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평가에 발목 잡힌 한국 교육…누구에게나 공정한 평가가 있을까?
4. 평가에 발목 잡힌 한국 교육…누구에게나 공정한 평가가 있을까?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0.03.24 21: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우근 천안제일고 교사

“물수능, 불수능, 난이도 조절 실패, 변별력…”

해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끝나면 언론에 오르는 말들이다. 말 나온 김에 평가 용어들을 정리해 본다. 평가는 목적이나 성격에 따라 여러 갈래가 있다. 성격이 다른 평가 용어를 섞어 쓰니 혼동이 잦다.

학교에서 주로 쓰는 평가용어로는 수업 과정에 따른 진단, 형성, 총괄평가가 있고, 수행과 정기지필평가도 있다. 이 둘을 결합하면 형성평가가 수행평가이고 총괄평가가 정기지필평가 격이다. 성격에 따라 객관식, 주관식 평가로 나누기도 하고 선택(선다)형과 서답(서술)형으로 나누기도 한다. 시기에 따라 수시와 정기로 나누기도 하고 서술평가도 단답, 단문, 장문, 객관 서술형과 주관 논술형으로 나누기도 한다.

흔히 오지선다형 시험을 객관식, 서술형 시험을 주관식이라 하는데 학교에서 주관식 시험은 논술이나 감상문 이외엔 거의 없다. 불수능, 물수능이라 난이도가 높네, 낮네 하는데 이도 틀렸다. 난이도는 말 그대로 ‘어렵고 쉬운 정도’이다. 난도가 높아 어렵다거나 이도가 높아 쉽다고 해야 맞다.

숫자로 서열 매긴 학생 성적을 진학 자료로 쓰면서 한국사회는 성적에 민감하다. 학교 성적 평가를 관리하기 위해 교육부 장관은 성적관리지침을 내리고 이에 따라 학교는 성적관리규정을 만든다. 핵심은 공정성이다.

이를 강조하다 보니 평가라는 개 꼬리가 ‘학습행’이라는 몸통을 흔든다. 학교와 교사는 교수 학습의 하위 개념인 평가에 묶인다. 배우고 익혀 행하고 돌아봄의 전당인 학교에서 실행할 진정한 평가는 학생 서로를 비교하기보다는 어제보다 달라진 오늘의 개인 성취도이고, 이는 수치화나 줄 세우기가 곤란하다. 이 지점에서 갖가지 모순이 격돌한다.
 
“선생님, 이거 시험에 나와요?”
“…….”

수업시간 가끔 듣는 말이다. 평소 학교 성적을 진학 자료로 쓰다 보니 학생들에게는 시험이 전부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면 굳이 알 필요 없다. 시험으로 평가할 수 없는 소중한 삶과 배움 과정이 얼마나 많던가?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는 목적이 둘 있다. 하나는 졸업증명이고 하나는 성적증명이다. 졸업증명은 수업일수를 채우면 된다. 그래서 졸업장이 목표인 학생들은 등교는 하되 내내 잠을 자거나 소란 떨기, 멍 때리기로 시간을 때운다.

성적증명을 위해선 시험을 잘 봐야 한다. 시험 아닌 일에 신경 쓰거나 몰두함은 미련한 짓이다. 점수에 민감하여 모둠 단위 활동이나 평가 때 불만이 많고 급우들을 잠재 경쟁자로 여겨 까칠하다. 학교 수업에서 평가란 학습 상황을 점검해 미진함을 메우는(피드백) 과정인데 현실은 총괄평가로 진학에 활용하다 보니 학습보다 시험이 주가 돼 버렸다.

누구에게나 공정한 시험이 실제 있을까? 선택형 시험인 수능시험이 이해, 탐구, 종합, 적응력, 심지어 창의력까지도 측정한다지만 선택형 시험이 가진 한계로 암기력이 대세다. 이 시대 암기력이 그리 대단한 능력인가? 어설픈 기억보다 손가락 두드리면 곧 튀어나오는 확실한 정보들이 널렸다. 불확실한 기억 아닌, 정확한 정보 빨리 찾아 활용함이 이 시대 능력이다.

대학생들 시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선택형 시험과 암기력 고득점에는 반복 훈련과 문제풀이가 최고다. 싫어하는 반복 훈련을 억지로 시키려니 운동선수에게 하듯 코치가 필요하다. 그들이 과외, 학원 강사들이다. 개인, 소집단 과외나 학원 수강에는 돈이 든다. 검증된 강사일수록 고액이니 부유할수록 유리하다. 부모의 사회경제 배경 차이가 자녀의 학업성취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공정함을 얘기할 때 단순 산술 평등보다 사회경제를 고려한 실질 평등을 따져야 한다. 학교나 기관들의 시험이 공정하다는 허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학교는 사회경제 불공평에 기반한 학생 성적을 외부로 특히, 대학으로 보내지 말아야 한다.

대학 졸업증명을 무효로 해 서열 기득권을 없애고 대학마다 바라는 학생 상을 그리고, 적절한 기법을 개발해 스스로 뽑게 하면 된다. 나아가 학생이든 공무원이든 일정 수준 이상 희망자 집단 가운데서 정한 인원을 추첨함이 가장 합리성 있고 사교육과 학원가 광풍을 잠재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