게는 네 곳 방문한다. 담당업무는 집안일과 요리 외에도 말동무가 되어 주거나 거동이 불편해 노인 혼자 처리하기 힘든 일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감자탕을 끓이고, 집 안 구석구석 청소하는 생활지원사 조원근씨

감자탕 끓이면서 집 청소까지, 일사천리 

도착 후 조씨는 “오늘 메뉴는 감자탕”이라며 큰 냄비에 감자탕 뼈를 넣고 냉장고에서 꺼낸 쌀뜨물을 부은 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끓이기 시작한다. 쌀뜨물은 지난번 방문했을 때 국물 요리에 쓰려고 미리 담아둔 것. 

감자탕이 끓을 동안엔 쉬지 않고 화장실에 들어가 걸레를 빨아 집 안 구석구석을 닦더니 한데 모인 쓰레기를 쓰레받기에 담아 버린 후 걸레 빨기까지 능숙하게 마무리한다. 그리고 김치 냉장고 안에 있는 묵은지를 꺼내 갖은양념을 털어내어 헹군 다음엔 물기를 꼭 짠다. 요리하는 손끝이 남다른데, 알고 보니 퇴직 후 약 1년 동안 천안시 여성회관에서 진행하는 가정요리 프로그램에 참여한 덕분에 요리 실력까지 겸비한 살림남으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마늘 한 통을 다듬은 뒤 듬성듬성 썰어 미리 준비해둔 헹군 김치와 함께 고춧가루로 버무려 감자탕 뼈 위에 얹어 푹 끓여내니 냄새가 근사하다. 간은 약간의 소금과 간장을 좋아하는 어르신 입맛에 맞게 간장으로 맞춘다. 조리가 끝나자 설거지와 싱크대 청소를 마치고는 가스레인지 세척 후 마지막으로 주방 구석구석에 여름철 식중독 예방을 위한 살균 소독제 살포로 오늘의 부엌일 마무리.

감자탕에 고춧가루와 마늘로 버무린 묵은지를 넣고 푹 끓이니 맛있는 냄새가 진동한다. 

돈벌이보다 봉사한다는 마음으로…어르신들 건네는 한마디에 피로가 싹! 

일을 마친 후 어르신은 조씨에게 “이렇게 찾아와 국도 끓여주고, 청소도 해주고 너무 고맙다”라는 인사를 다시 전하며 “다음번에 올 땐 행정복지센터에 들러 재발급받은 교통카드를 찾아다 달라”고 부탁했다.

이어 그는 어르신에게 “네, 어르신 교통카드는 제가 찾아다 드릴게요. 혹시 감자탕 간이 안 맞으면 간장으로 간 더해서 드시면 돼요. 다음에 올 때까지 건강히 계셔요”라는 인사를 남기고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일하는 내내 싫은 내색 없이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그에게 “타고난 성격이 꽤 긍정적인 것 같다”라고 말하자 조씨는 지난해 뇌경색이 발병해 지금도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밝혔다. 그리고는 “몸이 안 좋으니까 종교에 의지하게 되더라. 각원사 불교 대학에 입학해 교리를 공부하다 보니 ‘어둠을 탓하기 전에 한 자루의 촛불을 켜라.’라는 구절이 가슴에 와 닿았다. 절망이 왔다고 좌절하지 말고, 촛불을 켜야 삶이 밝아진다. 이왕 사는 거 짜증 내지 말고 웃으면서 사는 게 좋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일은 용돈 벌이나 보수만 바라고 하기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보람도 더욱 커진다”라면서 “어르신들이 처음엔 거리를 두다가도 시간이 좀 지나면 벽을 없애고 스스럼없이 속마음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부담 없이 건네는 말 한마디, 농담 한마디에 피로가 싹 가신다”라고 덧붙였다.

 

일과를 끝낸 뒤 한 번 더 안부를 물으며 다음을 기약하는 조원근씨와 이관종 어르신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이용은? 

홀몸노인이 거주하는 가구를 찾아가 개인별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생활지원사’는 올해 처음 시행됐다. 생활지원사로 활동하기 위해선 요양보호사나 사회복지사 자격증 구비가 필수, 중증 노인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이 악화하면 신속하게 대처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 

노인맞춤돌봄서비스에선 방문과 전화로 안전 여부를 확인하고, 사회관계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 진행,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한 생활교육, 외출 동행 식사 청소 등의 일상생활 지원과 더불어 기타 생활에 필요한 연계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용 대상은 만 65세 이상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 또는 기초연금수급자로서 유사 중복사업 자격에 해당하지 않으면 이용할 수 있다. 서비스 이용신청은 주거지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 문의하면 된다.

박희영 기자 park5008@ca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