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에게 필요한 건 처벌이 아닌 선생님의 관심 그리고 진심
학생에게 필요한 건 처벌이 아닌 선생님의 관심 그리고 진심
  • 박희영 기자
  • 승인 2020.08.06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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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업성고, 징계 학생 대상으로 ‘성찰’ 프로그램 진행

처벌 중심 징계는 아이들 변화시키지 못해

교칙을 위반한 학생을 상대로 ‘처벌’ 중심의 징계가 아닌 ‘성찰’을 테마로 한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그 효과가 괄목할만하다는 내용의 메일을 한 통 받았다. 

대부분 학교에서 교칙 위반 또는 학교폭력 가해자라 일컬어지는 학생들에게 사회봉사나 교내봉사 따위의 처벌을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성찰 프로그램이란 무엇인지, 또 그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7월 27일(월) 오후 업성고 학생부 2실에서 만난 김민재(가명 18)군과 이현우(가명 18)군은 기꺼이 속내를 털어놨다. 프로그램 참여 후 스스로 변화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는 학생들의 이야기, 지금 시작한다. 

 

선도프로그램에 관해 설명하는 (좌)김태경 교사, (우)조효준 학생부장

교사가 진심 보여주니 학생들도 마음의 문 열어 

민재군과 현우군은 교내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됐다. 두 학생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선도위원회 절차에 따라 ‘교내봉사나 하고 말겠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김 교사는 성찰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에 관해 설명하며 학생과 학부모에게 참여 의사를 물었다. 아이들은 “부모님 권유로 참여하게 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잘한 선택이었다”라며 선생님을 향한 무한 신뢰를 드러냈다.

두 학생을 만나기 전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속마음을 얘기해줄까?’ 내심 걱정이었는데, 민재와 현우군은 우려와 달리 자신들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들려주었다. 무엇보다 먼저 진심을 보여주며 다가온 선생님 덕분에 자신들도 마음을 열게 되었다고 했다. 어떻게 아이들의 마음을 구워삶은 것일까. 
김경태 교사는 “그동안 행해지던 처벌 중심의 징계는 아이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라고 지적하면서 “‘문제 학생’들을 경계하고 배제하는 방식의 징계가 되려 평범한 학생을 ‘문제 학생’으로 만들어내고, 더 큰 부적응을 낳는다는 생각에 도전해 본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프로그램 진행에 앞서 아이들에게 ‘너희들의 해방이 나의 해방’이라고 말하며 ‘학생과 교사는 상하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입장’이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단칼에 문을 열더라”라면서 큰 웃음을 보였다.

 

징계도 처벌 아닌 교육, 학생의 삶 지지하고 신뢰  

천안업성고에서 시작한 성찰 프로그램의 시작은 거의 모든 학교에서 시행하는 징계방식들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에 대한 의문에서부터였다.
이번에 진행한 선도프로그램은 ‘성찰의 인문학’ ‘사제부모 동반 산행’ ‘야영’ 등으로 구성했는데, 성장통을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 격려와 지지 그리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을 부여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학교는 그동안 교내흡연을 차단하기 위해 ‘등교 정지’라는 강력한 조치를 해왔지만, 그 숫자는 전혀 줄어들지 못했다. 이제 징계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보기로 했다. 징계가 처벌이 아닌 ‘교육’의 방식으로 전환해 보기로 한 것이다. 기존의 ‘문제 행위’를 근절하는 방식이 아닌 ‘학생의 삶’에 대해 지지하고 신뢰 포용하기로 했다. 

삶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도해 줄 ‘성찰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골간으로 끈끈한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 사제동행 산행을 시도했고,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학부모도 함께했다. 

산행에 참여한 학부모는 “아이와 스킨십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더욱 가까워진 것 같다. 자녀를 돌아볼 새로운 계기가 됐다”라며 “학생들에게 성장의 기회를 부여해 줘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성찰의 계기를 주고자 마련한 프로그램이지만, 학부모에게는 자녀와의 관계를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고 교사와 학교에 대한 신뢰를 형성할 수 있었다. 

조효준 학생부장은 “학교의 책무를 다하고 공동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앞으로도 지속해서 이 프로그램을 다듬어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사제부모 동반 산행’에 참여한 교사, 학생, 학부모

“금연 장담 못 하지만, 선생님께 미안해서라도 조심할 거예요!” 

민재군은 “한때는 선생님들 진짜 싫어했는데, 지금은 선생님들이 좋아졌다”라고 했다. 잘못은 인정하지만, 그런 이유로 자신을 ‘문제아’ 취급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업성고등학교로 전학 오기 전 다니던 학교에서 민재군은 여러 가지 일이 쌓여 정학 처분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학교에선 정학 중에도 학교에 가야 했고, 등교 후 온종일 빈 교실을 지키다 집으로 돌아왔다. 이러다 보니 반성은커녕 반감만 더욱 커졌다. 잘못한 행동에 대한 질책만 있을 뿐 마음을 헤아려 주는 이 하나 없는 학교생활에 염증을 느껴 결국 학교를 그만뒀다.

성찰 프로그램 참여 전까지만 해도 이전 학교에 다니던 때와 비슷한 마음이었다. ‘대충 놀다 가야지.’하고 생각했는데 “선생이 먼저 어떤 자세로 임하겠다면서 속마음을 얘기해주시는데 언 마음이 녹듯 스르르 빗장이 풀렸다”라고 전했다.

현우군과 민재군은 “담배를 완전히 끊는다고 장담은 못 하겠다. 하지만 학교에선 절대 안 피울 거다”라는 다짐을 전하며 “성찰을 주제로 한 징계 프로그램이 없어지지 않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학당하면 시간 때우고 마는 거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적어도 학교에선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징계받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흡연으로 또 적발되면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앞으론 더욱 조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희영 기자 park5008@ca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