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8년, 이제야 농사가 뭔지 좀 알 것 같아요”
“귀농 8년, 이제야 농사가 뭔지 좀 알 것 같아요”
  • 박희영 기자
  • 승인 2020.01.30 0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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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가 좋아! 조경환 오혜림 농부 부부
북면 은지리 ‘3대가 농장 딸기 하우스’에서 만난 조경환(41) 오혜림(36) 부부는 익어가는 딸기들을 바라보며 뿌듯해한다. 이 둘은 귀농생활 8년 차에 접어든 요즘 시골에서 찾아보기 힘든 젊은 농부 부부다.
 
어쩌다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일까? 부인 오혜림씨는 농산물 판매를 계기로 농사에 대한 호기심이 커져 귀농생활을 자처했고, 남편 조경환씨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농부가 됐다고 한다. 농부 부부가 들려주는 귀농 라이프 함께 들어보자.
 
조경환 오혜림 부부

귀농 ‘의욕 충만’ 부인 VS 농사 ‘시큰둥’ 남편 

귀농 전 삼성디스플레이 탕정 사업장에서 근무했다는 경환씨는 “농사지을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었는데, 순전히 집사람 때문에 농사를 짓게 된 것”이라며 말로는 툴툴거리지만 싫지만은 않은 내색이다.

혜림씨는 2012년 시부모님이 직접 농사지은 대추방울토마토 도매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더란다. 농사짓는 데 들이는 공에 비해 터무니없는 가격에 속상해하던 중 농업기술센터에서 교육하는 정보화농업인 수업을 듣게 된다. 배운 대로 온라인 농산물 직거래를 실전에 적용해 방울토마토를 팔아보니 도매가로 넘기는 것보다 마진이 괜찮았다.

농산물 유통에 재미를 붙인 혜림씨는 힘든 줄도 몰랐다. 직거래 판매를 알게 돼 직거래 장터에 나가 대추방울토마토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농사를 지어보고 싶은 마음에 시아버지에게 트랙터 모는 방법까지 배울 정도로 의욕이 넘쳤다.

그러나 남편 경환씨는 달랐다. 어려서부터 농사일하는 부모님을 보고 자란 탓에 농사짓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부인이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1년이 넘도록 설득하는 바람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경환씨는 귀농을 받아들였고, 시어머니 권유로 2013년부터 이 부부는 무농약 딸기 농사를 시작하게 됐다.
 

시작은 오합지졸, 지금은 딸기 박사! 

준비 없이 시작한 농사. 첫해는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지인의 가르침을 따랐지만, 그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한 해 농사를 망치니 그다음 해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무작정 손 놓고 있을 수 없던 경환씨는 충남대 딸기 마이스터 대학에 들어가 딸기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우기에 이른다.

처음엔 모르겠고, 안 하던 공부를 하려니 힘들던 것들이 2년 차 되면서 “아, 이거구나” 하면서 알게 됐다.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며 얻은 농사기술을 실제에 접목해보니 다행히 노력은 배반하지 않았다.

그런데 인생은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농장에서 일하던 남편 경환씨가 질산이 든 페트병을 열다 얼굴과 등에 화상을 입어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혜림씨는 남편의 빈자리를 안타까워하며 “딸기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라고 마음먹는다. 이후 딸기 마이스터 대학에 진학해 마이스터 과정을 수료해 딸기 박사로 거듭난다. 이왕 시작한 공부 딸기에서 그치지 않고 마케팅, 유기농 작물 재배, 토양 분석 등 농업에 필요한 지식을 두루 섭렵한다.
 

 

우리 가족이 먹는다는 마음으로 정성껏 재배 

농사 초보자인 이들에게 시골 농부로의 정착은 험난했다. 경환씨의 화상, 기술 부족, 자금난, 흉작, 판로개척 외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둘은 포기하지 않고 뚝심 있게 심기일전했다. 덕분에 무농약 딸기 인증을 받았고, 학교급식 납품, 로컬푸드 직거래장터 참여, 새벽 배송, 블로그와 온라인 홍보를 통해 꾸준히 농가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경환씨네는 6학년 5학년 3학년 자녀가 셋이다. 아이들 먹거리는 하우스 재배 작물이나 집 앞 텃밭에서 나오는 농산물이 대부분이다. 딸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하우스에 들어가 손수 딸기를 따 먹기도 한다. 부부가 재배한 작물은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 급식재료로도 납품한다.

이 둘은 “아이들이 우리 농산물이 학교에 오는 걸 본 날엔 우리 농장 것이라고 친구들한테 자랑하는데, 어떻게 아무렇게나 농사를 지을 수 있겠냐. 아이들, 우리 가족들이 먹는다는 마음으로 정직하게 재배하고 있다”라며 말하는 내내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보였다.
 

시행착오 많이 겪어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 

8년 전 귀농 시작 당시엔 재배 작물이 10여 가지가 넘었으나 지금은 딸기, 양파, 토마토, 애호박으로 품목 수를 줄였다. 품목이 많으면 그만큼 손이 많이 가기도 하지만, 작물에 집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부부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서 지금의 우리가 있게 된 것이다. 농사는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하늘이 돕고, 날씨가 도와줘야 한다”라고 입 모아 말하며 “초반엔 고생이 많았지만, 하다 보니 좋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뭘 좀 알 것 같다. 그렇다고 우리가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는 심경을 밝혔다.

그리고는 “다행히 부모님 덕에 어렵지 않게 농사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이라고 귀농생활 결심했을 당시를 회상하며, 매스컴에서 귀촌 농가를 소개할 때 농업 본질을 떠나 매출만 강조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전했다.

그러면서 “귀농은 현실이다. 어느 농가에서 몇억 매출을 냈다. 이런 건 숫자에 불과하다. 그 몇억이라는 게 순이익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농자재나 인건비 이런 건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라고 설명하며, “농업에 대한 지식 없어 무작정 ‘저 사람이 얼마 벌었네’라는 생각으로 덤비면 결국엔 남는 건 ‘빚’뿐이다. 농사는 1년을 망치면 3년이 힘들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도전해봐야 할 것”이라는 진심 어린 조언을 덧붙였다.
 
취재 박희영 기자 park5008@canews.kr
사진 유영실 gallery209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