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껍데기는 가라!
2. 껍데기는 가라!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0.03.11 17: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우근 천안제일고 교사

정(鄭)나라에 차치리(且置履)라는 사람이 있었다. 자기의 발을 본뜨고 그것을(탁 度) 그 자리에 두었다. 시장에 갈 때 탁(度)을 가지고 가는 것을 잊었다. (시장의 신발가게에 와서) 신발을 손에 들고는 탁을 가지고 오는 것을 깜박 잊었구나 하고 탁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다시 시장에 왔을 때는 장은 이미 파하고 신발은 살 수가 없었다. (그 사정을 듣고) 사람들이 말했다. “어째서 발로 신어보지 않았소?" (차치리의 답변은) "탁은 믿을 수 있지만 내 발은 믿을 수 없지요."

- 원전 『한비자』 인용 신영복의 『고전강독』 -

 

중국 전국시대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자기 발보다 그 발을 본뜬 탁을 더 믿는 비현실성, 관념성을 꼬집는다. 옛날 어느 먼 나라 이야기인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 자체보다도 이 사람이 가진 학교 졸업장, 학위, 성적증명서, 자격증, 이른바 그의 ‘탁’을 더 믿고 있지는 않은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학교 제도의 하나로 졸업증명제도와 학사 석사 박사 학위 수여 과정을 만들었다. 교육기관 외에는 지식과 능력을 평가할 전문성이 부족했던 당시의 제도이다. 세상은 바뀌었다. 현재는 지식과 정보가 차고 넘치며 인재를 보는 관점이나 각 부문 수요도 달라졌다.

교사나 교수보다 어떤 한 분야에 정통한 지식과 특별한 능력을 갖춘 학생, 청소년, 인재들이 많다. 제도권 학교의 평가가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날로 심각하다. 이러기까지 사람들이 만들어 온, 능력을 판별하기 위한 각종 시험, 평가문항, 기법, 도구들이 넘친다.

학교라는 경직된 국가 체제가 평가한 결과가 사회 각 부문이 새롭게 요구하는 평가와 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다. 졸업증명 제도는 근대 산업 성장기에 기업이나 사회 전체 효율성을 위해 대단히 필요했다. 이 졸업증명제가 여전히 유효한가? 효율보다는 비효율이 더 크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졸업증명이나 입사지원 최저 학력을 맞추기 위해 학교를 ‘다녀야’ 한다.

중고등학교 교실이 엎디어 잠자는 곳이고 많은 대학생들이 거의 다 여러 학원에 다닌다. 노량진 대치동 학원가가 붐비고 아파트 주변 건물마다 학원 간판으로 도배함을 보면 한국처럼 학원 왕국인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2016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를 보면 18조원으로 교육예산 54조원의 1/3이다. 또래보다 점수 몇 점 더 얻으려 들이는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해결방안 없을까? 있다!
 
헌법 제11조 1항을 보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여기 종교 뒤에 학력(學歷) 딱 한 낱말만 더 넣으면 된다. 학교든 기업이든 원하는 평가 도구를 활용해 선발하면 된다. 평가도구는 각 학교의 평가문항, 수능시험, 공무원시험 문제, 각 기관 회사의 사례 등, 다양한 면접 기법과 평가 문항이 앞에서 말했듯 차고 넘친다.

또 한 가지 탁 중시 사례를 보자. 한국교육의 전제랄까, 기본 방향이 틀렸다. 지식량이 많을수록 도덕성이 높고, 정의롭고, 능력이 많을 테고 그래서 교육의 이념이자 목적인 ‘홍익인간이 되고 민주시민이 되고 자주적 생활능력을 길러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것’(교육기본법 교육목적 조항)이라며 현 학교 체제는 이 가정 아래 학생들의 지식량 늘리기와 평가에 주력한다.

대입 수학능력시험이나 공무원시험의 주요 방향도 지식량 측정이다. 이도 고도의 고급 지식, 서로 연관된 통일성 있고 현실에 당장 적용할 전문 지식이라기보다는 선택형 문항이 갖는 한계인 광범위한 단편 지식, 이미 시대 적합성 지나간 지식 위주이다. 공정과 객관이라는 통제에 갇혀 오지선다 시험에 발 묶였다.

평가가 어렵다는 이유로 정작 중요한 인간 됨됨이, 개성, 창의성, 도덕성, 정의감, 소통, 협력성, 발전가능성을 내팽개치는 학교교육을 어떻게 바꿔낼까? 방법 있다. 상급학교나 기업으로 학교 성적을 내보내지 않으면 된다. 이래야 학교가 본연의 인간 ‘학습행’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