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은유의 대가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은유의 대가
  • 노준희 기자
  • 승인 2020.01.16 23:43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직 교사 그리고 시인으로 살기, 이정록 시인
 
도둑
 
내가 가출한 사이
도둑이 다녀갔단다
내 또래일 거라고 했다
내 메이커 점퍼와 칠 년 묵은 돼지저금통을 가져갔단다
근데 도둑이 변태인 거 같단다
책상에 개어놓은 팬티도 가져갔단다
가출했다가 보름 만에 돌아온 내 안부는 묻지도 않고
젊은 놈이 안 됐다고 혀를 찬다
언제 들어올지 몰라 문단속을 안 했더니
오라는 놈은 안 오고 밤손님이 들었다고 한숨 내쉰다
고개 숙이고 눈알은 굴렸지만, 나는 끝내 자백하지 않았다
도둑이 사실 나였음을
문을 잠그지 않은 마음 때문에 괴로웠음을
신발장에 올려놓은 지갑 때문에 흔들렸음을
달맞이꽃처럼 환한 거실을 엿보려고
밤길 달려왔던 적 많았음을
 
<까짓것> 2017 창비교육 - 이정록 -
 

슬픈 종착
 
규직이는 좋겠다.
서른 살쯤이면 너를 더 좋아할 거야.
네 이름을 입에 달고 살 거야.
약사 세무사가 꿈인 친구도
검사 변호사 감리사 사업가가 꿈인 애들도
다들 주문처럼 네 이름만 부를 거야.
규직아. 오, 정규직아.
 
<까짓것> 2017 창비교육 - 이정록 -
 
이정록 시인 & 한문교사

 

시 한 편에 담긴 적나라한 세상, 이정록의 시를 통해 미처 보지 못한 세상을 읽다

오래도록 그를 보아왔다.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언어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그를 만나 보잘것없는 나의 언어로 그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것을 결정하긴 쉽지 않았다. 그가 쓴 시를 접하면 접할수록 ‘어떻게 같은 언어를 그리 잘 가지고 놀까.’ 놀라워했던 잔상이 두터웠기 때문이다.

그가 쓴 시는 언어 바깥에 나타난 뜻만으로 꺾어 올린 시가 아니다. 말맛과 글맛 모두 살려 눈에 콕콕 박히고 뇌리에 탕탕 충격을 주는 시다. 본래의 의미를 뛰어넘어 언어마다 가진 표정과 그림자, 거기에 탄생 배경까지 서로 엮어 감칠맛 나는 말과 글로 풀 줄 아는 시인, 이정록 시인을 만났다.
 

 

시와 한 몸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되기까지 
 
여섯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똑똑해서가 아니고 한 살 많은 동네 형의 괴롭힘을 피하려고 부모님이 조기 입학시켰다. 너무 어릴 때 간 학교였고 선생님 말씀이 무슨 말인지도 잘 몰라 혼자서 공상하고 망상하길 좋아했다. 대졸까지 줄곧 나이 많은 친구들과 학교에 다니는 압박감 속에서 이정록이 찾던 탈출구는 시였다.

중학교 1학년 때다. 스승의 날 글짓기 때 이정록은 오히려 초등 때 스승을 향한 원망의 글쓰기를 했는데 당시 국어 교사가 따뜻하게 위로해주었다. 국어가 좋아졌다. 국어사전을 끼고 살자 국어성적도 좋아졌다. 국어가 잘 되니 다른 과목 성적도 덩달아 올랐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상과 문과 이과를 넘나들었다. 주관 없이 친구들이 바꿔 달란다고 바꿔줬다. 대학은 없다는 부모님 말씀에 대학을 포기했는데 입학 성과가 필요한 학교 때문에 원서를 냈더니 공주대 사범대학에 합격했다.

1985년 공주사범대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3월 1일 광천중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다. 당시 사범대는 졸업 후 입대했으므로 그도 그해 9월 입대해야 했다. 군 생활 중 중앙일간지 신춘문예에 매년 응모했으나 번번이 낙선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분명 달랐다.

그러나 그는 꾸준했다.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시 ‘농부일기’가 당선됐다.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한 해다. 1990년엔 한길문학 시 신인상을 받았다. 대전일보 수상만으로는 원고청탁이 들어오지 않았고 한길문학에선 출판사가 원고를 분실하는 통에 책을 내지 못했다. 동아일보에 응모하게 된 계기였다.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穴居時代(혈거시대)’가 당선되면서 그는 확실한 시인이 되었다.

