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봉산 홍양호와 천안 아산 실학 역사 01
일봉산 홍양호와 천안 아산 실학 역사 01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0.04.07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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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언: 천안 아산 지역사의 새로운 과제
 
 
송길룡 천안역사문화연구회 연구실장

○ 촉발점: 일봉산 홍양호를 보는 문제의식

일봉산지키기시민대책위원회 전언에 따르면 올해 3월 말에 진행된 충남문화재심의위원회 심의과정에서 일봉산 개발업체 측이 신청한 홍양호 묘 보호구역 현상변경 요청이 부결되었다. 이 ‘부결’의 의미는 천안 일봉산에 소재하는 충남문화재자료 제13호 홍양호 묘의 법정 보호구역인 반경 300m 영역에서는 아파트 건축 등 어떠한 개발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아울러 2019년 하반기부터 있었던 두 차례 ‘부결’에 이은 세 번째 ‘부결’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이렇게 거듭되는 현상변경 불허 상황에서도 현재까지 개발 철회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이는 ‘될 때까지 신청한다’는 식으로 개발업체 측의 ‘제도적 불복종의 무한반복’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예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서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 문제를 단순히 문화재 행정상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좀 더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아파트 개발 또는 산업시설 설립 등을 위해 간혹 제기되곤 했던 토지소유자 중심의 문화재 보호구역 변경 문제가 이제는 방향을 달리하여 문화재 주변 지역주민들에 의해 전개되는 생활환경보존을 위한 시민운동의 중요한 구심축으로 작동하는 것은 결코 흔한 사례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 부분을 세심하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주민 생활환경과 문화재 영역 사이에는 규제를 중심으로 일정한 간극이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환되어 상징성을 띠고 제기되는 것이 현재 일봉산 홍양호 묘 보호구역 문제이다. 미리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문화재 보호구역의 존치가 생활환경보존의 교두보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주민 생활환경과 문화재 영역은 별개의 영역이 아닌 것이 되었다.
 
 
○ 전환의 징후들: 지역 민중사의 대두
 
아산 설화산 일대에서 얼마 전 전파를 탄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매장지 발굴 소식은 전국을 경악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전쟁과는 상관없는 여성과 어린이의 유해가 대거 발굴된 것이다. 이 발굴의 현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전쟁 민간인학살의 전국적 규모와 피해 현황에 대해 전면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 발굴은 한국 사회에 큰 질문을 던졌다. 국가폭력에 의한 고통과 피해를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하는 등의 질문들이 그것이다.

역사의 주체는 몇몇 지도자들이 아니라 바로 당대를 살아낸 민중이다. 이 표현은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교과서 같은 말이 되어있지만 그것은 말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국가주의 방식의 역사기념식의 한계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사안들 중 하나다. 역사 주체로서의 민중이 겪어낸 삶과 죽음이 강물처럼 흘러 엮어낸 역사의 복원이 절실하다.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발굴조사는 그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이 생겨나는 요즈음 가장 눈여겨볼 역사 관련 사업은 특히 천안아산 지역의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이다. 수년 전부터 아산지역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선도적으로 활성화되면서 역사의식을 새롭게 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현재는 충남지역 동학농민혁명 연합단체가 결성되어 활동하는 단계에 이르러 있다. 뒤늦게 출발했지만 인상 깊은 활동으로 나타나고 있는 천안지역 동학농민혁명 관련 사업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들 모두 각 지자체의 조례 제정으로 공식화된 새로운 역사기념사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재조명은 지역 근대사 정립을 위해서 매우 핵심적인 현안이다. 근대의 관점에서 동학농민혁명이 평민혁명, 민중혁명의 성격을 지니며 근대의 출발점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3.1혁명의 인식 역시 새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2019년 100주년을 맞아 천안아산 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3.1혁명 관련 사업들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민중사적 접근이 형성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지역 근대사의 접근들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를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시대전환의 징후를 읽어볼 수 있다고 본다. 즉,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민주화운동 시기를 겪은 당시의 이삼십대 청년들이 한 세대 이상의 세월에 해당하는 30~40년을 지나 현재 장년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데에서 생각의 단초를 마련해볼 수 있다.

지역사는 이전에는 ‘향토사’라는 이름으로 연구되고 전수되었다. 국가행정에 지방행정이 종속된 과거의 ‘향토사’는 국가의 역사에 대한 지방적 부속물로서 취급되었다. 그 ‘향토사’는 지방에 토대를 가지고 삶을 영유하는 지역유지 중심의 장년층이 담당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의 시기는 지방자치 시대였고 바로 이 지방자치 시대를 경험하면서 성장한 민주화운동 세대가 장년층에 진입한 것이 현재라는 것이다. 향토사에서 지역사로의 전환은 시대적인 소산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 삶을 위한 지역사 그리고 실학 역사자원
 
지역 역사가 지역주민의 생활환경과 밀접히 연관되어있다는 인식, 지역사의 주체가 민주화운동 시기를 겪어낸 장년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인식은 지역사에 대한 새로운 조명으로 필연적으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현재 천안아산 지역에서 이뤄지고 있는 지역사의 재조명은 근대사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19세기 말엽 동학농민혁명에서 20세기 초엽 3.1혁명을 근간으로 하는 지역 근대사가 새로이 정립되고 있다. 이에 따라 근대사의 중요 부분을 이루고 있는 일제강점기 시기에 대해서는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취지에서 친일파 연구도 곁들여지고 있으며 민주화운동 계승의 차원에서 4·19혁명에서부터 6월항쟁에 이르는 최근 역사 역시 다양한 형태의 기념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천안아산 지역은 근대지역사 정립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다는 성찰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과제는 천안아산 지역이 보이는 근대사의 특성을 도출하기 위해 그 이전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으로부터 추구될 것이다. 바로 이 근대사 이전 시기 즉, 근대선행기는 실학의 시대로 특징된다는 것이 주목되는데, 특히 천안아산 지역은 다른 지역과는 판이하게 다른 실학 역사자원의 풍부성을 보이는 점이 중요하다.

실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아산 현감 토정 이지함과 대동법 시행자 김육, 북학파의 선구자 홍대용, 경세 실학자의 거두 홍양호, <동사강목>의 안정복, 역사지리학의 대가 신경준 등등을 호명할 수 있으며 실학의 집대성자 정약용의 유적이 아산지역에 있다. 천안아산 지역의 근대사 정립을 위해서도 그렇고 천안아산 지역의 역사적 정체성을 추구하는 데에서도 그렇고 천안아산 지역의 실학 역사자원은 지역적 특색을 드러내는 아주 중요한 문화자산이다. 지역 근대사 정립의 과제 속에서 실학 역사를 복원한다는 것은 천안아산 지역에서는 특히 시대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