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범죄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잘못이다!
성폭력 범죄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잘못이다!
  • 박희영 기자
  • 승인 2020.04.01 2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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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피해자들을 향한 2차 가해를 멈춰주세요”
2차 가해 막고, 사건 재발 막으려면 사회구조 개선과 더불어 인식 개선 중요
 
얼마 전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구속됐다. 조씨는 불특정 다수 여성을 상대로 성 착취 영상물을 제작 유포했으며, 피해자는 아동 청소년을 포함해 무려 70명에 이른다. 텔레그램에 존재하는 몇십 개의 성 착취물 공유방 이용자 수는 26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조씨 뿐 아니라 n번방 이용자 모두 공범”이라며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아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촉구’하는 국민청원에 동참하고 있다.

반면 일부에선 성폭력 피해자들을 향해 2차 가해를 일삼고 있다. 한 유튜버는 피해자들에 대해서 “매우 잘 됐다. 이해가 안 된다”라며 “자기 스스로 피해자가 될 상황을 자초한 일”이라고 말해 누리꾼들로부터 뭇매를 맞기도 했다.

‘2차 가해’란 사건 발생 후 사법기관, 가족, 친구, 언론 등에서 보이는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으로 인해 피해자가 입는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 불이익이나 심리적 고통을 겪는 것을 말한다.
 
: n번방 가입자 전원 신상공개를 촉구하는 국민청원 <청와대 화면 캡처>

성폭행 피해자를 향한, 아무렇지도 않은 2차 가해 

텔레그램 성 착취 공동대책위원회 연대단체 천안여성의전화 김희겸 사무국장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이 사건의 본질은 성 착취 영상을 공유하는 곳이 있고, 미성년자들이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본질을 벗어난 자극적인 얘기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 또한 2차 가해”라고 설명했다.

성폭행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8년 안희정 전 도지사 성폭행 사건 때에도 “여자가 왜 가만히 있었냐” “충분히 거부할 수 있었는데 거부하지 않은 건 여자 잘못도 있다”라는 식의 말을 전하는 이들이 있었다.
김 사무국장은 도시자 사건을 떠올리며 그 당시 사람들이 피해자가 피해자 같지 않다며 피해자다움을 요구했다고 기억해냈다. “이번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적극적인 동의는 아니더라도 피해자 잘못이라는 인식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 이런 이유로 2차 가해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확대 재생되고 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을 원하는 국민청원 <청와대 화면 캡처>

선정적 내용보다 사건 본질과 피해자가 느낄 공포감에 관심 두길 

천안여성의전화 부설 성폭력상담소 권은경 소장은 범죄 가해자에게는 책임성을 요구하는 질문을 던지지만, 여성 성폭력 사건 피해자에게는 여성의 책임을 전제로 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설명하며, 안 전 도지사 사건 당시엔 피해 여성에게 “그런 일이 4번이나 있었는데 왜 피해를 키웠냐”라는 질문이 쏟아졌다고도 말했다.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고 부가적인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조씨의 학교생활과 봉사 활동, 손석희 사장이나 김웅씨 관련 보도는 사건의 본질인 성 착취 영상물 공유 또는 미성년자 성 착취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내용이다.

언론에선 n번방 사건과 관련한 피해 내용이 가학적이라며 피해자들이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보고 김희겸 사무국장은 “가학적 행위가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들이 생겨나고, 성 착취 영상물은 지금도 재생산되고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전하며 “사건 관련 이야기들이 언론에서 나오는 내내 당사자는 극심한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 주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텔레그램 성 착취물 공유방 캡처 화면 <사진 출처 : 국민일보>

“일회성 공분으로 끝내지 말고 꾸준한 관심과 연대의 힘을 보여주세요”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성인이 된 후 가해자를 살해한 일이 있었다. 1991년 재판에서 피해 여성은 “나는 짐승을 죽인 것이지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9살에 이웃집 아저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는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당시 악몽을 잊지 못한 것이다.

권 소장은 “피해 여성들의 일상 복귀가 힘든 건 사건에 대한 공포심과 2차 가해 그리고 피해자가 잘못해 성폭행을 당했다고 여기는 시선 때문”이라며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안정을 찾길 바란다면 본질을 벗어난 가십거리보다 그들이 겪은 피해에 대한 공포에 관심 가져야 한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리고는 “성범죄 피해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건 국가를 믿고 얘기했는데 피해자 잘못으로 돌아오는 경우다. 피해 여성들이 원하는 건 합의나 용서 따위가 아니라 가해자들이 그에 합당한 형량을 선고받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면, 과도한 관심보다는 피해자가 힘들었다고 얘기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관심해야 하는 건 아니다.

성범죄 사건에 대한 공분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가해자 처벌에 대해 지속해 관심을 갖고, 범죄에 대한 처벌이 부당하다면 다시 힘을 모으는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 것. 즉, 성폭력 피해자를 지지하되 피해 상황에 대해선 잊어야 한다는 얘기다.
 
 
n번방 사건 재발 막으려면 호기심 멈추고 국가 차원 강력 대처 필요 
 
권은경 성폭력상담소장은 “우리 사회에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선 호기심을 멈추고 기다리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어떤 영상이 올라왔는지, 피해자가 어떤 가혹 행위를 당했는지에 대한 관심보다 공유방에서 이뤄진 행위 자체가 범죄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조씨가 경찰에 구속되었음에도 텔레그램 60여 개 방엔 여전히 성 착취 영상물 공유방이 존재한다. 그곳에선 그의 구속을 안타까워하는 적극 또는 소극적 가담자 그리고 방관자들이 국화꽃 헌화 메시지를 올리며, 불법 영상물 유포로 구속된다 해도 3년만 살고 나오면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희겸 천안여성의전화 사무국장은 “저런 행위가 범죄임에도 중형을 선고하지 않는 건 국가가 피해자를 보호하는 책무를 등한시한 것”이라며 “국가에서 사회적으로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률 마련이 시급하다”라고 전했다.

김 국장과 권 소장은 “개인이 소지한 성 착취 영상도 언제든 유포될 수 있지만, 이것에 대해선 아무렇지 않게 인식하고 있다. 그러니 가해자 처벌이 낮을 수밖에 없다. 인식 개선과 더불어 성폭행 범죄에 대한 법안이 하루빨리 개정되어야 할 것”이라며 “이런 문제는 개인이 조심하고 개인이 어떻게 해야 한다기보다는 국가 차원에서 구조적이고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래야 성범죄 피해자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입 모아 말했다.

미국의 경우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제작의 경우 초범이라도 15년에서 30년을, 재범일 경우엔 25년에서 30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그동안 성범죄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려 국민으로부터 빈축을 산 바 있는 재판부에서 이번엔 얼마나 강력한 처벌을 내릴지 기대가 된다.
 
 
도움말 : 천안여성의전화 김희겸 사무국장, 부설 성폭력상담소 권은경 소장
 
※ 성폭행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천안 여성의 전화(부설 성폭력상담소) 전화(041-561-0306)에서 상담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입니다.
 
박희영 기자 park5008@canews.kr
 
사진 1 : n번방 가입자 전원 신상공개를 촉구하는 국민청원 <청와대 화면 캡처>
사진 2 :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을 원하는 국민청원 <청와대 화면 캡처>
사진 3 : 텔레그램 성 착취물 공유방 캡처 화면 <사진 출처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