시인 이정록의 시 쓰는 삶은 그렇게 어른이 되고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린 나이에 시작됐다.
 

 

문학 영재는 존재하지 않아 
 
그래서다. 그가 시 쓰는 재능을 영재들의 특별함으로 국한하지 않는 이유가.

그는 글쓰기를 영재 범주에 넣지 않았다. 몇 해 전 영재를 다루는 모 방송사에서 이정록에게 “문학 영재에 대해 멘토를 해달라는 청이 왔는데, 문학 영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멘토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시도 나이를 먹어야 하고, 소설과 산문은 적어도 서른너댓 살은 먹어야 첫 문장을 쓰는데 말이죠. 그만큼 삶의 두께가 필요하죠.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테크닉은 삶의 깊은 호흡을 끌어올리지 못합니다.”

이정록은 언어의 유희만을 추구하지 않고 삶의 경험을 녹여 시인이 됐다. 이제는 어엿한 교사로서 시인으로서 내로라하는 시인들과 어깨를 겨루는 중견 시인이다. 시집 한 권으로 유명세를 뿌리는 시인이 아니었다. 열심히 시를 썼고 등단 후 거의 매년 한 편씩 출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에 널린 만물의 일상을 전후좌우 안과 밖에서 관찰한 듯한 시상은 그의 손을 거쳐 명불허전의 시어로 탄생했고 출간한 시집 대부분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시에서 그치지 않고 그림책과 산문집도 냈고 문인들이 탐내는 상도 줄줄이 받았다. 박재삼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김달진문학상, 김수영문학상 등 아무나 받을 수 없는 상이어서 더 값졌다.

현재 그는 탁월한 시인으로 평가받으며 한문 교사로서 삶을 살면서 전국에 강연을 다닌다. 특히 홍성군 결성면 결성향교에서 ‘문화in결성학교’에서 진행하는 ‘만해문예학교’ 교장을 맡기도 하며 한문 교사와 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재치 넘치는 강연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세월은 길었고 시상이 천재처럼 번뜩이지 않았다.

그는 “이것은 절대 잊을 수 없는, 하늘이 주신 명문장이구나! 하고 너무 기뻐한 나머지 받아 적지 않은 구절이 있었는데, 집에 와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아서 괴로웠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 “시상이 오면 잘 모셔야 한다”고 했다.

“글씨도 늦게 깨우쳤고, 4학년 때까지 원고지가 뭔지도 몰라서 아라비아 숫자 200만 빽빽하게 썼답니다. 원고지 상단에 보면 (20X10)이라고 쓰여 있잖아요. 제가 그걸 보고 원고지 다섯 장 칸칸이 200을 1000번이나 써서 냈어요. 지시봉으로 머리통을 맞았는데, 그로부터 정확히 15년 뒤에 제가 시인이 되었단 말이죠.”
 

 

한문 교사라서 잘할 수 있는 것들 
 
그의 시는 이해하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된다. 어려운 말 없이 술술 읽힌다. 그런데 그의 시를 읽고 나면 뒤통수에 간지럼을 태우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또 가슴에 종소리가 나거나 입을 실룩거리게 되거나 탄성을 지르게 됐다.

강의는 어떨까 싶어 이정록 시인의 강의를 직접 들으러 갔었다. 대부분 나이가 있는 청강생들이었고 그는 아랑곳없이 한자를 파자(원래 뜻글자로 그 짜임을 풀이해 여러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것)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한자에 담긴 의미 해석뿐 아니라 글자들을 풀어헤쳐 숨은 뜻이 무엇인지, 또 어떤 글자들이 만나 새로운 글자가 되는지 그 과정을 신통방통하게 설명했다. 이 수업과 유사한 강연이 문화in결성학교에서 지속해서 이뤄진다니 꼭 한번 들여다볼 일이다.
 

일독을 권해주고 싶은 시집들 

 
이정록은 현직 교사로서 교육현장에서 바라본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교육시집 <까짓것>도 냈다. 아이들의 마음을 훑어내린 듯한 시다.

“세월호 즈음이라 심리적으로 너무 괴로웠어요. 당시 학교에서 잘못된 친구들도 있었고…. 이런 여러 가지가 마음에 불편한 똬리를 틀고 있다가 어느 순간 뛰쳐나왔고 그게 시가 됐어요.”

