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에게 어떤 넛지가 필요한가
수포자에게 어떤 넛지가 필요한가
  • 천안아산신문
  • 승인 2020.02.1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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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중 전 민족사관고 수학과장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 있다. 몇 년 전 만해도 대치동 일부 초6학년 학생들이 미적분을 마쳤다는 이야기가 나오더니 급기야 초4학년 학생들이 몇몇 학원에서 미적분을 공부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것은 결코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고 목동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후배가 귀띔해준 팩트다.

나는 의문을 갖는다. 과연 그 아이들이 미적분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심화학습까지 되어 있는 걸까? 학부모들의 과도한 속진의 폐단은 여기서 논하지 않아도 짐작하고 남음이 있으리라.

수학은 계통적이고 체계적인 학문이라서 앞엣것을 모르면 뒤엣것도 모른다. 약수, 배수 개념을 모르는 학생이 인수분해를 이해할 수 없다. 인수분해를 모르면 방정식을 풀지 못한다.

내 아이가 수포자라면 선수학습이 완전하지 않아 진도를 나가며 수학에 점점 흥미를 잃었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까 빨리 가는 것보다 완전히 알고 가야 한다.

수포자가 되면 수학 성적이 바닥이 된다. 학생들의 관심사 1위는 외모, 이성 문제 등이 아니다. 성적이다. 수포자의 자존감이 높을 리가 없다. 자존감이 낮으면 학교 가기 싫어진다. 풍선효과로 수포자의 잉여 에너지는 다른 곳에서 부풀어 오른다. 그것이 꼭 반사회적 비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해도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현명한 부모나 교사는 수포자에게 넛지를 가해야 한다. 여기서 ‘넛지(nudge)’는 친구의 옆구리를 살짝 건드리며 상황판단을 도울 때 동작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사회적으로는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탈러의 저서 이름으로 널리 각광을 받게 된 용어이다.

“이거저거를 해라”라고 명령을 하여 자녀의 행동이 바람직하게 바뀌지 않는다. 사람은 충고로 움직이기보다 감동으로 움직이고 매력에 빠져들고 알게 모르게 쳐들어온 부드러운 개입에 움직인다. 그럼 수포자에게는 어떤 부드러운 개입이 필요할까.

수포자의 결손학습 부분을 찾아내고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수포자에게 쇠고랑처럼 채워져 사고를 경직시키는 실패의 추억을 삭제하도록 해야 한다. 실패라는 질병에는 작은 성공보다 특효약은 없다. 결손 부분을 공부하고 쉬운 문제부터 내주어 만점까지 이르는 성공의 맛을 보게 하고 수포자에게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이 성공보상도 후하게 준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외적 보상이나 동기부여는 약발이 오래가지 않는다. 내적 동기를 만들도록 도와야 한다. 내적 동기는 본질적인 근원을 가져야 한다.
수포자는 수학의 가치를 모른다. 학생이 진정으로 수학의 가치를 아는데 수학을 포기하기는 어렵다. 세계에서 가장 연봉을 많이 주는 회사라고 하면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을 들 수 있겠다. 이런 회사들은 뛰어난 수학적 재능과 실력을 갖춘 인재를 선호한다. 인사담당자들은 그런 인재를 늘 충분히 뽑지 못해서 불만이다.

수학의 가치는 현대의 모든 기술, 과학, 실용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수학이 가장 유용하다는데 있다. 이제 수포자가 어느 정도 수학을 좋아하게 되었다면 발견학습적인 공부를 하도록 돕는다. 과학은 실험으로 원리를 입증한다. 수학도 사고 실험으로 원리를 발견한다. 다양한 증명, 풀이 방법을 찾을 때 충분히 칭찬해야 한다. 풀이 과정을 꼼꼼히 노트에 쓰게 하고 풀이 과정에 어떤 개념과 아이디어를 썼는지 동료, 교사와 소통한다.

우리나라에 수포자가 늘면 미래가 어둡다. 필자는 수포자들이 수학영재로 바뀌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포자를 제대로 진단하고 무한한 잠재력을 인정해주고 그가 수학을 알아볼 수 있도록 부드러운 넛지를 계획하자.
 
길수학 041-578-6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