이 시집은 연극하는 교사들이 각각 ‘까짓것’과 ‘교문’이란 제목으로 학생연극을 올리기도 했다. 아이들이 읽으면 자기 마음을 들킨 것 같을 테고 부모들이 읽으면 아이들 심리가 어떤지 금방 알게 될 것 같다. 중고등 자녀를 키운다면 반드시 이 시집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정록 시인에게 많은 영향을 준 어머니 말씀이 시로 탄생한 ‘의자’라는 시는 지친 세상을 어루만지는 의미심장한 삶의 증거들과 따스한 웃음이 가득하다. 시집 <의자>에 수록돼있다.
 

지난해 출간한 <동심언어사전>은 순우리말 사전시집으로 순우리말 복합어를 주 소재로 지은 시를 사전처럼 순서대로 엮었다. 복합어를 만남언어나 팔짱언어로 부르자는 제안도 신선했다.

역시 지난해 출간한 산문집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는 시가 안 써지는 마음이 종점을 향해 구불구불 길을 서다 가다를 반복하며 달려가는 시내버스와 닮은 점부터 읽어나간다.

올해 2월 말엔 새로운 그림책 출간을 앞두고 있다. 제목은 <아니야>. 이유정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이정록이 썼다. 「문학동네어린이」에서 출판한다. 시작(詩作) 활동이 왕성하다 못해 지칠 줄 모르는 것 같은 그의 필력이다.

무어라 말해도 그의 시를 직접 읽는 것만 못하다. 인터넷에 이정록의 시를 갖다 쓴 글이 즐비하고 그의 시를 평론한 글도 많다.

세상을 향해 뭐라고 속 시원히 말하고 싶을 때 이정록의 시 한 구절 찾아 읽는 것이 꽤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정록 시인은>
 
1964년 충남 홍성 출생.
1989년 <대전일보>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풋사과의 주름살, 버드나무 껍질에 세 들고 싶다, 제비꽃 여인숙, 의자, 정말, 어머니 학교, 아버지 학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동심언어사전
동시집 : 지구의 맛, 저 많이 컸죠, 콧구멍만 바쁘다
동화책 : 귀신골 송사리, 십 원짜리 똥탑, 미술왕, 대단한 단추들
그림책 : 똥방패, 달팽이 학교, ‘아니야’는 2월 출간 예정
청소년시집 : 까짓것
산문집 : 시인의 서랍,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
수상 : 박재삼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김달진문학상, 김수영문학상 수상.
현재 : 한국작가회의 이사, 충남작가회의 이사. 천안 청수고등학교 한문 교사
 

<이정록 시인이 추천하는 결성향교 문화재 활용 프로그램>
 
홍성군 결성면 결성향교는 해마다 문화재를 활용하는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문인들 사이에선 이미 그 재미와 풍류가 예사롭지 않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올해도 결성향교는 지난해 12월 ‘문화in결성’이라는 밴드를 통해 올 2월부터 운영할 프로그램을 공개했으며 매월 둘째 넷째 토요일마다 여는 1박 2일 프로그램에 함께할 참가자를 각각 선착순 모집한다.

올해 처음 여는 2월 8일 둘째 주 프로그램 ‘만해문예학교’에는 오후 1시부터 이정록 시인이 ‘한용운 시 읽기’로 시작해 배현준 사진작가의 사진 강의, 문태준 시인의 문학 토크콘서트, 이현조 유사의 향음주례, 다음날 이정록 시인의 문예 창작 실기, 전만성 서양화가의 미술 강의, 김정숙 평론가의 문예 창작이론 등이 펼쳐진다.

매월 넷째 주 개최하는 ‘선비문화학교’는 이정록 시인이 ‘抽句(추구)와 童詩(동시), 그리고 破字(파자)’라는 주제로 해학 넘치는 강연을 열며 임병조 지리학 박사의 ‘조선의 인문지리’ 또는 전망성 화가의 그림, 초청 강사의 문화난장 ‘通(통)’. 이현조 유사의 향음주례, 윤영미의 호연지기 자연학당, 김정숙 평론가의 영화인문학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6월엔 ‘한용운 문학캠프’를 개최하며 12월엔 ‘문학의 밤’도 진행한다.

이밖에도 결성향교를 중심으로 한 어린이·청소년·성인 대상 인문학 프로그램도 꽉 차 있다. 자세한 내용과 일정은 문화in결성 밴드에 가입해 확인할 수 있으며 궁금한 내용은 문의를 통해 알 수 있다.

문의 : 041-642-6112

노준희 기자 dooaium@hanmail.net